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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12월호 [민우ing] 성폭력 가해자교육 워크샵이 필요한 이유
너굴너굴
지난 5월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100여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지금은 더 이상 기사화 되고 있진 않지만 그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교육을 둘러싸고 아직도 공방이 오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낮은 연령 때문에 처음부터 사건 해결에 있어서 가해자교육은 큰 쟁점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교육과 피해자에 대한 상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건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학교와 지역교육청은 모진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고 교육과 상담만큼은 자신들이 제대로 진행하겠는 의지를 보여 왔다. 하지만 막상 교육 내용을 들여다보니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분노를 풀어주는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학교 전체에 만연되어 있던 성폭력 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으로 마무리 된다. 물론 지역 단체들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어 성폭력에 대한 내용을 먼저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항의하고 있지만 학교는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
성폭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말이 많다. 그때마다 성폭력은 다른 어떤 제도보다 시각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기에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취업시장에서 유망직종으로 성교육상담전문가라는 직업군이 선정될 정도이니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서의 초등학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을 진행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성폭력을 유발하는 원인과 이를 정당화 하는 성문화를 배제한 채 공동체 화합 또는 개인 분노만을 다루는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성폭력예방과 재범방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폭력 가해자교육은 재범방지를 목표로 한다. 때문에 가해자 스스로 행동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성하고 책임지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보자.
성폭력 가해자교육은 성폭력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이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피해 장소엔 왜 갔는가?’ 등 피해자의 행동에만 집중하는 질문들을 가해자의 행동으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왜 성폭력을 저지르게 되는가?’,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로 말이다.
지금까지 성폭력 예방교육의 주요대상은 (잠재적)피해자였고 당연히 교육의 내용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행동 중심이었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 것, 정신을 잃을 만큼 술 마시지 말 것, 지나친 노출의상을 입지 말 것. 이러한 교육은 성폭력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피해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사건발생의 원인을 피해자의 행동에서 찾게 한다. 그래서 대책에 대한 논의에서 성폭력을 유발하고 정당화하는 문화는 무시한 채, 피해자의 행동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는 신화와 만나게 되면 가해자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는 도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성폭력발생의 근본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행동이 아닌 가해자의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교육을 통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나가는 데 유용한 거름이 될 것이다.
성폭력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모자란 것도 현실이다. 인면수심, 패륜, 정신이상. 이 이상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가해행위가 가능하게 했던 기반에 대한 성찰 없이 일상과 분리된 ‘흉악한’ 범죄자로 낙인찍어 사회와 분리시키는 개념들. 이런 접근은 성폭력 가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지만 가해자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 성폭력의 원인과 예방을 위한 접근을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가해자 행동의 이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원인 진단이 필요하다.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처음엔 정말 잘못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가해자가 종종 있다. 경찰이 오자 피해자가 말을 바꿨다고 억울해 하는 가해자도 많다. 우리는 이 말을 자신의 가해를 축소하려는 욕구로 생각하여 단순한 변명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성행동을 낭만화하여 지지하고 동조하는 문화, 이런 문화 속에서 성폭력을 ‘정상적인 성행동’이라고 믿거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를 단순한 변명으로만 치부하고 넘길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해자교육이 개인인성에 대한 접근뿐 아니라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인식이 형성되는 구조, 성적실천방식에 대한 분석,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9월 통영보호관찰소에서는 성폭력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충동조절훈련을 통해 자제력을 함양하고, 성문화의식을 제고하게 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국의 보호관찰소는 전문기관들과 연계하여 성폭력가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시도 중이다.
가해자교육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고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사후점검이 이뤄지지 않아 어떤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접근과 시도가 다양해질수록 효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커진다. 하지만 교육의 방향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진 채 개인 인성에만 집중하거나,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기반하거나 그 통념을 재생산하는 방향은 아닌지 점검하고 논의되어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 교육에 대한 논의는 지금보다 더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강의 기술이 아니라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가해자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원인분석과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적 조건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성폭력 가해자교육 워크샵>을 시작한다. 지난 10월가해자교육 전체 코디하기를 중심으로 <성폭력 가해자교육 워크샵 첫 번째_시작이 반이다>를 진행했다. 그리고 2009년 성폭력 가해자교육 논의 확장을 위해 워크샵은 계속 될 것이다.
너굴너굴 ● 서식지 변경으로 정서불안을 겪고 있는 집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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