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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4월호 [민우칼럼 창]연쇄살인범을 잡으려다 우리가 놓친 것
권김현영 ●
연쇄살인범의 여성혐오
연쇄살인범이라는 말을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FBI 내 심리전담반인 엘리트행동과학연구소의 로버트 레슬러는 연쇄살인범들의 80% 이상이 중산층 이상의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성도착자들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사실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도착이라는 혐오발화는 성적소수자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고, 국공립보육시설이 7%도 채 되지 않는 한국의 양육현실은 외면한 채 마치 냉담한 어머니가 문제라는 왜곡을 만들어낸다. 더군다나 연쇄살인범의 표적이 되는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환경이 살인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현실 역시 은폐시킨다. 유영철 사건이 있어났을 때에도 그의 어린 시절의 불행이나 아내와의 불화가 범죄를 저지르게 한 심리적 문제를 낳게 했다고 보도되었고, 부르는 사람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어디든 갈 수밖에 없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들이 놓여 진 사회적 위험이 강조되기 보다는 그 여성들에 대한 도덕적 단죄가 이루어졌다. 강호순은 자신의 살해동기를 ‘여성혐오’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하고 언론은 그것을 그대로 대서특필했다. “여자만 보면 살해충동”이라는 검고 굵은 글씨는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여성혐오의 원인은 다시 여성혐오로 돌아온다. 여성혐오가 그 자체로 사악한 일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도 강조되지 않았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에 감춰진 사악함
한국의 언론들은 여전히 연쇄살인이 일어날 때마다 연쇄살인범에게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지만, 외국의 전문가들은 이미 전문용어로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흔하게 쓰이는 단어인 ‘사악함’이라는 말로 이런 범죄를 표현하고 있다. 2001년 미국정신과의사협회 발표장에서 뉴욕대의 마이클 웰너 교수는 사악함을 ‘나약한 이들에게 감정적 상처를 주고 그들을 위협의 대상으로 삼아 고통을 가하고 그러한 모든 행동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의향’으로 정의했다. 요점은 연쇄살인범이 얼마나 악마 같은 지는 그가 가진 어떤 지역적 성적 계급적 특성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데 쾌락을 가진 인물이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수치스럽고 사악한 일이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그런 핵심이 사라진 결과 우리는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될 행동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여자들은 더욱 더 밤길을 무서워하게 되고, 남자들은 더욱 더 큰 소리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당당히 요구하며, 성적 취향의 다양성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이 된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연쇄살인범의 프로파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비명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희생자였던 군포 여대생의 가족들은 경찰조사가 발표되자 “우리 아이는 남 차 함부로 탈 아이 아니다”며 분노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딸은 행실이 매우 바른 아이였다”며 “어디 20살 넘은 아이가 남자 차를 함부로 타겠느냐”며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엄마 딸 바르게 잘 컸지? 그러니깐 이렇게 잘 컸지’하고 말할 정도로 행실이 바른 아이였다”고 말했다며 경찰의 보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어머니는 딸의 죽음을 명예롭게 지켜내기 위해서 딸이 연쇄살인의 표적이 되곤 한다고 알려진 ‘그런 여자’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여자’들이 죽었을 때 사회는 애도는 커녕 동정과 연민조차 보여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족의 분노는 곧 강호순의 얼굴 공개 요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까지 드리워진 낙인에 대한 공포가 범인의 얼굴 공개라는 다른 방식의 낙인찍기로 과연 해소될 수 있을까.
사악함의 정체는 약자혐오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자는 여론은 자신을 형사와 동일시하는 마음을 반영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강화연쇄살인범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고 말할 때, 영화를 보던 나는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범인을 쫓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그저 내내 ‘미치도록 무서웠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 중 누구를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어 막막했다. 마피아 게임에서처럼 모두 형사인 척 하지만 모두 마피아인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면 서로 공모해서 서로를 죽이는 상황에 놓여 시민의 승리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악함과 싸울 수 있으려면 정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사악함의 정체는 그가 가진 배경과 특징 때문이 아니었다. 강호순은 여자들이 얼마나 쉽게 차에 올라탔는지를 설명하며 비웃었다. 그는 여자들을 죽일 때 거의 힘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체를 묻기 위한 고역을 최소화하면서 고인에 대한 어떤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 그 사악함의 정체는 약자를 혐오하고 소수자를 미워하는 데에서 쾌락을 얻는 바로 그 마음에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감시와 더 많은 처벌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정이입능력이 현저하게 결여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악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사악한 자의 얼굴을 보려고 하고 있다. 괴물의 얼굴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역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일 뿐일 텐데도. 무서운 일이다.
권김현영 ● 민우회 집 <마포나루>와 딱 100미터 거리에서 5명의 비혼 여성들과
2마리의 고냥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도통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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