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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12월호 [기획] 황홀한 복장전도의 유혹
김일란
1950년대 국악 뮤지컬 ‘여성국극’을 탄생시킨 예술가, ‘임춘앵’의 일대기를 담은 만화 <춘앵전>이 출간되었다. <춘앵전(한승희 그림, 전진석 작)>은 예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힘있게 살았던 한 소녀의 성장만화로, 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창극단 ‘여성국극’의 탄생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성국극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연기와 애절한 가락, 배우들의 특이한 분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50-60년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이러한 여성국극이 태동한 것은 1947년 임춘앵, 박귀희, 김소희 등 당대의 여성명창들이 모여서 판소리를 현대극으로 전환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춘향전>을 공연할 때 젊고 잘 생긴 남성 명창이 있어야 했는데, 적당한 적임자가 없어서 공연 날짜에 쫓겨 임시방편으로 임춘앵씨가 ‘이몽룡’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 때 뜻밖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여성국극은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여성국극은 다양한 이유로 쇠퇴했다.
현재 60대의 여성들은 어릴 적에 이 연극을 보고 쫓아다닌 경험을 쉽게 기억해내곤 한다. 잡지에 실린 임춘앵 사진을 스크랩하고, 집에 돌아올 생각 말라는 어른들의 엄포도 무시한 채, 읍내 포장 극장으로 달려간 사연들, 국극 배우들이 머물던 여관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매불망 배우들의 얼굴보기를 바랐던 애달픈 기다림의 시간들, 그렇게 여성국극은 최상의 인기 연예물이었으며, 국극 배우는 ‘스타’였다.
여성국극은 그야말로 판타지의 공간이다. 그 핵심은 남장여배우에 있다. 여자배우가 남자역을 한다는 것, 여자가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많은 여성관객들에게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Ellis에 따르면1), 남성의 여성적인 복장전도가 매우 성적인 것에 반해서, 여성의 남성적인 복장전도는 사회적 일탈로 해석되며, 남성에 의해서 거부당하고 그래서 단지 복장전환이 아니라 매우 진지하게 남성 정체성을 지닌 삶을 고민하는 위치까지 떠밀리게 된다. 임춘앵의 남장연기는 1920년대 강향란 남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강명화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던 강향란은 처음 단발을 실천한 기생이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초기 서구의 문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적 계급화를 이룰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서 문화적 특권의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서 유행을 창출하는 계급은 주로 지식인 남성들이었다. 서구 스타일의 유행은 곧 전통적인 사회에 대한 이질적인 문화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따라서 조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일탈적인 행동양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전통적이지만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나 있다고 생각되는 기생이나 새로운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여 가치판단이 유보된 사람들, 카페 걸이나 다방 마담 그리고 가수나 영화배우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나 강향란은 자신이 습득한 신물 속에서 자극을 받아 남자에게 의존하고 동정을 구하던 지난 날을 잊고 “남자같이 살아보겠다는 의미로 머리를 깎고, 남자의 양복을 입었다.” 이른바 진보적인 여성들이 단발을 감행하는 것은 남성들과 동등해지는 것 혹은 유사해지는 것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 그리고 ‘남녀유별’의 관념을 뛰어넘어, 봉건적인 여성관에서의 해방을 꾀하여 여성과 남성을 평등화하려는 시도였다. 그 만큼 남자와 같은 스타일의 단발은 봉건적이고 전통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위협적이면서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강향란의 남장과 유사하게, 임춘앵 역시 기생으로서 여성과 남성의 특성을 규격화하는 사회적 관습에 대한 위반을 시도하였다. 특히나 임춘앵은 극의 허구 속에서 복장전환을 통해서 보다 더 안전하면서도 파격적인 젠더적 수행을 시도하였다. 말하자면, 연극적 장치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니 만큼 현실파괴적이지는 않지만, 무대 위에서의 젠더위반은 최대한 상상적으로 실현된다. 이러한 여성국극은 일본의 다카라즈카와 매우 흡사하다.
다카라즈카는 효고 현 다카라즈카시에서 시작된 가극으로 1914년에서 지금까지 성행하고 있다. 다카라즈카 역시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가극단으로, 무대에 출연하는 배우는 예외 없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라고 한다.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娘役, 무스메야쿠), 남성 역할을 ‘남자역’(男役, 오토코야쿠)이라고 부른다. 여성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오토코야쿠이다. 다카라즈카 극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드림걸즈(1993)>에서, 오토코야쿠가 여성관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성팬은 현실 속에 있는 남성들에게 느낄 수 없는 자상함과 부드러운 배려가 오토코야쿠에게는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관객들에게 오토코야쿠는 이상형의 남성으로서 그녀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여성관객들이 연극적 장치를 통해서 경험하는 오토코야쿠는 젠더와 성에 대한 개념을 넘나든다. 말하자면 여성관객들은 생물학적 여성의 신체로 재현되는 남성성에 열광하면서, 여성들의 열악한 위치나 억압적 구조 속에서 발현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욕망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한편, 남장여배우에게 동성애적인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복장전환을 통한 남성성의 확보는, 여성이 정치적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 이루어진 가상적인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가 온존할수록 그 한계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욕망 또한 강력할 터였다. 이것은 다카라즈카나 여성국극의 관객들 모두 비슷할 것이며, 여성관객들은, 환각적 몰입과 그에 따르는 환호 속에서 젠더 규범의 경계를 넘나들며 열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은 바로 이러한 복장전도의 놀이와 공연에 익숙하다. 그리고 여성들은 거짓말과 연기에도 능란하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의 복장전도 놀이는 젠더 트러블을 만든다. 그럼으로써 정상성을 중심으로 한, 젠더 이분법과 가부장제의 원리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이다. 그러나 주변화된 젠더들 사이에서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자신들을 정체화하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동시에 탈정치적이기도 하다. 특히나 요즈음 복장전도가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서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사소한 차이가 자신들을 정체화하는 지점이 될 수 있으며, 이 양가적인 정치성을 어떤 방식으로 맥락화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일란 ●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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