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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4월호 [MB와 나]우린 왜 '아직도' 분노하는가
모브 ●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고요. 아직 등록금 비싸잖아요?” 학교 도서관 가는 길목에 웬 현수막 하나가 내걸렸다. 평소에 행사 안내 현수막 말고는 우리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은 좀체 찾아볼 수 없는지라 반갑고도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그 앞에 섰다. ‘아직’이란 부사어에 두 눈을 멍하니 고정시킨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다니! 사실 팔 걷어붙이고 뛰어다녀도 모자를 판에 고작 소심하게 분노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 그렇지만 또 다시…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다니! 졸업한 선배들이 떠나간 자리에 갓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신입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고 휴학했던 친구는 복학생이 되어 있다. 3월이면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 속에 ‘아직도’ 오지 않는 그것들이 있다. 졸업을 코앞에 둔 나에게는 ‘아직도’ 듣지 못한 말들과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미스테리 마냥 꿈쩍대지 않는 그것들이 있다. 아직도? 그렇다. 아직도.
이 정부가 들어선 지, 일 년하고도 세 달이 지나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기까지, 반값 등록금 공약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 지켜라’며 목이 쉬도록 외쳐봤자, 그 분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새빨간 거짓말만 반복한다. 정부가 ‘삽질’하는데 쏟아 부을 예산으로 그때의 약속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학교를 빠져(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한켠에 어마어마한 적립금을 쌓아두고 학생들 대상으로 장사하는 대학이라는 기업은 연일 부동자세다. 등록금 동결로 생색낼 뿐이다. 이미 ‘취업학교’로 전락한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취업난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 개설이 전부란 말인가. 학교나 제대로 다닐 수 있게 해 달라며 울부짖는 친구들이 ‘아직도’많은데 말이다.
엠비호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캠퍼스에는 냉담함이 감돈다. 갈라진 틈을 누군가가 메워주겠지 하며 애써 모른 척 서로에게 침묵하고는 자꾸 어디론가 떠밀려가고 있다. ‘선택’을 ‘필수’로 여겨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 얼마 전, 한 신입생이 학교 커뮤니티에 궁금증을 올렸다. “이 과는 취업이 잘되느냐”고. 취업난이 파릇한 새내기의 고민거리 1순위가 될 정도라니, 이제 막 지겨운 입시지옥에서 벗어났음에도 대학생활을 채 해보기도 전에 취업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아니, ‘아직도’제대로 된 취업 스펙1)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말해야 하나?
점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 준비, 토익, 인턴, 자격증… 등등의 각기 달라 보이지만 결국엔 똑같은 이유로 바쁘기에. 정작 사라진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나 또한 결국엔 같은 이유를 대고 있다. 필요성을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는지 몰라 멀뚱하니 있는 꼴이다. 한 단체에서 20대가 당면한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프로젝트를 한다. 초기에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높은 등록금’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정작 이 주제를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행동을 취해도 돌파할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고통분담 하겠다며 직원들의 급여는 동결해버린 채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만을 확 줄여버린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접했다. 문득,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첫 출근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껏 부풀어있던 동아리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365일 열람실에서 맨 마지막으로 불 끄고 나갈 정도로 늘 열공 모드였던 선배. 술 마시자는 동기들의 꼬드김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칼에 잘라내고, 낮은 스펙에 눈만 높다라며 쯧쯧 대는 주변 시선을 무시한 채, 오로지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날만 학수고대했건만… 누가 선배의 ‘간절한 단 하나의 이유’를 그렇게 순식간에 앗아가는가. 대기업에 들어가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 한 태도는, 바늘구멍 같은 대기업 입사를 이뤄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록 선배와 나의 지향점은 평행선을 달리지만, 개인이 느낄 허탈감과 고통을 아래로 전가해버리는 사회의 무책임성에는 적어도 함께 분노할 수 있을 것 같다. 채 싸워보지도 못하고 ‘아직도’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또한 한편으론, 4년간의 ‘취업학교’에서 ‘성공적으로’취업을 이룬 소수의 좌절감이 이럴진대, 그 외의 대다수 학생들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앓이하며 삶을 짓눌러야 하는지 씁쓸했다.
촛불이 광화문을 물들여 뜨거웠던 지난여름, 소수였지만 우리들의 문제를 광장에서 함께 고민하려는 열망과 분노를 안고 학교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분노는 ‘아직도’ 유효하다.
1) 스펙[←specification] 신어,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
모브 ● 감각의 안테나를 바로 세워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이곳저곳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요.
(민우회에 주파수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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