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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회원이야기]우리가 사는 이유
요즘 대학생들은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영어는 기본, 제3외국어까지 구사하는 학생도 많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수어개, 외국 경험, 인턴 경험까지 무수하다. 예전 같으면 대기업에서 어서 옵쇼 할 만한 이력일 텐데 요즘에는 이 경력을 가지고도 ‘이.태.백’이다.
대학시절 이정도의 경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빠듯한 대학생활을 보내야 할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잔디밭에 모여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대학가의 낭만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학교 입학식 날에는 각종 어학원과 유학센터에서 전단지를 뿌리러 온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동아리의 위기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영삼성’, ‘영현대’ 등 기업-대학생 연계 동아리에서 근사한 회원모집 광고를 하는 터에 대학생들이 자치적으로 만든 동아리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 꼭 기업 연계 동아리가 아니어도,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를 가입하기 전에 이 동아리가 나의 이력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다. 그래서 부자 동아리, 주식 투자 동아리는 면접을 보고 회원을 뽑을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고, 내가 활동했던 가톨릭학생회와 노래패에서는 밥을 사주겠다고 해도 도서관을 가야한다며 퇴짜를 맞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온 후, 나는 여성운동, 환경운동처럼 ‘20대운동’을 만들어보고자 사람들을 모아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20대가 힘을 합쳐 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보다 홀로 토익책을 파고 다른 20대를 이기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20대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결국 취업이 안된다해도, 그들은 ‘사회의 문제’라기 보다 ‘내 능력 부족’이라고 치부해버렸다. 등록금 비싼 것도 내 능력 부족, 내 학벌로 인한 사회적 무시도 내 능력부족인 것이다. 또한 나의 동기들은 KTX 여승무원의 일에 대해서 ‘그 사람들 업보야’라며 너무 쉽게 접어버렸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의 차이라고 했던가. 요즘 대학생들은 다양한 기술적 능력을 가진 것에 비해 감수성과 사는 이유는 동물처럼 단순하다. 지금 친구고 뭐고 다 버려도 취업만 잘되면, 돈만 많이 벌면 행복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보다.
대학생끼리의 경쟁은 고3의 경쟁보다 혹독하다. 취업시장에서는 성적뿐만 아니라 외모, 면접 태도, 호감도 등 평가받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내가 다닌 대학은 여대였음에도 여성학 전공이 결국 문을 닫았는데, 여대생들이 회사에서의 유리천장의 문제 등을 강의하는 여성학 수업을 듣고 좋아할 리가 없다. 여대생들은 그런 것을 알면 알수록 ‘유리천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여자가 되어야지’ ‘남성보다 더 독한 여성이 되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남성문화를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여대생 병영체험 캠프’가 매 학기마다 열렸다. 특히 취업 문턱에 접어든 여대생들은 “마초적이고 룸살롱 가도 좋으니 나 좀 뽑아줍쇼” 라 외친다. 기업의 복지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돈만 주면, 취업만 시켜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처절한 소망이다.
사실 나는 이런 친구들을 안타깝게,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심하고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학에서 친구들과 있다 보면 종종 ‘너네는 왜 사는 거니?’ 하는 궁금증이 일 때가 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역으로 ‘왜 사는지’를 고민하는 나를 더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돈 벌 걱정은 온데간데없고, 경력에 도움도 안 될 철학 책이나 읽는 내가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될 리 없었다.
신기한 것은, 4학년 1학기 여름방학이었던 2008년 여름을 교육감 선거운동과 촛불투쟁으로 보낸 내가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소위 말하는 <취업7종세트>-명문대 졸업장, 외국어 성적, 해외 경험, 기업체 인턴십, 각종 자격증, 봉사활동, 마지막으로 부모의 학력과 직업- 에서 단 하나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었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이력서를 어떻게 썼냐는 질문에 나는 가톨릭학생회, 노래패, 농활, 참여연대와 민우회 활동을 썼다고 했다. 친구들은 내가 그 활동들을 이력으로 해서 회사에 입사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고, 심지어 억울해하는 동기도 있었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하다. 그리고 취업을 해서 4주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회사의 인사팀이었어도 “무조건 회사에 나를 맞추겠으니 뽑아줍쇼”하고 있는 대학생들보다 나처럼 비주류였던 가톨릭학생회와 노래패에서 뼈를 묻었던 학생이 더 책임감이나 성실도 면에서 믿음이 갈 것 같다는, 약간의 자만심이 들기도 하다.
졸업과 동시에 덜컥, 회사에 붙어버린 지금은 나의 지난 대학생활에 더욱더 확신이 든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스펙’을 만들러 다닌 그 시간에,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삶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대학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에 대한 자신감과 삶에 대한 의식이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다.
인문대학을 취업준비코스로 전락시켜버린 학내 관계자들에게 야유와 조소를 날리고 싶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20대들이 엉뚱한 곳에 젊은 혈기를 바쳐가며 삶에 대한 좌절감만 얻고 야위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후배들이 나를 보면서, 부디 취업을 위한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놀고 싶은 데로 실컷 놀고, 책도 많이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오디 ● 맑은 웃음,
분위기 있는 목소리,
똘망똘망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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