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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12월호 [쟁점과 현안] 2008 국정감사,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행정부 통제의 실질적 의미 살리도록 제도개선 시급
황영민
“소란함. 지루함. 미안함”
국정감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복합적인,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느낌들이다. 국정감사는 무척이나 소란하다. 수많은 이들의 출입으로 국회 회의장은 북적이고, 국감장 안에서는 심심찮게 고성이 터져나온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는 의원실에서 쏟아낸 뉴스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지루하다. 마치 액션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의미없는 총질에 꾸벅 졸다 나온 기분이다. 매년 별반 다르지 않는 뉴스를 보는 것도 지루함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그래서 미안하다. 2008년 국정감사를 평가하는 글을 읽는 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게 있어야 새로운 얘기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국정감사, 민생은 엉망인데 행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다
2008년의 한국사회는 위기다.
대통령이 오락가락 “위기다, 아니다”를 왔다 갔다 하는 한심한 상황이지만, 2008년의 한국을 사는 서민들에게 지금은 분명 위기다. 물가상승에 빈 지갑을 털어보고, 반 토막 난 펀드에 눈물짓는 이들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경제상황을 비관한 자살소식도 간혹 들린다. 그럼에도 정작 정책의 집행자와 위기의 책임자들은 “믿어달라” 강변을 늘어놓는 상황이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라는 교과서적 지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국회는 눈물짓는 이들을 대신해, 잘못된 정책으로 서민생활을 나락으로 몬 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효용론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든 현 제도 하에서 국정감사는 국회가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장치이다. 따라서 18대 국회 국정감사는 제도의 취지에 걸맞게, 현 시기 서민생활을 나락으로 내몬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점검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여당의원 입에서조차 ‘국정감사는 행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통과의례 같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국감은 과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국감이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경제정책의 최고 수장으로서, 물가와 환율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온 강만수 장관을 일관되게 감싸며 책임회피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촛불집회에서 불거진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인권침해 문제와 검찰,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상실 문제는 야당 의원들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의 일방적 감싸기 속에 찻잔의 태풍으로 그쳤다. 국정감사 본연의 취지를 무색케 한 여당의 감싸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피감기관의 자료제출 거부, 답변 거부 행태도 공공연히 벌어졌다. 18대 국회 첫 국감은 한 마디로 ‘여당의 병풍국감, 피감기관의 버티기 국감’이라 부를 만하다.
여당의 병풍국감, 이보다 더 노골적일 수 없다
이번 국정감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나라당의 공공연한 행정부 감싸기였다. 국정감사 시작 전부터 한나라당은 ‘지난 10년 간 좌파 정권의 폐해’를 드러내 보이겠다고 공언하며, 최근의 경제위기와 정책실패 규명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급기야 10월 7일의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장관들에 대해 모욕성 질문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대응해줘야 한다”는 황당한 주문을 하였다. 원내대표의 이런 태도는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보자면, 8일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공정택 교육감에 대한 야당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임해규 의원(경기 부천시원미구갑)이 “증언이 검찰 수사에 활용될 수 있어 불리한 증언을 할 필요가 없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조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9일 행정안전위의 경찰청 국감에서는 이은재 의원(비례대표)이 어청수 청장 동생의 성매매 업소 운영 현황을 묻는 야당 의원에게, “이게 제대로 된 국감 질문이냐”고 말하며 어청장에게는 “답변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였다. 15일 정무위 국감에서는 박종희 의원(경기 수원시장안구)이 피감기관인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게 “안 이사장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야당의원들의 질의가 있더라도 발끈하지 말라”는 쪽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당 의원들의 각종 조언성, 변호성 발언은 행정부 통제라는 국감의 의미를 극도로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피감기관들의 버티기 행태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피감기관의 버티기 국감, 이보다 더 뻣뻣할 수 없다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자료제출과 무성의한 답변은 이번 국감만의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짧은 국감준비기간 동안 개별 의원실이 요청하는 수많은 자료제출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피감기관의 애로를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올해 일부 피감기관의 태도는 거대 여당의 감싸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무성의와 버티기가 두드러졌다.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회의록의 ‘열람’만을 허용하였고, 기획재정부는 세입세출 관련 자료제출을, 행정안정부는 2008년 특별교부세 교부내역을, 보건복지가족부는 멜라민 식품 문제에 대한 공문 수발 대장의 제출을 거부하는 등 감사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자료제출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자료들은 여당의원들에게만 편파적으로 제출되었다는 야당 의원들의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또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일부 부처, 기관장들의 태도에서도 불성실과 오만함이 나타났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압적인 태도로 답변을 하다 여당의원들로부터도 지적을 받았으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기자들을 향해 반말로 소리를 쳐 물의를 빚었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갑작스런 입원을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당일 교육위 국감이 파행을 빚기도 하였다.
국감제도 개선,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여당의 감싸기와 피감기관의 버티기 외에도 2008년 국정감사는 고질적 색깔론과 증인채택을 둘러싼 갈등, 국정원에 대한 정보보고, 인터넷 생중계 허용 논란 등으로 곳곳에서 파행을 겪었고, 정작 중요 정책에 대한 감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마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반복되는 ‘국정감사 무용론’이 올해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그나마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 제도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이 반가운 소식이다. 11월 9일에는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에서 ‘상시국감’ 등의 제도개선안을 발표하였다. 물론 제도개선으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분야의 일제감사를 실시하는 현행 방식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행정부 감독보다는 여·야간의 전면적인 정치공방을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20일간의 짧은 기간에 500여개 가까운 피감기관을 감사하는 것은 사실상 부실국감을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제도개선은 국감을 국감답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문위 발표 이후 한나라당의 대응 태도는 국감 제도 개선이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11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자문위 개선안이 시민단체의 의견만을 받아들였다며, 의장석 점거의원 본회의 출석금지 법안 등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감이 끝날 때마다 말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외치면서 정작 힘은 다른 곳에 쏟겠다는 모양새다. 첨예한 여야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한 국회법 개정안으로 제도개선의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국회가 행정부 통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국감제도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를 모아 적극적으로 논의의 장에 참여할 것이다. 잘못을 모르는 것보다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국회가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내년에는 소란함, 지루함, 미안함을 덜어내고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황영민 ●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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