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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4월호 [기 획] 내안의 ‘다중이’- 내 안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게 평화를!
홍미용 ●
피곤한 여성주의자에서 모순덩어리 아줌마로!
80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간 나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남학생들은 선배건 후배건 동기건 모두 다 내 앞에선 말조심을 해야 했었다.
“oo 참 이쁘지 않냐?”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태도 고쳐!”
늘 이런 식이었다.
“짧아진 여학우들의 치마를 보니 봄이 한결 더 가까이 온 듯 합니다.”
따뜻한 봄날! 집회 사회를 보던 선배는 이 한마디로 나와 몇 몇 여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써 붙인 대자보 때문에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만 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남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들이댔던 ‘성평등’이라는 단일 잣대는 사실 내면에서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스스로의 ‘차별성’을 숨기기 위한 자기 방어적인 무기였다. 스스로가 경계에서 늘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이었음에도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이런 내 모습을 들키기 싫어 꽁꽁 숨겨 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에서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이 자신을 봐 달라고 고개를 쑥 내밀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이란 참 어쩌지 못하는 삶의 숙제거리였다.
같이 시위를 잡혀간 여학생이 예쁘다는 이유로 풀려나는 것을 보며 분노보다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꿈틀했을 때, 카리스마 있는 마초에게 나도 모르게 끌렸을 때, 날씬해지고 싶어 남 몰래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 학벌 좋고 돈 잘 버는 남자와 결혼해서 힘든 경제활동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등등 셀 수도 없는 많은 순간 나는 내다 버리고 싶은 나를 만나야 했다.
더구나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은 늘 선택의 기로에서 인정하기 싫은 모순투성이의 내 모습과 직면해야만 하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자식의 삶을 자신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행동 할 줄 아는 우아하고 지적인 엄마이고 싶었다. 수능 날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험장 교문에 엿을 붙여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은근히 비웃기도 했었다. ‘자식이 뭐 인생의 전부야?’라며 하지만 얼마 전 딸 아이이가 예중 입시를 치루면서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님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전 날엔 당사자보다 내가 더 걱정이 돼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을 붙들기 위해 비몽사몽간에 ‘부처님’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까지 했다. 시험 당일에는 고사장 앞에서 5시간을 줄곧 추위에 떨면서 아이를 기다렸고, 시험을 망쳐 울면서 나오는 남의 집 자식 앞에서도 무너졌다. 심지어는 합격자 명단에 자신이 없음을 확인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 아이를 보니 기부금 입학이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나도 내 모습에 놀랐다.
아이 문제로 이 정도니 ‘성평등주의’는 엿 바꿔 먹은 지 이미 오래라는 건 거론 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인간이 좀 철이 들긴 했다. 삶속에서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는 자기주장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고, 결혼 전 삶의 토대가 허약하고 머리로만 치열했었다면 지금은 생활 속에서 많이 강해졌다. 마음의 근력을 키웠다고 하면 좋을까? 또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겸손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내가 딸아이의 입시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지적이고 우아한 엄마를 내세우며 많은 엄마들의 과도한 자식사랑을 은근히 무시했을 거다. 물론 자식 앞에 눈먼 이기적인 모성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이해하긴 위해선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고자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들을 도울 수도 있고 적어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안의 수많은 모순 덩어리,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게 해 과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다중 인격자!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는 상냥한 고양이 같고 집에서는 사나운 사자 같다. 내숭덩어리에 고상하고 우아한 척을 자주 한다. 다른 엄마들처럼 때리진 않지만 한 번 야단을 치면 아주 오래전 일까지 끄집어낸다…… 한마디로 지독하다!”
위 글은 딸이 나에 대해 쓴 글의 한 대목이다. 오! 마이 갓! 나는 두 번 놀랐다. 아이의 눈이 너무 정확하다는 것과 표현이 생생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에!
그렇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은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 어떨 땐 의도적으로, 또 어떨 땐 오토매틱으로, 일일이 나열하자면 ‘천일야화’ 수준 이다.
아이를 야단 칠 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가 때론 냉정하고 집요한 것이 꼭 죄인 다루는 검사 수준이다. 하지만 전세가 180도 역전돼 아이를 단골 고객으로 맞이하는 세일즈 우먼이 되기도 한다.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본다. ‘고객(내 아이)’의 불평불만에 민감하고 엄마 역할이라는 ‘상품’의 품질 평가에 늘 전전긍긍해 한다.
남편에겐 무뚝뚝하고 애교라곤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물론 잘 웃지도 않는다. 바가지 박박 긁고 잔소리 하고 미해결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처럼 탐문하고 염탐하는 피곤한 마누라가 되기도 한다. 한 때는 비타협적이었던(?) 성평등론자가 돈 때문에 한없이 치사하고 비굴해 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나와 똑같이 삶에 대해 배우고 있는 그저 똑 같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여 이해심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될 때도 있다. 물론 아주 찰나이긴 하지만^*^
글이 좀 잘 써 질 때는 재능 있는 작가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10장짜리 원고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는 세상에 써먹을 능력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무능력자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밖으로 나오면 사정이 좀 달라지긴 해도 그래도 마찬가지다. 보들보들하니 부드럽고 남 얘기도 흥미롭게 잘 들어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긍정적이고 경쾌하고 싫고 좋고를 명쾌하게 표시 하는 사람일 때도 있다. 하지만 부탁을 거절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 일 때도 있고 남들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 받는 뒤 끝 많은 쫀쫀한 인간 일 때도 많다.
이 밖에도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세상에 없는 낙천주의자가 되었다가 우울한 비관론자가 되기도 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승리자가 되었다가 우울하고 비참하고 버림받은 희생자처럼 행동 할 때도 있다.
내 안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게 평화를!
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다른 수십 가지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관성 같은 건 별로 없다. 그래서 괴롭다. 보기 좋은 내 모습은 스스로 쉽게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맘 속 어딘가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 나오면 수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나는 괴롭다.
그러나 나는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인간의 온갖 다양한 모습(때론 추악한)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맘 편하게 받아들이고 인정 할 때만이 삶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그래야 선택의 순간에 경계의 흔들림 없이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잘 살아 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오가며 살고 있는 걸 아닐까? 내가 가진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잣대에 부합하지 않는 추한 모습을 맘 속 어딘가에 꽁꽁 눌러서 숨겨두지 말자. 내 안의 하이드씨에게도 햇볕을 보여주자. 꽁꽁 숨겨 두었다간 곰팡이 나서 썩기 십상이다.
홍미용 ● 40이 넘어 철들기 시작한 아줌마.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에 충실하게 살기위해 노력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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