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09년 3*4월호 [기 획] 내안의 ‘다중이’- ‘A=A’라 단호히 말하기 힘든 이유
그녀 ●
내게 있어 여성학은 내가 불편하거나 분노하거나 궁금해 했던 것(성역할 따위의)들이 사실은 매우 정교하고도 지독한 역사성을 갖고 이어져온 것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이론화 되어있어 나의 논리의 근거가 되어줌에 감사함을 표해야하는 무엇이었다. (난 나의 선택과 나의 생각이 진정 나의 선택과 생각일까에 대해 아주 일찍부터 고민하였다. 여성학은 이 고민에 답이 되어주었으며, 나를 사회학으로 인도하였고, 여성주의라는 ‘빽’을 선사하였으며, 지금에 나를 있게 한다.)
지금은 어때?
지금, 여성주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 불편함이 나는 싫은가? 응. 나는 싫다. 그 이유는? 피곤하다. 하지만 내가 여성주의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진심어리게 이해해 보도록 길을 내어주어서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이해했는가? 아니, 그것도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이해를 시작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기쁨이라는 것 밖에는 모른다.
이전에 나는 나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의 욕구나 나의 바람 따위를 타인의 시선에 끼어 맞추었다. 나는 사랑받고, 관심 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난 착한 딸, 동생, 친구가 되어야 했다. 어릴 적 그 모습은 그냥 그러한 욕구에서 만들어진 나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나를 진심 어리게 살필 수 있게 된것은 여성주의를 알면서부터다. 그래서 나는 불편하지만 여성주의적 삶을 살기위해 버둥버둥한다.
이처럼 여성주의는 나를 ‘나’로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중적인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 순간 여성주의는 나를 곤란하게 했다.
내안의 ‘다중이’를 만나게 되는 일은 나의 몸 혹은 상황에 따라 나에게 부여된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서 일어난다.
길진 않지만 나의 공식적인 여성주의자 선언이 있은 후 삶에서 몇 번의 고비가 일상적으로 있었드랬다.
#. 난 습관성구토증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이 쪄가는 나의 몸을 좌시(?)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여튼 그게 싫으니까! 그 이유가 마르고 늘씬한 몸을 ‘아름답다’ 여기는 그들의 기준 때문임을. 그것이 문제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에 나를 맞추곤 했다.
미친 듯이 먹고, 토한다. 난 맛있는 걸 먹고 싶지만 먹으면 살이 찐다. 살이찌면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음- 생각컨대 고민해 보면 타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싫은 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마른 몸을 욕망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건강하기 위해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를 이유로 들지만 이러한 고민은 지극히 타인에 의한게 아닐까 또 다시 고민하게 한다.
#. 나는 1년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소위 클래식바라 명명되는 곳에서 바텐더 일을 했다. 물론 누구는 우리를 바텐더라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던 공간에서의 역할은 거친 언어로 말하면 종종 나를 너무 상품화하다 못해 내가 무얼 하며 이 공간에 서있는지, 내 앞에 앉아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나를 무엇(?)으로 여기는지 괜히 고민하게 했다. 바텐더로 일할 때는 내가 생각하는 거창한 이념과 가치관의 이야기를 구지 꺼내지 않고서도 일 할 수 있으며, 꺼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바텐더가 아닌 다른 상황과 역할에서의 나는 여성주의를 말했다.
어느 날 내가 보였다. 어두운 조명에 가볍지 않은 화장을 하고, 예사롭지 않은 검은색 재킷과 치마를 입고 하이힐과 야릇한 미소로 포장된 웃음을 띈 내가 말이다. 이제는 이 공간에서 내가 찾았던 즐거움, 여러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의미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바텐더의 경험은 나를 전문적인 조주사로의 삶을 살아볼까? 하는 또 다른 길을 고민하게 해주기도 했고, 미숙하나마 내가 내 입맛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즐거움을 줬다. 물론 손님들의 다수가 나를 힘겹게 한 것도 아니고, 일 년보다 조금더를 바텐더로 살게 한 것에는 그만한 매력이 차고 넘쳤다. 공부를 하면서 꽤나 자주 술을 마시며 일하는 삶을 견딜 수 있을 만한 매력이 있었으니까(나는 학생과 바텐더의 역할을 같이 했다).
유연화된 개념정리
이렇듯 타인이 요구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의 경계에서, 혹은 내가 원하는 내가 진정 그러한지, 혹은 그들의 요구와 원하는 나를 맞추기 위해 거듭 노력하곤 했다.
마른 몸을 위해 습관성구토증에 시달렸고 아직도 늘씬한 몸을 희망하지만 난 여성주의자라고 말한다. 또한 나를 상품화시키던 공간에서 ‘나’를 버리고 있다. 다시 ‘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줄타기를 아슬아슬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줄이 꽤나 튼튼했던 것 같다. 그녀(여성주의를 고민하는)들을 알게 되고, 그녀들과 나의 공통분모에 쾌감을 느끼며, 끝없는 수다를 떨거나 고민을 나누거나 털어놓거나 했던 경험이 나를 ‘그런 일들’을 겪은 후에도 ‘여기’에서 여성운동을 계속하게 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많이 헤매이고 있고, 헤매고 싶고, 아직 꼬리를 물고 쫓아오는 지우고 싶기도 한 몇몇 과거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건강할 수 있는 것은 당신네들이 있어줘서라고 전하고 싶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이리도 행복감에 젖어있을 수 있는 건 토닥토닥해주던 당신들 덕이라고!
이처럼 내가 삶아가고 있는 현실은 ‘A=A고 B=B’라는 이성적인 언어로 정리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여성주의라고 해서 일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나 분열과 딜레마적인 ‘나’를 만나지만 그것들을 다 받아드리고 견뎌내면서 언젠가 조금은 덜 피곤하고 상처받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그녀들과의 계속적인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글을 정리할까한다.
나는 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거지?
지금도 줄타기중인 나의 ‘다중이’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괜한 고민에 질책하지 말고 스스로 토닥여주자. 우리들의 ‘다중이’에게!
그녀는 여성단체에서 일한지 벌써 한 달하고도 13일! 2월에 처음으로 맞는 금요일에 바람이 이렇게 물었다. ‘어때요?’ 난 설렌다고 말했다. 난 계속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우회에 와서 나는 셀레이니까.
그녀 ● 매달 마지막으로 맞는 금요일에
그녀에게 물어주세요. ‘요즘 어때?’
난 이렇게 말할거야. ‘응! 난 아직도 설레♡’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