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10월호 [지부이야기] 주민들의 의견에 반한 의정비 인상에 반대한다
<지부이야기-서울동북여성민우회>
주민들의 의견에 반한 의정비 인상에 반대한다!
도봉구의원 의정비 인상반대 및 반환청구 소송
이창림
내가 살고 있는 도봉구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동네다. 변변한 기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땅값, 집값이 높은 것도 아니라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아 주민복지에 쓰일 예산이 늘 부족한 가난한 자치구다. 돈과 관련해서는 웬만해선 얼굴 내세울 게 없는 도봉구가 부자동네인 송파구, 종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당당히 전국 1등으로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일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0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날은 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봉구청이 사업을 잘 하는지, 예산을 허투루 쓰지는 않는지 살펴보라고 주민들이 뽑아준 주민대표들의 모임 ‘도봉구의회’의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사나 시민단체, 심지어 초등학교의 학급회의를 하더라도 오늘 회의는 무슨 안건을 논의하겠다는 공지를 미리 하기 마련인데, 도봉구의회는 의사일정을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당연한 일을 쏙 빼버렸다.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도봉구의원 의정비를 연 5700만원(전국 최고액수)으로 인상하는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꾸준히 의회방청을 해 왔고, 그날도 현장에 있었던 김영림 동북여성민우회 지역자치위원장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자.
“구의장의 조례안 통과여부를 묻는 질문에 의원들이 그렇게 한 목소리로 ‘예’라고 씩씩하게 답변하는 것은 처음 봤다.”
실제로 의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의정비인상 조례안을 통과시키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홍은정 대표의 긴급호출을 받고 사무실에서 뛰어나가 택시를 타고 의회로 달려갔다. 소식을 들은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의장에게 항의방문을 하러 갔다. 손님이 계시니 잠시 기다려 달라는 비서의 말에 한 시간 남짓 기다렸는데(지금 생각하면 우리도 참 너무 점잖다) 의장이 유유히 의장실을 빠져나가려는 게 아닌가.
“의정비를 결정할 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라고 했는데 제대로 했느냐”, “재정자립도가 서울에서 하위인 도봉구에서 의원 연봉 5700만원이 가당하냐”,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라는 주민들의 서명 871명의 의견은 왜 묵살하냐”, “의사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통과시킨 이유는 뭐냐.”
이렇게 따져 묻는 물음에 대한 의장의 답변이 가관이다.
“871명 서명? 그게 뭐? 별거 아니잖아! 871명이 뭐가 많아! 그게 무슨 주민들의 의견이라고!”
머슴을 자처하며 주민 한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던 선거 때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주민들의 의견을 송두리째 묵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도봉구 주민을 대표하는 구의회의 의장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법대로 해라.”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의회 건물을 빠져나가면서 의장이 남기고 간 말이다.
의정비 인상과정의 적법성을 따지기 위해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감사청구를 하기로 했다. 이미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도봉구가 전국 최고의 의정비를 받게 된 사실을 알고 있는 주민들의 반응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싸늘했다.
“이 놈들은 하는 일도 없이 돈만 축낸다. 나쁜 놈들이여.”, “원래 무급으로 하던거 아닌가? 돈 벌려고 난리네.”, “해외여행만 가는 구의회는 아예 없애야 해.”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던 주민들은 ‘의정비 인상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듣고는 가던 걸음 돌려서 홍보물을 받아가고, 주민감사청구인 명단에 서명을 했다. 그렇게 거리에서 서명을 받아 2007년 12월 28일 서울시에 감사청구를 했고, 감사 결과는 올해 4월 14일에 나왔다.
시민감사관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의정비심의위원회 구성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여론조사 방법의 신뢰성이 의심’되는 등 의정비 결정 과정의 오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감사 결과 서울시는 도봉구청에 ‘의정비심의위원회를 다시 구성하여 재심의하고, 조례를 개정하여 의정비를 다시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도봉구청과 도봉구의회는 감사관의 지적을 귓등으로 들은 듯하다. 심의위원 추천이 잘 안 들어온다는 핑계를 대면서 심의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심의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주민감사청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도봉구청과 도봉구의회의 안하무인격 행정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고 주민소송을 준비했다. 5월 28일 도봉구청을 상대로 ‘부당한 방법으로 과도하게 인상된 채 의원들에게 지급된 의정비를 돌려받으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7월, 9월 두 차례 공판이 있었다. 10월 8일 공판 후 한차례 더 공판이 열리면 최종 결정이 난다.
작년 가을부터 의정비 문제를 두고 줄기차게 달려오면서 지방자치가 나아갈 길이 참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 지방의원들을 뽑고, 집행부의 대표를 뽑아 지역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정책들을 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 지방자치제도인데, 지금은 단지 선거기간에만 머슴을 자처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시늉을 할 뿐, 그 이후엔 원래의 취지에 맞는 일은 뒷전이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이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의원 한번 잘못 뽑아서(물론 다들 지금 의원들에게 표를 던지진 않았다고 한다.) 뒤치다꺼리 하느라 고생한다”는 쓴 농담을 주고받는다. 서울의 변두리 삼각산 아래 도봉구가 전국 최고 의정비로, 그것도 불법적 방법으로 의정비를 올렸다는 이유로 매스컴에 많이 알려졌다.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 참 쑥스럽다. 하지만 앞으로는 집값은 싸더라도,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이웃 간에 훈훈한 정이 쌓으며, 주민자치를 위해 힘쓰고 있는 주민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본다. 그런 날을 위해서라도 의정비는 물론이고, 의원들의 의정활동, 구청의 여러 정책들을 꼼꼼히 모니터하면서 주민들의 힘을 모아가야겠다. 주민들이 모여서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머슴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
이창림 ● 동북의 철인3종. 자전거로 동네 이곳저곳에 휙휙 나타나는 동북의 씩씩한 활동가. 지역일로 바쁘고 정신없다 해도, 민우회 일이라면 말없이 쓰윽 나서서 손을 보태는 듬직한 회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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