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4월호 [민우ing]인권까지 삽질하는 MB 정부
강선미(폴) ●
2001년 11월 ‘인권’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생겨났다.
이후 약 8년 동안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다양한 이들의 인권침해 및 차별 문제들을 다루어온 인권위는 그간 어디에서도 하소연할 수 없었던 힘없는 개인들이 겪은 인권침해나 차별에 대해 터놓을 수 있는 기구로서 그리고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제언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09년 현재, 인권위의 정부정책 시정 요구 역할이나 인권위를 통해 인권침해 및 차별로부터 구제받고자 하는 이들의 진정 창구가 줄어들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작년 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인권위 조직축소방침을 최종통보 한 상황인 것이다. 광주, 부산, 대구 3개 지역 사무소 폐쇄를 포함하여 체제 축소 및 인원 감축을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사무소의 경우 서울 본부로의 진정 접수 및 처리가 어려운 해당 지역권 주민들(농민, 생활시설인, 고령층 등)의 접근성을 보다 용이하도록 하고 사건의 조사·처리 면에 있어서도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와 역할성이 분명히 있다. 더구나 해마다 진정상담민원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면전(面前) 진정 외에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 한다’는 행안부의 입장은 지역 사무소 폐쇄 방침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또한 현재 5국 22과 체제를 3국 10과로 축소시키고, 인원을 208명 146명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은 해마다 증가되고 있는 진정 업무를 포함하여 인권 관련 법령·제도·정책 개선권고, 인권침해 예방조치, 인권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홍보, 인권상황 실태조사 등과 같은 인권위의 다양한 역할들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문제는 독립기구로서 그 의미와 역할성이 상당한 인권위를 정부(행안부) 조직의 영향력 하에 두겠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를 포함한 211개 시민 단체들(국가인권위 독립성 보장 및 축소 철회를 위한 인권시민사회운동진영 공동투쟁단)은 3월 2일 이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과 간담회를 가졌다.
독립기구 국가인권위원회보다 정부 기관 국민권익위원회?
공동투쟁단과 행안부 관계자의 면담 중 행안부측은 인권위가 축소된다 해도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그 축소를 메울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진정 접수를 받아 인권침해 요소를 해소하고 차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독립기구인 인권위와 다르게 정부기관인 권익위1)는 부패신고 상담과 고충민원에 대한 신청을 받는 기관이다. 권익위 활동내용이나 방향 자체가 인권위보다 협소한 만큼 활동대상이나 범위 역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같이 그 위상과 방향성이 엄연히 상이한 기구 간의 비교는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안부측은 인권위와 권익위의 차이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권(權)’자가 들어가니 비슷하지 않느냐는 어이없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이 무지하고 불성실한 답변만으로 MB 정부의 바닥을 드러낸 인권 감수성 척도를 유추할 수 있기는 하다.
인권위는 파리원칙2)에 따라 만들어진 독립기구로서 권익위와 다르게 입법·행정·사법 어느 부분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권위는 외압에 큰 영향력을 받지 않은 채 인권침해 및 차별 소지가 있거나 문제가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해당 정부 부서에 직접 시정 요구를 해올 수 있었다. 일례로 2005년 논란이 되었던 비정규직 관련 법안3)에 대해 인권위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 취지를 살려 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여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예로 2006년 인권위는 ‘인권사각지대’인 수감/교정시설여성 재소자의 성희롱 및 인권상황에 대해 자체 방문조사한 후 그 결과를 통해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법무부장관에게 여성 재소자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이처럼 인권취약계층 관점에서의 인권위 활동이 가능할 수 있던 바탕은 독립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만약 인권위의 독립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과연 정부 정책에 대한 개/시정 요구, 개선 방안 제시 등과 같은 역할들이 과연 가능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의 ‘불편한 진실’을 직언하는 독립기구 인권위의 조직 축소 방침 내림으로써 우리 사회 내 인권문제 마저 삽질하려는 현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점점 더 위기의식만을 고양시킬 뿐이다. 이번이 인권위 조직 축소라면, 다음은 또 어느 부분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삽질 해댈 것인지, 염려심이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일상 속 인권·차별 감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인권위 조직축소방침의 배경으로서 ‘경제위기’와 ‘운영효율성’과 같은 행안부의 근거는 결과적으로 MB정부의 정책 전반에 있어서 인권 감수성의 바닥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방책으로 정부와 기업은 ‘고통분담’을 주창하면서 결국은 가장 먼저 힘없는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최저임금법 개정안, 인턴제 적극 도입, 대학졸업자 초임 삭감 등이 그러하다. 인권은 ‘효율’의 잣대로 좌지우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인권’보다는 ‘경제’를 중심으로, 정작 일상에서 생동하는 ‘사람’을 소외시켜가며 사회를 재구조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수록 팍팍해지는 분위기 내에서는 인권침해나 차별에 대해 말하는 건 더욱 더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말은 할 수는 있더라도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쉬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내 인권·차별 감수성은 점차 흐릿해질 우려가 생겨질 수밖에 없다.
인권은 문화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인권뿐 아니라 다른 이의 인권에 대해서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은 한 사회를 아우르는 문화이자 개개인의 소소한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에 올 한해 민우회 반차별 활동은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 내 차별 및 인권 문제들에 주목하여 사례 수집 및 대응을 통해 무감해지고 있는 일상 속의 차별·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것들로 펼쳐질 것이다. 인권위에 대한 무분별한 조직축소방침 등 인권마저 삽질하려고 하는 현 정부 하에서는 일상 속 차별·인권 감수성 높이기 활동이 쉽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하는 문화는 대중 캠페인을 통한 인식 고양 활동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인권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진 정책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행안부의 인권위 조직 축소 방침은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인권위가 정부 정책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독립성이 보다 확고해질 필요가 있다.
1) ‘부패방지와 국민의 권리보호 및 구제를 위하여 과거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의 기능을 합쳐(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http://www.acrc.go.kr/ 위원회 소개 참고)’ 지난 해 2월에 만들어졌다.
2) 인권위는 1992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파리원칙 중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국가 인권기구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하여 그 구성과 권한의 범위를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부여받아야 함)’에 따라 만들어졌다.
3)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 에 관한 법률안ㆍ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강선미(폴) ● 산책을 하기에 기꺼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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