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4월호 [문화산책] 낮술의 롱테이크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다!
김보년 ●
<낮술>을 봤다. 상영 시간 내내 계속 웃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소리 내어 웃었다. 간단한 인상 평을 써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찌질한 남자들이 궁상을 부리지만 밉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묘한 길티 플레저가 있다’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내가 더 얘기해보고 싶은 건 <낮술>의 영화적 형식과 마지막 엔딩이 영화적 형식을 배반할 때 주는 어떤 생각거리들이다. 영화적 형식에 대해 먼저 짧게 말하자면 - <낮술>은 고정 화면의 롱테이크를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이러한 ‘고정-롱테이크’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주인공(혁진)의 처지를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롱테이크가 한번 시작되면 혁진은 여간해서 그 프레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여기서 먼저 영화의 내용을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인 혁진은 실연당한 백수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 백수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혁진을 위로해준다는 친구들은 다음날 정선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정작 정선에 도착하는 것은 혁진뿐이다. 이제 혁진은 오지 않을 친구들을 기다리며 정선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무료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술 마시는 것뿐이고 그 사이 일은 점점 꼬여 혁진은 이제 정선을 빠져나갈 수 없다. 영화 속 정선은 일종의 ‘원더랜드’다. 미궁이라면 출구라도 있지. 영화 속 정선에 출구는 없다. 빠져나갈 법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혁진을 붙잡는다.
재미있는 대사와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연기에 웃어가며 영화를 보다가, 몇몇 숏들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거의 무조건 롱테이크로 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노영석 감독이 각본에서 연출, 편집, 음악, 심지어 촬영까지 혼자 다 했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이는 ‘필연적’인 길이-미장센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산이 부족하니 로케이션 촬영은 짧을수록 좋고, 그러자면 촬영 기간을 줄여야 된다. 당연히 카메라 세팅은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낮술>의 롱테이크는 영화의 정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세계관을 오롯이 형상화해낸다. 혁진과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시작되는 숏은 웬만해선 끝나지 않는다. ‘이상한 여자’와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애인 사기단과 회를 먹고, 노래방에 가고, 여관방에서 술을 마실 때, ‘변태’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친구의 삼촌과 비닐하우스에서 돼지 갈비를 구워 먹을 때, 강가에서 생선을 구워 먹을 때, 이 숏들은 끝나지 않는다.
혁진은 지금 정선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찾아 왔다. 혁진이 롱테이크의 고정된 프레임에서 숏의 지속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것처럼 그는 정선이란 장소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혁진이 마시는 그 많은 술은 어쩌면 맨 정신으로 버티는 것이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낮술>의 고정-롱테이크는 혁진의 상황과 심리를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롱테이크가 끝나는 것은 얼굴 클로즈업이 나오거나 다른 상황이 전개 됐을 때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롱테이크를 인물의 아이레벨에 맞춰서 촬영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이상한 여자와의 버스 장면에서는 버스 좌석을 떼어내지 않는 한 아이레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간 부감으로 촬영했다) 관객은 혁진의 앞에 마주앉아 있는 꼴이 된다. 관객들은 카메라의 위치에서 끝까지 혁진과 함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혁진이 아무리 어렵고 민망한 상황에 놓여도 숏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관객은 혁진과 함께 그 상황을 견뎌야한다. 나는 여기에서 <낮술>의 정서적 힘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그 상황을 고스란히 실제 시간으로 통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아야 하는 것. 이것이 <낮술>의 영화적 재현이 갖고 있는 태도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영화의 엔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혁진을 만나러 온 친구는 일이 있다면서 정선역까지만 혁진을 바래다주고 떠난다. 혁진은 마침내 서울행 버스표를 끊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여자에게 붙잡힌다. 혁진은 고민하고, 그 순간 영화는 끝난다. 이 엔딩은 혁진이 결정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인상적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꿋꿋하게 혁진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던 카메라가 마지막 순간에 짧은 혁진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이다. 만약 롱테이크를 사용했다면 혁진의 선택을 알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혁진의 고민 자체에 방점을 찍는다. 혁진은 과연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여자는 그냥 구실일 뿐이고 사실은 정선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것은 아닐까. 혁진은 지금 원더랜드 정선에서 이상한 모험을 계속 하는 것과 서울의 현실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혁진은, 정말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김보년 ● 영화를 좋아하는 ‘요망단’ 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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