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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12월호 [문화산책] 찾아갈 만한 전시회 소개-언니가 돌아왔다
김금미
언니가 돌아왔다. 돌아와 다소곳이 거울 앞에서 선 내 누님 같은 모습으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거울을 들이대는 도발자 혹은 고발자의 모습으로, 또는 선구자이자 위로자의 모습으로 당당히 돌아왔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26명의 여성 미술가들은 지금 물 만난 고기떼처럼 경기도 미술관에서 신명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2년 전 개관한 이래로 ‘경기 미술 프로젝트’를 연례전 형식으로 개최해온 경기도 미술관은 올해 <언니가 돌아왔다>전을 통해 지역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이슈를 해부해보고자 한다. 우리 시대의 면면이 여성 미술가들에 의해 여지없이 드러나면서 분노와 욕망, 소외, 저리도록 서러움, 냉혹한 현실, 사랑, 삶, 생명, 자연 등 수많은 복합적인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전시 기획자는 이들 미술가들의 작품을 우마드, 허스토리, 시스터 액트, 팜므 파탈의 네 그룹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들의 작품이 “21세기 유목민을 낳은 디지털 시대의 ‘신모계 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며(Womad) 남성적 사관으로 집약된 역사에 맞서서 ‘그녀들의 역사’를 당당히 주장하고 기술해 나가는가 하면(Herstory) 사회적 제도와 관습의 시스템에 공공성과 여성성의 맥락에서 개입하고 실천하며(Sister Act) 특정 시대의 캐릭터로서 ‘위험하고 운명적인 여성’을 뛰어 넘어 능동적이며 활달한 태도로 ‘욕망과 환상’을 펼쳐내고(Femme fatale)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윤석남의 <Pink Room>에 설치된 소파에 꿈틀거리며 솟아나 있는 쇠꼬챙이가 관람자를 부추긴다. 작가에 따르면, 으레 확보된 아버지의 자리인 그 곳에 장난을 쳤다고나 할까? 분노의 꿈틀거림일 수도 사랑을 향한 몸부림일 수도 있을 감정의 동요를 안고 더 들어가면 우리는 각종 욕망의 분출을 보게 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며 우리의 질곡된 여성사에 동참하게 된다. 가끔은 ‘사랑한다’고 읊조리며 피노키오가 되기도 하나 이제 21세기의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성욕과 도발성 또는 나른함을 과감히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 미술가들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사회와 역사, 환경, 문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또 우리를 향해 던진다. 가령, 거울을 등에 걸고 가며 거울에 비친 타자의 모습을 통해 나와 타자의 존재에 대해 묻는가 하면 소비문화의 상징이라 할 비닐봉투를 손수레 가득 메워 제시하기도 한다. 새가 되고픈 소녀의 꿈을 그려보기도 하고 우리 엄마의 그 엄마의 삶을 고증하는 자료를 작품으로 설치해놓기도 한다. 때론 그런 기록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자신의 고통(습진)까지도 친구로 끌어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넉넉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넉넉함은 땅의 생명력을 지닌 여성의 원초적인 자아로 회귀하곤 하는데, 이는 특히 자연과 생태, 생명에 천착하는 미술가들에게서 극명하게 보인다. 도시 거리의 허깨비 같은 가로수에 주목하는 화가(정정엽 <나무-도시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며 식물이 아무데나 뿌리내리게 하는 생태적 작업이나 자신의 오줌으로 식물의 싹을 틔우려는 작업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 생명력은 나의 잠자는 욕망을 일깨워 변신을 꾀하게 하거나 초콜릿처럼 달콤한 망상에 젖어들게 하고 짐을 싸고 풀게도 한다. 또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도 하고 미군 기지촌의 좁은 문 너머의 푸른 자유를 꿈꾸게도 한다. 꿈 꿀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랑을 나누고 태몽을 꾸며 선조 할머니와 해후하려 내민 손끝에서 연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박제된 사랑을 온몸으로 아파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알록달록 예쁜 색천으로 간극을 메우려 한다. 자꾸 삐져나오고 튕겨져 나가지만 계속 메워 나간다. 소통하고자 한다. 대화하려 한다.
26명의 여성미술가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40년이라는 나이차가 무색하게 자매애를 과시하며 우리를 그들의 영역으로 끌어당긴다. 불턱(제주도 사투리로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공공지대를 말함)이 된 경기도 미술관의 ‘언니전’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와서 따뜻하게 불 쬐고 가라고.
- 경기도 미술관
031-481-7007~9
www.gma.or.kr
김금미 ●미술사를 공부하고 계속 그 주변을 맴돌다가 지금 경기도 미술관에서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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