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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민우ing]참을 수 없는 ‘최저임금개악안’의 꼼수
최저임금 836,000원1)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어떻게 생활할까?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일한 후 점심을 먹는다. 월세를 내고(아니면 대출이자를 갚거나), 4대보험료를 내고(사보험은 비싸서 못 든다), 전기세, 가스비, 전화비 등을 내고 나면 벌써 절반이 넘는다. 남은 돈으로 쌀을 사고, 반찬거리를 사고(과일은 비싸니까 패쓰. 고기는 어불성설), 부양할 가족까지…. 게다가 부조금도 꼬박꼬박 빠지지 않는다. 큰 병은 돈 없어 걸릴 수도 없고, 저축은 커녕 대출만 늘어간다.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외에 다른 소비를 상상하기 힘든 돈, 그게 최저임금이다.2)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자
지금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치솟는 물가와 세금을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핵심에 최저임금이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의 극단적인 저임금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저임금이 최소한 전체노동자 평균임금에 절반은 되어야 한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이다.3) 그런데 최저임금을 높여도 모자랄 판에, 최저임금을 줄이는 최저임금개정안(이하 ‘개악안’)을 한나라당 김성조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노동부가 적극 밀고 있다. 이 황망한 개악안의 주요내용은 이렇다. 60세 이상 고령자와 수습기간 6개월은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숙식비도 최저임금에서 빼버리고,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최저임금 의결기한이 마감되면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단독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최저임금노동자 중 고령자, 수습, 지역, 숙식을 제공받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더 내려가라 등 떠미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개악안이 갖고 있는 꼼수
개악안은 참 여러 가지의 꼼수를 숨기고 있다.
첫 번째는, ‘수습노동자의 경우 6개월까지 최저임금 감액’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다. 현재 수습노동자는 단지 ‘수습’이라는 이유로 해고예고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한다. 또한 사용자가 불합리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제시, 적용하는 방식이 수습노동자에게 보다 노골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불안정하고 열악한 상황을 6개월로 확대한다는 것은, 수습노동자의 노동권을 장시간 근본적으로 침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이는 국가인권위원회 지적처럼 ‘최저임금보다 낮은 저임금으로 6개월 이내 기간제 근로로 남용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는데, 최저임금이 높아서 기업경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기업이 이걸 모를 리도, 활용하지 않을 리도 없다. 기업으로선 마음대로 해고가능하고, 임금마저 최저임금미만으로 줄 수 있는 6개월 미만의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유혹만 더 강해지는 셈이다.
두 번째는, 60세이상 고령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감액이다. 이를 두고 노동부는 ‘최저임금 미만이라도 일을 하고 싶다’는 고령노동자가 많다는 걸 이유로 든다. 이를 통해 고령자의 일자리를 확대시켜보겠다는 건데, 일자리가 확대되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건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고령의 근로빈곤층을 양산하는 것임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4) 결국엔 고령자의 노동력을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으로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만 남은 것이니 또 기업만 좋은 일인 셈이다.
더욱이 최저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은…, 참 아무나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상상력의 발로다. ‘숙식을 제공받는 노동자는 먹고 자는 것조차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최약자층’임을 안다면, 최저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한다는 방식의 개악안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기 힘든 노동부의 감언이설이 있는데, 최저임금감액을 해당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에만5)’ 할 수 있도록 할 거라는 말이다. 시나리오는 뻔하다. 회사는 면접시 이렇게 말할 테지. “최저임금 감액을 ‘희망’하나요?”, “아니요… 최저임금마저 줄이면 살수가 없…”, “당신은 우리 회사에 맞는 인재상이 아니군요”. 아,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어떤 노동자도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희망하지 않는다. 최저임금감액은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기업의 희망이다. 새해 벽두부터 ‘희망’이란 단어가 모욕스럽다.
게다가 최저임금 의결기한이 마감되면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단독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있는데, 공익위원은 전적으로 노동부장관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한다. 공익위원의 중립성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러한 규정을 신설하는 건 최저임금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결정한다는 뜻 외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또한 지역별로 최저임금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는 등 최저임금을 어떻게 해서든 낮춰보려는 가지각색의 놀라운 상상력이 개악안에 넘쳐난다. 이런 풍부한 상상력을 제발 이런데 쓰지 말고 제대로 된, 좋은 일자리창출에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최소의 소비만 하는 계층에게 이를 더 줄이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이고, 그것은 곧 인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부디 인권을 포기하게 하는 최저임금개악안이 철회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나우 ●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자들은
가난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의 말이다.
돈이 미덕이 된 이 추악한 사회에 가난은 자존감의 추락일 뿐이다.
1) 주 40시간 기준(2009년 현재 시간급 4,000원)
2) [번외편] 그럼 최저임금개악안을 통과시키려는 사람들은 80만원으로 무얼 할까? (아 이런 걸 정말 실태조사해야 되는 건데. 노동부장관이랑 한나라당 김성조의원이랑 심층면접 좀 했으면 좋겠네) 옷 한벌? 신발 한켤레? 아이들의 1개 과목정도 과외비? 아니, 80만원 가지곤 그 중 하나에도 턱없이 모자랄지 모르겠다.
3) OECD에 따르면 저임금(low pay)을 상용직 풀타임 노동자 평균임금의 3분의 2 미만’으로 정의하고, 빈곤선(very low pay)을 2분의 1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4) 모르면 이참에 알기 바란다. ‘근로빈곤’이라고 검색하면 주루룩 나온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곤층! 백과사전에도 등재돼 있다는 사실.
5) 이건 법적으로 노동자의 ‘동의’ 형식으로 구현되는데, 노동자가 ‘동의’만 해주면 근로조건을 저하시킬 수 있는 것들이 노동법안엔 참 많다. 그러나 근로조건 저하와 관련한 노동자의 ‘동의’는 노동자의 진의(眞意)일 수 없다.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동의가 과연 동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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