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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10월호 [세계 차 없는 날 기념] 자전거로 본 나의 성장기
오예
언제였을까? 처음으로 두 바퀴로 서는 신비로운 경험을 갖게 된 것이. 충북 영동의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지만, 즐거움을 참지 못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뒤에서 잡고 있으니까 걱정마! 계속 페달을 밟아! 그렇지! 그렇지!” 7살 때 한글도 떼지 않은 나를 두고 누나가 걱정하며 가갸거겨를 가르쳐 줄 때는 배운다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서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정말 입이 째지도록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골에서 자전거는 2~3킬로미터는 훨씬 넘는 먼 동네 친구들과 놀기 위한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 물론 뚜벅 뚜벅 아스팔트 길을 따라 코스모스 냄새도 맡으면서, 먼 산의 실루엣이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걷기도 많이 했다. 5분도 기다리지 못해 핸드폰으로 버스도착 시간을 알아야만 하는 그런 ‘바쁜’ 인간들과는 다르게 느린 시간 속에 살았다는 것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아무튼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을까 하고 말이다. 살짝 얕잡아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헤헤.
처음부터 내게 자전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음식배달하면서 썼던 ‘아줌마’ 자전거도 나한테는 너무 좋았다. 체인보호대에 서걱거리는 체인 소리도 좋았고 고무빵빵이도 좋았다. 프레임 바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엉덩이에 전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타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만의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졸라도 자전거를 사주지 않자 떼쓰는 시위방법을 바꿨다. 최대한 간절하게 보일 것. 100장은 충분히 될 만한 종이봉투들에 ‘엄마 자전거 사줘’, ‘엄마 사랑해요’, ‘자전거! 자전거!’같은 짧은 글을 써서 외출하는 어머니의 핸드백에 넣었다. 외출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웃으며 이모부가 사주신댄다 한다. 너무 기뻐서 동네를 몇 바퀴 뛰어다닌 것 같다.
철티비라 불리는 그 산악용 21단 자전거는 몇 달 만에 도둑을 맞았다. 그게 어떤 자전건데…. 자전거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먼 동네를 모두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페인트 칠 되어 있는 자전거가 있으면 꼭 확인했다. 그것은 쌥친 자전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므로. 그 이후로 자전거 도난 사건은 계속된다. 어찌 어찌하여 중학생이 되어 얻게 된 사이클, 직장 다니며 모은 돈으로 산 묘기용 자전거, 이때는 순진하게도 경찰서에 가서 도난 신고서까지 썼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 어머니가 얻어다 주신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던 삐걱삐걱 자전거, 직장 동료가 빌려줘서 잠시 타던 자전거까지…. 지금 생각해도 자전거 동호회 카페의 ‘도선생의손목아지를잘라버려’라는 무시무시한 태그에 동정의 한 표가 갈 정도다. 큰 맘 먹고 다시 산 지금의 자전거는 다행히 내 옆에 있다. 이 때부터 나만의 철칙이 생겼다. 자전거를 데리고 바깥에 나갔을 때는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꼭 자물쇠를 채울 것, 베란다나 창고에 둘 것, 이게 안 된다면 현관 신발장 앞에 놓을 것! 지금 이 자전거로는 1시간 넘게 출퇴근도 해보고 제주도, 오사카, 해남 강진, 강화도, 퇴촌 나눔의 집까지 얼굴이 새카매지도록 돌아다녔다. 여행의 절반은 자전거로 한 셈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일본의 카노이스트(car-no-ist)라는 자전거 철학 그룹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car! 차는 no! 싫어하는 ist! 사상가들이다. 이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퇴촌 나눔의 집에 가면서 공사 중인 하남시 도로에서 덤프트럭이 쌩쌩 지나갈 때는 정말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한국의 도로가 얼마나 차본주의(車本主義)화 되어 있는지도 깨달았다. 산업혁명당시 영국의 마차 속도가 시속 30킬로미터라고 하는데 21세기를 사는 지금 서울의 자동차 속도가 당시의 마차 속도와 똑같은 평균 시속이라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도 느끼게 되었다. 시스템이 문제다! 자전거 도로만 확보되어도 자전거로 평균시속 30km로 서울 시내를 다닐 수 있다. 지금 서울시내 자동차의 평균시속으로 말이다. 공해를 만들지 않고, 지구를 뜨겁게 만들지 않으면서,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말이다.
12월 1일에 있었던 평화수감자의 날 자전거 행진에서 만난 사람-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은 나의 상상력을 뛰어 넘을 정도로 완전히 자전거로만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다중 지성의 정원이라는 그룹에서 강의하고 피자매 연대에서 일하는 활동가다. 평화운동도 하고 음악도 하는데 자기가 만든 음악 시디를 경기도 일대는 직접 배달한다고 들었다. 최소한의 교통수단과 최소한의 돈으로 지구를 살리고,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그 사람이 자전거 생활자 중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다.
아침 해가 뜨는 선선한 가을에 한강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다보면 명상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힘 준 만큼 바퀴가 앞으로 굴러가며 아스팔트를 뒤로 밀어낸다. 그렇게 미끄러져 가는 동안 우리는 더 바랄 게 없음을,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오래도록 빠져있어서는 안 된다. 걷거나 뛰는 사람과 함께 쓰는 자전거 도로에서는 자전거가 위협을 주는 자동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사람들을, 양손에 물병을 쥐고 열심히 걷는 사람들을, 천천히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개구리나 메뚜기, 여치들이 길 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평화다!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 핸들을 쥐는 순간 평화를 위한 행진이 시작되다.
함께 가야 해! Come together!
오예 ● 타짱(타로, 짱 좋다!)모임에 참가하고 있고 신자가 한 명인 제인구달 채식교 회원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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