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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12월호 [회원이야기] 내 일생의 터닝포인트
리아
요즘 잡지나 TV를 보다 보면, ‘성형수술’이라는 말이 너무 많다. 왜 우리 사회는 성형이 일상일까? 쌍꺼풀 수술은 거의 기본적인 매너고 심지어 여성 성기를 성형하는 ‘이쁜이 수술’도 점점 일반화 되고 있다고 하니. 진짜…이건 미? 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쓸까?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의문들과 이에 질린 나의 불평불만들을 마음속과 머리 속에 가득 품고 이것들을 날려보고자, 난 민우회의 몸/성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에 대한 지겨움과 매초마다 나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매연을 피해서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가장 재미있는 주제, 나의 성과 나의 몸에만 집중하는 2박3일! 마치 중세시대의 마녀라고 불렸던 그녀들이 이런 기분이었겠지!
그
녀들과 함께 나눴던 2박3일은 정말 나의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속에 갇혀 가식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짜 나’. 나의 욕망과 판타지들을 그대로 보이며, 솔직 담백한 대화와 자유로운 행동 하나하나가 매 순간 나에겐 감동이었다. 장래희망이 ‘집시’인 나에게는 그곳은 정말 내가 항상 갈망해오고, 꿈꿔왔던 곳이었고, 삶이었다. 아침에 밝은 햇살과 상쾌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눈을 뜨며, 풀밭을 걷고, 영감이 마구 떠올라 나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숲과 몇 개 되지 않는 건물들…. 항상 자유로이 뛰어 놀고 싶어 안달이던 나의 몸과 마음이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다같이 어울려 몸과 영혼으로 안에 꽁꽁 묵혀뒀던 속얘기들, 상처들을 드러내어 서로 어루만져주며 자신에게 정말 그 순간 필요했던 대화와 따뜻함으로 감싸줄 뿐 아니라, 내 몸과 맘속에 삭히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분장을 하며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나와는 다른 사람을 표현해내며, 웃기도 하고, 보통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숨겼을 것 같은 나의 몸의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내세워 보이고, 장점들은 더욱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고, 첫날엔 섹스에 대해서 부끄러워서 잘 얘기 못하던 그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쑥스러움이라는 벽을 허물고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찬 감동이었다. 정말이지… 나의 최고의 2박3일이었다! 이 워크샵을 계기로 난 민우회에 회원으로 가입을 하게 되었다.
몇 주 후, 난 또 다시 성에 관련된 캠페인을 민우회와 하게 되었다. 3일 동안 중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성교육 캠페인. 중학교에 찾아가서, 부스를 만들어 콘돔을 실습시키는 것이 나의 담당이었다. 처음엔, ‘에이! 이게 뭐 별건가?’하는 생각과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들뜬 맘으로 첫날의 중학교를 찾아갔다. 하지만 부스가 세워져 있는 교실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난 학생들보다 더 부끄럼을 탔고, 내가 더 민망해했다. 부끄러워 못할 거 같다고 징징대며, 콘돔실습은 나와 함께 부스를 담당하던 신아와 프리에게 맡기고, 난 덜 민망할 것 같은 피임기구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됐다. 첫날 갔던 중학교는 3학년은 없는 학교였고, 아이들이 피임에 대해 그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로 피임기구를 본적은 없다고들 하였다. 여학생들은 부끄럽다고 하지만, 눈은 피임기구들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나의 눈에서 떼지 못하였고,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다. 여학생들은 조용조용 얌전히 설명을 들었다면, 남학생들은 그녀들과 달리, 피임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장난만 칠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피임은 멀게만 느껴진다고 하였고, 자기는 그냥 섹스를 안 하면 될 거 같다는 재미있는 코멘트를 하는 남자 학생들도 있었다.
우르르 몰리는 학생들에게 몇 번이고 같은 설명을 하려니, 목이 너무나 아파 처음엔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피하던 콘돔 실습 부스와 바꾸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프리가 설명하는 것을 옆에서 듣기만 하던 내가, 어느 순간에서부터는 내가 아이들을 모아 떠듬떠듬 설명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그날의 시간은 다 채워졌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반응이면 어쩌지? 다음 날, 두 번째 학교를 향하며 걱정을 했지만 나의 걱정은 캠페인이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다. 학생들은 피임과 성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왔고, 설명을 듣는 것을 즐거워했다. 남학생들이 더 부끄럼을 탔고, 여학생들은 질문을 하고 답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번째 캠페인을 통해 나의 의욕은 상승! 나의 설명 또한 그 전날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난 느꼈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당당함을 느끼게 되었다. 세 번째 학교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여학생들은 부끄러워 설명조차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고, 남학생들도 부끄러워하면서, 친구들의 ‘변태’라는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부스에 다가오는 것조차 꺼려했다. 그래, 나도 처음엔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들을 통해 성교육 수업을 받는 듯,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던 콘돔실습 부스를 계속 담당하며 아이들을 불러들였고, 쉬는 시간에도 목이 터져라 설명을 해댔다.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3일 동안 3개의 중학교를 돌며 실행했던 성교육 캠페인이 끝났다. 이제는 콘돔에 대한 것이라면, 완전히 척척 박사가 됐다며, 콘돔 회사에서는 날 취직시켜야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할 정도로 나 또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아! 이래서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라는 생각도 끊임없이 들었다.
민우회와 함께 걸음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난 이곳에서 내 삶의 최고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나에겐 감동의 순간을 계속 느끼게 해준 곳이기에, 만일 민우회가 나에게 ‘리아! 이런 거 해보지 않을래요?’라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난 승낙할 것이다. 이곳을 통해 난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고 무능하게 느껴지던 내 자신을 향한 위로를 얻게 되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활동가들을 보면, 지겨운 삶에 지쳐, 포기하다시피 했던 나의 내일,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 피어나기에, 그들을 통해서 난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게 되고, 긍정적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느끼게 해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외면했을 법한 나의 아픔 또한 감싸주었기에, 운명이라는 것이 진짜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있다면, 민우회를 알게 해준 운명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를 통해 난 나의 삶의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리아 ● 부끄럼쟁이에서 콘돔박사로 카멜레온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즐기는 리아 집시 고스족이 되겠다며
“FUN, LOVE AND ARTS = LA VIE BOHEME”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고
빡빡한 세상에서 진실하고 즐거운 보헤미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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