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10월호 [쟁점과 현안] MB의 공기업 민영화와 네가지 핵심포인트
오건호
공기업 민영화는 보수세력이 매우 선호하는 개혁카드이다. 국제적으로 1980년대 이후 공기업의 비효율과 관료화가 논란거리로 자리잡아 왔고, 오랫동안 권위주의체제가 지배해 온 한국에선 더욱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공공부문을 선호해왔던 진보세력이 공기업 개혁을 힘껏 외치기 어려운 반면, 보수세력은 시민들이 원성을 보내는 공기업을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자신의 개혁성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대통령에게도 공기업 민영화는 야심찬 카드이다. 그는 대통령선거 때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305개 공공기관에 대한 경용효율화(민영화, 통폐합 등)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명박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대대적인 민영화방안을 준비하였고 이것을 취임 1백일이 되는 6월 초에 전격적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촛불에 밀렸다. 민영화의 이미지를 순화하기 위하여 이름을 선진화로 바꾸어야 했다. 발표 시기도 촛불이 끝나는 시점으로 미루었으며, 방식도 여러 차례로 나누어 쟁점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마침내 지난 8월 1, 2차 방안이 발표되었다. 3차 방안은 9월 중에 발표된다고 했으나 10월 초로 연기될 모양이다. 아직 전체 골격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보수언론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안이 기대에 턱없이 못미친다고 지적하고 노동계는 알토란 같은 공공기관들을 재벌대기업에게 넘기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이명박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방안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몇 가지 핵심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명박대통령의 애초 공기업 구상이 수정되었는가? 대통령의 말은 그러하나 진행되는 모양새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 스스로 의료, 물, 가스, 전기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선언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 인천국제공항, 한국공항공사 등 일부 공기업들은 예상대로 매각하나, 전통적으로 민영화 논란의 중심이 되어 왔던 네트워크 기간산업은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말대로 진행된다면, 민영화 카드의 색깔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보수언론이 통탄할만 하다.
하지만 세심히 들어보면, 네트워크 기간산업을 ‘지금’ ‘본격적으로’ 민영화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한나라당의 해석이다. 촛불에서 비롯된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이다. 3차 발표가 늦어지는 까닭도 정부부처마다 민영화 수위와 속도를 두고 계속 저울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3차 발표에서 네트워크 기간산업들이 포함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청와대와 관련부처가 가스, 전기, 철도의 민영화방안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스는 현행 가스공사는 손대지 않지만 에너지 재벌기업에게 시장참여를 허용하는 방안, 전기는 판매부문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는 방안, 철도는 유지보수분야를 민간위탁하는 방안 등이 주요 내용이다. 물과 의료는 이미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다. 물은 이미 민간위탁법안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다. 의료는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영리법인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애초 논란이 되어 왔던 것들은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대통령은 네트워크 산업을 민영화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부부처는 민영화방안을 다듬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이명박정부가 지금까지 팔겠다고 발표한 공기업들은 어떤 기관들인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들일까? 반대다. 모두 상당한 흑자를 올리는 알찬 기업들이다. 2007년 당기순이익을 보면, 인천공항공사는 2,701억, 한국공항공사는 757억, 3차 발표에 포함될 예정인 에너지 자회사 공기업으로 한국전력기술은 176억, 한국지역난방공사는 150억원이다. 논란이 되는 네트워크 기간산업의 경우 한국전력이 1조 5,568억, 한국가스는 3,648억원이다. 한국철도는 만년 적자에 시달리다 2007년에 1,333억원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렇다! 민영화 대상으로 뽑힌 공기업들은 시장에서 수요자가 있는 기업들이다. 그 서비스의 성격이 얼마나 공공적인지가 판단기준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요자를 만날 수 있는가가 선정 기준이다. 그래서 민영화는 수십조의 현금자산을 쌓아둔 재벌대기업에겐 수익창출의 호재이며, 이명박정부에겐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분을 메우거나 대운하 추진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는 요술방망이다.
셋째, 공기업을 살리는 올바른 길은 무엇일까? 현행 유지, 민영화, 공공화 셋 중 하나일 것이나 모두 만만치 않다.
우선 현행 유지는 답이 아닐 것이다. 공기업이 모두 흑자라는 사실이 과연 자랑거리일까? 역설적으로 공기업이 공공적 역할을 방기해 왔다는 증거 아닌가? 정부의 낙하산 인사,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운영, 상업성을 앞세운 경영평가 앞에 공기업은 찌들어 있다. 그 결과 오늘 이렇게 시민들에게 원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 이에 대해선 찬반이 뜨겁다. 시장주의자들은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나 반대론자들은 사적 이윤추구로 인해 요금이 오르거나 서비스 질이 차별화될 것을 우려한다. 어찌되었든 민간자본에게 시장이윤을 보장해줘야 하기에 지금보다 이용자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화? 공기업을 제대로 된 공적 조직으로 혁신하겠다는 진보진영의 주장이나 아직 뚜렷한 모델도 없어 시민들이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방안이다. 하지만 지난 촛불을 통해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시장만능주의가 거세지자 시민들이 민영화로 인한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아직 어렴풋하지만 공공화에 대한 기대를 어느 때보다 지니게 되었다. 촛불이 ‘쇠고기’의제에서 ‘공공성’의제로 확장된 결과이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고, 이용자, 생산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책임 공공이사회를 만들며, 질 좋은 서비스 생산과 제공을 조직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진짜 공기업을 그리기 시작했다.
넷째, 앞으로 공기업 민영화 방안은 계획대로 현실화될까? 당연한 답이지만 이는 힘의 세기에 달려 있다. 지금은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명박정부도 취약하고 이를 반대하는 진보개혁세력의 토대로 튼튼치 않다. 허약한 두 세력이 줄다리기를 하는 셈인데,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유리한 입장에 있다.
반대팀이 이를 막으려면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 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내부혁신이 시급하다. 팀이름은 ‘반대’에서 ‘대안’으로 바뀌어야 하고, 구성도 노동자와 시민들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민영화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만큼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어깨도 그만큼 더 무겁다.
오건호 ●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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