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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10월호 [MB와 나] 공안 바람아 멈추어다오
바다
경찰이 최근 다음 카페 ‘유모차부대’ 소속 주부회원 3명에 대해 촛불시위 극렬가담자라며 전격 조사할 것을 발표했다. 신문 기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경찰한테 채증 좀 당했는데 언젠가 경찰이 내방 문을 두드리며 출두명령서를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지난 5월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며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촛불이 정부와 경찰 사법부까지 손잡고 자행하는 무차별적인 탄압에 신음하고 있다. 촛불탄압은 기존의 상식도 뭣도 통하지 않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연행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휴대폰이 도청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니. 촛불의 수가 줄어들면서 촛불시민에 대한 경찰의 원칙 없는 연행과 폭력은 시위근처에도 안 가봤던 나에겐 자체로 충격이었다.
얼마 전 그동안 찍어놨던 촛불시위 사진을 인화했다. 사진을 보면서 지난 몇 달간 거리에서 만난 촛불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중 광복절날 내 눈앞에서 ‘살려달라’를 외치며 끌려간 한 남자의 사진도 있었다. 그 때 나는 파란 살수 물과 새까맣게 거리를 메운 경찰들에 기가 눌려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셔터를 눌렀었다. 그날 밤 나와 눈이 마주치며 도움을 청했던 그 남자의 눈이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 촛불시위에 나가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 무서운 것이 없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있는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그러다 촛불시민들을 극렬시위대로 몰고, 무차별적으로 연행하는 것을 목격하고선 나도 몸을 ‘사리게’ 됐다. 이 상황에서 연행당하면 억울함에 속이 썩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싶지만 고백하자면 경찰의 곤봉이, 무시무시한 그 방패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서서히 줄어들자, 정부의 공안정국 조성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촛불시민에 대한 폭력진압의 책임은 경찰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고, 정부여당은 촛불시위 때문에 경제가 ‘이지경’ 이라며 침을 튀겼다.
재갈물린 언론, 말도 못하는 시대
지금도 조계사에선 수배자란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지지하러 갔다가 깔린 경찰들 앞에서도 식칼테러 당하고, 보수언론에 광고주 불매 글 올렸다고 경찰조사에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 이뿐이랴. 경찰은 촛불시위 막바지에 민중의 지팡이 대신 온몸 무장한 기동대(이들을 본 어떤이는 장난감 병정이라고 했다)를 내세워 사람들을 낚아채는 ‘인간사냥’을 자행하고 이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치졸함의 극한을 보여줬다.
언론 장악에도 열과 성의를 다하는 정부는 YTN, 아리랑TV 수장을 친정부 낙하산 인사로 갈아치운 데 이어 KBS 공영방송 정연주 사장을 법에 명시도 돼 있지 않은 해임권까지 억지 쓰며 몰아냈다. 그리고 정부의 파렴치에 가까운, 시민들에 대한 입 막기 목 조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나에겐 전설처럼 들렸던 군사독재시절 ‘땡전뉴스’나 막걸리 한잔 하며 대통령 흉봤다가 ‘국가보안법’으로 끌려들어갔다던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촛불시위를 취재해 한 매체에 기고해 오던 한 지인은 어디선가 감시당하는 느낌이라며 기사일지언정 글을 쓰는 데 조심스럽다고 했다. ‘말도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전방위로 뻗쳐오는 야만의 공권력 앞에 나, 한 개인은 무력해지고 만다. 한동안 무력함과 허무함에 싸여 세월을 한탄(?)했던 난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의 온기를 발견하고 다시 희망이랄 것 같은 뭔가를 되찾았다.
촛불의 불씨… 지지와 연대
민주와 소통을 외치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공안정국에서도 촛불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광화문에서 광우병 쇠고기 먹기 싫다며 촉발된 촛불들은 이제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에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동조 단식을 하고, 언론장악의 도마 위에 올라있는 각종 언론사 앞에서 밤새 촛불을 밝힌다.
촛불의 중매로 만난 사람들이 나에겐 다시 찾은 희망과 같다. 투쟁노동자에게나 정부의 폭압에 맞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촛불은 따뜻한 위로이자 끈끈한 연대의 끈이다. 나도 그때 그 거리에서 배운 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며 그 옆에서 대안을, 순종하지 않는 저항의 대안을 엿본다.
바다 ● 작은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바다는 좋은 글쟁이를 꿈꾸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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