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12월호 [민우ing] 또 다른 가족의 탄생, 그 순간에 귀 기울이다!- 비혼모1) 정책 심포지엄을 다녀와서
바람
어느 여름날이었다. 부천인근의 한 모자원을 방문했던 기억. 낯선 곳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언제나 묘한 기분을 전해준다. 아마 올해 여름이었다. 다양한 가족-비혼모가족-이 탄생되는 그 경이로운 순간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
2008년 민우회에서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짚어 보기로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로 인식되고 있을까?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가족이라고 검색창에 쓰니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혼인으로 맺어지고, 혈연으로 이루어지고 동일한 호적 내에 있는 사람들만이 가족의 범주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기에서부터 질문이 던져졌다. ‘정상’이라는 것만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소위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분류되며 그때부터 편견과 배제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주변 곳곳에 잠시 눈만 돌려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을 얻고, 가족을 잃고, 가족을 꿈꾸는 이들이 등장하는 ‘가족의 탄생’의 장이 무궁무진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지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 전 한 여성방송인이 결혼 없이 아이를 가지고 출산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혼인하지 않은 채 임신, 출산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출산 후에도 입양이 아닌 양육을 선택하는 여성들 또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비혼’의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 속에서, 정상가족이데올로기가 너무나 견고한 한국사회에서 그녀들은 엄청난 각오를 하고 시간을 밟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싱글맘이 벙글벙글 웃는 오늘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민우회의 프로젝트! 그 과정 또한 참으로 길고 어려웠지만 비혼모 정책 심포지엄이 진행된 10월의 어느 날은 참으로 따스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혼모 정책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비혼모실태조사팀에서는 선행연구를 검토하면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기존의 연구들은 개인의 성적욕구가 유난히 강하거나 지능이 낮아 무분별하고 충동적이며 무책임하기 때문에, 또는 부모의 이혼, 별거 등 가족 내 문제로 정서적 불안정성을 경험하게 되고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가지고 ‘비행’의 결과로 비혼모가 발생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인한 급격한 가치관 변화, 서구문물의 도입 등을 원인으로 말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구체적인 경험 없이 설문결과에서 도출된 통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의 통계수치가 과연 얼마만큼 실질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통계결과가 비혼모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민우회는 비혼모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었을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퍼트려 서로 지지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20명의 비혼모를 직접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인터뷰를 통해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전하며 삶을 결정하는 과정을 우리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꿈꾸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어떤 편견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라고.
20명의 비혼모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긴 자료집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상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임신하고, 출산을 선택하고 양육까지 결정한 그녀들의 비혼모‘되기’ 선언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수천 년 이상 고정된 거기 때문에 그 제도를 나 혼자서 어떻게 깰 수 있다거나 내 가정을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평등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없더라구요, 나한테. 그래서, 다른 형태의 가족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얽매이지 않고 대안을 꿈꾸는 그녀들의 상상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통해 비혼모실태조사팀은 자발적 의지로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 온 그녀들이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사회적 편견도 존재 하지만 그 보다 더 두려운 것은 경제적 불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회적인 인식과는 이미 싸울 만한 준비가 된 사람이에요.”, “편견은, 살다 보면 무뎌져요.”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비혼모들은 기본적인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지역의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형편이 달라지기도 하며, 연락을 하지 않고 관계를 단절한 원가족의 경제 상황이 괜찮아서 수급자격이 되지 않는 경험을 겪으며, 비혼모이기 때문에 입직시기에 무수한 차별을 받으며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그녀들은 언제나 빈곤의 연속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비혼모실태조사팀은 비혼 양육모 지원 정책대안을 심포지엄에서 제시하였다. 이미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수용이 필요하며 경제적 자립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하였다. 즉 안정적 삶을 위한 경제적 자립지원이 필요하며 양육비 지원의 현실화가 대안인 것이다. 또한 교육적 접근에서는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성교육이 아닌 구체적인 피임법과 남성의 성행위에 대한 책임감, 양육 공동 책임의 의무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과 부담이 따름을 인지할 수 있는 교육이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양육과정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고민을 해소하고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지역사회의 복지체계 내에서 양육비혼모에 대한 일상적인 상담과 부모교육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함을 전하였다. 또한 정보에 대한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접근이 가능한 시스템이 마련되고, 양육비혼모로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정서적으로 그녀들을 지원하는 상담과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10월 비혼모 정책 심포지엄이 진행된 인권위의 배움터에는 양육비혼모가 직접 참가하기도 하고, 이 사안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 양육비혼모가 삶을 꾸려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전하는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혼모라는 단어에 대해 새롭게 인식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이날의 심포지엄이 아니었을까? 그 날의 심포지엄은 우리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비혼모가 된 것이 아니라 비혼모되기를 당당하게 선택한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득했다. 또 다른 가족의 탄생에 기뻐하며 서로에게 지지와 동행을 제안하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자리였기에 10월의 그날은 참으로 따스했다.
바람 ● 짧은 지면에 그날의 이야기를 다 담기에는 참으로 무리인 듯해요.
그렇기 때문에 글을 시작하기가 무지 어려웠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글을 넘기게 되었군요.
이날의 심포가 더 궁금하신 분은 민우회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자료집이 사무실에 있답니다!
비혼모란 1) 최근 독신여성이 계획적으로 임신-출산하는 경우를 비혼모, 그렇지 않은 경우를 미혼모라 부르는 등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는데, 비혼모정책심포지엄 실태조사팀은 계획적 임신인지 아닌지, 향후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아닌지 등에 따라 자의적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분류방식을 지양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이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일 경우, 임신과 출산과정이 어떠했든 ‘자신의 의지로’ 양육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혼인 또한 누구에게나 앞으로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생의 한 과정일 뿐, 과도한 계획이나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비혼모’와 ‘미혼모’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다만 ‘비혼모’의 비혼(比婚)은 단지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므로 이혼/사별모 등 모든 ‘싱글맘’들이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