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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문화산책]연극 ‘발자국 안에서’를 보고
실없는 질문 하나. ‘함께가는여성’ 원고의 시한은 왜 이다지도 빨리 돌아오는 것일까? 난 지금도 시한을 넘겨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못해 발등이 녹을 지경에 이르러 ‘핫, 뜨거’를 외친다. 마치 발등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연극 ‘발자국 안에서’의 주인공 화가처럼…….
화가 : 정말 그리고 싶을 때는 손등에다 그렸죠. 아내에게 들킨 다음에는 발등에다 그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가끔 지워져 있을 때도 있지만요.
손님4 : 작업실은 고사하고 손등, 발등도 갖지 못하고 산단 말이요?
발등이 없는 화가라니 무슨 일이 있을까 궁금증이 일 것이다. 여기, ‘단 하나 뿐인 유혹의 공간’인 ‘쌀집’에서 화가를 둘러싼 관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희곡이 있다. 범상치 않은 대사로 채워진 이 작품을 연출가는 단촐한 무대장치와 의상만으로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는데. 난 솔직히 연극이 끝났을 땐 머릿속이 하애졌다 하지만 아직도 머리에서 맴돌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그건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당장 볼 수 없는 연극을 소개해도 될지 싶었지만, 대학로에는 수많은 소극장 사이를 비집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작품들이 많다고 꼭 말하고 싶다!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가 얼마나 일상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를 찾아 ‘발자국 안에서’ 따라 가본다. 작업실을 막 얻은 화가 주변으로 동네 주민들이 찾아든다. 이들은 음습한 얼굴로 ‘여긴 쌀집이었으니 쌀을 팔라’고 종용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논리로 용도 변경한 공간을 되돌려 놓으려 한다. 이때 연출은 기둥과 벽 하나로 된 무대장치를 이리 저리 여러 차례 옮길 뿐 ‘종용과 거절’의 장면을 반복한다. 아, 화가가 얼마나 지쳐갈 것인가를 알게 한 참으로 기발한 연출이다. 문제는 극 전체에서 그 주민들이 그리 이상해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버티고 서서 ‘내 작업실’에서 나가라고 윽박지르는 화가가 비일상처럼 느껴질 뿐. 그러나 모두 회색 옷을 입고 같은 리듬의 종종걸음을 걷는 주민들과 자기 옷을 입고 자기 걸음을 걷는 화가와의 대조는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자기 소유임이 분명한 작업실조차 외부에 잠식당하고, 곧 그의 생명이 위협해지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 착각한 화가. 극 내용은 섬뜩한데 기발한 연극적 장치들(반복하는 장면, 마치 공간이 살아있기라도 하듯 벽에 숨은 마을 주민들 모습 등)에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움까지 더해져 오히려 희극적이다. 또한 ‘삶(生)’을 상징하는 ‘쌀’집이란 공간에서 ‘편리와 이기’에 눌려 변해가는 화가의 상황은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역설이 아닐는지. 주민들 ‘패거리’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인생 뭐 있어’, ‘사는 게 그렇지 뭐’ ‘고상한 척 해봤자 별 거 있겠어?’ 하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늘 익숙한 공간인 사무실과 집에서 물건들이 빼곡히 채워지면서 답답하여 탈출하고픈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혹은 주객이 전도하여 물건이 상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심지어 그 상황을 꾹 참고 있는 자기 모습에 놀랄 때도 많다. 그것은 비단 사적 공간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형사 : 지난 석 달 동안 이 곳을 드나들었지만, 실마리 하나 발견하지 못했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놈의 발자국 안에서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밟아 없애 버린 무겁고 거대한 발자국…… 모든 것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도시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작가는 형사의 입을 빌어 현미경으로 화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획일적인 물건처럼 살아가고 오히려 도시는 우리의 “혈관과 맥박을 이식한” 괴물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하이데거는 실존이란 다른 사람들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세상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존재 가능성’을 기획하고 그것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발자국 안에서’ 화가는 ‘세상사람’이 아니라 ‘존재 가능성’을 향해 발버둥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존재’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오늘도 난 여전히 새하얀 눈길에 난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밟고 있다. 맴맴맴맴……
타기 ● 요새 뮤지컬보다 연극 관람이 더욱 즐거워요.
이 작품이 궁금한 분들, 추후 상연 소식은 club.cyworld.com/ichungwoo에서~!
「발자국 안에서」 극작 : 고연옥, 연출 : 김광보
공연일정 : 2009년 1월 3일~2월 1일(극단 청우)
공연장소 : 대학로극장(혜화동)
참고도서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저, 「인류 최초의 키스」고연옥 희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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