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09년 3*4월호 [민우역사기행]예산에도 성(性)이 있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방자치단체 여성정책과 예산분석
김희정(희도리) ●
우리가 예산분석을?
이 사업은 2001년 시작됐다. 사업명은 왜 이렇게 긴 건지! 내가 담당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업명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방자치단체 + 여성정책 + 예산분석 그리고 당체 모르겠는 ‘성인지적 관점’까지!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여성운동만 열심히 하면 안 되겠냐’는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건 너무너무 열정적으로 이 사업을 함께 한 민우회 지부들의 활동 때문이었다.
우리는(예산분석을 진행하는 민우회 지부들과 사업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던 민우회 본부) 정말 열렬히 모였다. 성인지적관점이 무엇인지, 분석의 범위인 여성정책을 어디까지 볼 것이고 올해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예산분석을 위한 방법과 분석 항목을 통일하고 파워풀하게 모아내는 방법까지. 알아야 할 것, 의논할 것, 질문할 것, 그리고 지자체와 속 터지는 일들을 나누기 위한 워크샵은 불안과 열정으로 그득했다고 기억한다.
모일 때마다 그간 진척된 예산분석 상황을 나누면서 접두사처럼 하곤 했던 말이 있는데 “가게부도 제대로 써 본 적 없고, 동그라미가 6개가 넘어가면 속으로 ‘일십백천만…’하며 되뇌는 내가(우리가) 이 두꺼운 지자체 예산서를 뒤적이며 예산분석을 한다는 게 참 믿어지지 않는다.” 는 것이다.
예산에도 성(性)이 있다
뭘 몰라 시작할 수 있었고, 예산분석이란 게 쉽지 않았지만, 하면 할수록 동네 여자들이 우리 동네 예산 분석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일단 ‘성인지적관점’이란 게 말로 어렵지 민우회 여인네들 감수성엔 이미 있는 개념이었다. ‘같은 화장실을 짓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반영해 화장실 숫자와 시설을 다르게 짓는다는 게 성인지적 관점이구나. 여자들이 애들을 데리고 다니니까 아동용 화장실을 함께 설치하는 것이 1단계라면, 아니 왜 꼭 여자들만 애들 똥오줌을 누여야 하나? 남자화장실에도 아동용 화장실을 넣고 기저귀 가는 편의 시설을 넣으라고 하면 되는 거구나! 동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자들이 유모차 끌고 다니기 걸그적 거림이 없는 도보를 만들라는 것도 성인지적관점이구나.’ 우리가 늘 하던 말을 조금 있어 보이게 바꿔하는 말이 성인지적 관점이었던 거다.
우리가 첫해 분석한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정책은 예상대로 빈약했다. 예산규모 중 1~2% 정도밖에 안 되는 비율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여성정책은 정부의 기본 항목만을 전달하는 수준이었고, 정책과 예산을 통해 결과적 성평등을 추진해야하는 지자체가 ‘착한 며느리 되기’ 같은 이율배반적인 사업을 하는 것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예산분석 자료를 위해 지자체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토론회를 열기까지 오만가지 과정도 우리에겐 살아있는 학교였다.
성인지성 + 지역인지성
예산분석을 두 번째로 진행한 해에는 나름 지역에서 한(?!) 분석하시는 전문가들과 만났다. 그러나 공통 예산분석 항목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왜? 우리 동네 여성정책의 특성을 반영하려면 강조해야하는 부분이 달라야했기 때문이다. 성인지성은 기본이고 지역인지성도 함께 논의됐다. 예산분석을 바탕으로 한 실천 활동이 결합돼야 한다는 것도 공감되면서 여성주간행사를 모니터도 했는데, 여성주간(7.1~7)이 단체장 취임한 달과 겹치면서(단체장선거가 5월경에 있고, 취임식을 하는 달이 7월이다) 풀뿌리 관변 여성협회 회장이 단체장에게 취임 몇 주년 기념 꽃다발을 증정하는 것으로 목격하기도 했다(바로 성명서로 응답해 주었다).
지자체 여성정책의 수준은 지역여성단체의 역량을 반영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해 몇 년간 예산분석을 진행했던 곳에 여성정책 수준의 향상이 있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직접들은 얘기인데, 성인지적 예산 편성이 정부지침으로 발표된 후 공무원들이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도봉구에서 왔다고 하니 “왜 여기까지 오셨느냐. 그 지역 민우회에 물어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영국에서 발간한 성인지적 예산분석 “10대 좋은 사례”에 선정돼 소개됐을 정도로 (영어로 돼 있어서 목차만 겨우 봤던 기억이 난다) 주목받기도 했었다. (세계 10등 안에 들었다는 거) 예산분석 전문가가 우리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으나 구체적인 자신감을 갖게 했다. 비교적 시민사회에 호의적 이였던 정부흐름에서 정책의 실체인 예산분석을 시작한 것은 여러모로 시기적절했다는 생각이다.
예산과 정책에 대한 기본기는 여러모로 빛을 발했다. 그해 소위 관변 단체 중심으로 재편되려고 했던 사회단체보조금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예산분석 2년차에 치룬 지자체 선거에서도 전문성 있게 여성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이 사업이 의미 있다고 기억된다면 그건 지자체가 우리말을 얼마나 알아먹고 반영했냐는 것보다, 왜 우리가 예산과 정책이라는 기본기를 유지해줘야 하는지 체감하게 했다는 것에 두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사업의 의미는,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 이 정도의 애정은 쏟아주셔야 한다는 ‘열정의 기본기’를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심하게 감사한 분들!
김경희 선생님
예산분석 초기 자문위원으로 서울시 분석과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신 분. 지금은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계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귀여운 따님도 많이 컸겠어요.
오관영 선생님
예산감시 활동을 한발 앞서 했던 시민행동 사무국장님으로 당시 소속단체보다 민우회 체류시간이 더 길었던 분이다. 당시 인기 최고셨고,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오관영 선생님. 다시 뒤돌아 봐도 감사합니다.
김희정(희도리) ●나의 20대를 온통 흔들어 놓았던
민우회는 저의 사회적 친정입니다.
지금은 민우회상근활동가에서 민우회 회원으로
또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