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4월호 [민우ing] '국가복지정보시스템', 그 거대한 매트릭스의 함정
최김하나(하나) ●
여기는 매트릭스의 세계. 어느 날 네오는 갑자기 들이닥친 스미스 요원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영문도 모른 채 몸을 피하던 네오는 불현듯 컴퓨터 모니터에 떠오른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2009년 3, 4월호 <함께가는 여성> 5페이지를 보라 - 트리니티”
네오는 곧바로 <함께가는 여성> 5페이지를 펼쳐 든다. (네오는 민우회원임♡) 동시에 굉음이 울리며, 순간 이동! 정신을 차려보니 네오의 앞엔 스미스 요원들 대신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서있다.
네 오: 당신들은 누구냐. 아까 날 공격하던 자들과 한 패인가? 여긴 어딘가?
트리니티: 나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성폭력 피해생존자 트리니티이고, 이쪽은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활동가 모피어스이다. 우리는 국가복지정보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당신을 공격했던 그들이 누군지 알려주겠다.
네 오 : 국가복지… 뭐? 뭔지도 모르고 함께 할 수도 없다!
모피어스: 국가복지정보 시스템, 다시 말해 사회복지 시설들의 운영정보를 모조리 기록하여 관리하고 보관하는 전자정보 시스템이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 한부모가정 등 시설 입소자와 종사자에 대한 개인 정보는 물론, 후원자 정보나 회계 관리 등 시설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이 이 시스템 상에 기록되는 것이다.
네 오 :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민우회원 답지 않게 띨빵(?)하다;;)
트리니티: 정보인권 감수성이 바닥을 기는군! 쯧쯧. 저런 민감한 개인 정보는 유출될 경우 극심한 피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정보 수집 자체를 제한하도록 국제 규정에 명시되어 있단 말이다! 각 시설마다 운영에 필요한 만큼 각자 관련 사항들을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 어째서 저렇게 과도한 개인 정보를 단일한 시스템 상에 모아 두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네 오: 그런 중요한 정보들이라면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면 될 것 아닌가?
모피어스: 옥션이나 다음 같은 거대 사이트에서의 정보유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는 처음 모으기는 어려워도 일단 집적되기 시작한 이후의 안전성은 누구도 100% 장담할 수 없다. 0.1%의 누출 가능성만 있다 해도 이미 사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때문에 유출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정보는 애초부터 수집하지 않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네 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싸우는 것인가?
트리니티: 지금까지 사회복지시설에서 사용하도록 되어있던 국가복지정보 시스템을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상담소와 보호시설에서까지 사용하도록 정부에서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든 상담내용과 입소자 관련 기록을 죄다 입력해야하는 ‘새올행정 시스템(이하 새올)’ 사용을 요구하더니, 관련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자, 이번엔 ‘그 대신 국가복지정보 시스템의 일부를 사용하라’며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몇몇 지자체에서는 해당 지역 상담소와 시설들이 이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보조금을 줄 수 없다며 일종의 협박을 하고 있기도 하다.
모피어스: 가정폭력(이하 가폭), 성폭력(이하 성폭) 상담소와 시설의 경우 내담자·입소자에 대한 비밀 유지와 안전에 관한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새올’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힌 여성부가 이번엔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의 회계기능을 사용하라며 나선 것이다.
네 오: 회계기능만 사용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소지와 무관한 것 아닌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면 회계 보고를 해야 할 것이고, 이런 시스템이 있다면 더 편리해질 것 아닌가.
트리니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군. 물론 일부 상담소에서는 이 시스템의 회계 기능이 편리하기 때문에 지자체에 보조금 사용을 보고할 때 유용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스템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회계 기능이 정말로 편리하려면 상담소나 시설의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상세히 입력해야만 효율성이 발휘된다. 그러려면 내담자의 의료비 지원 정보나 종사자 인건비와 관련한 개인 정보가 또다시 기록되어 중앙 집적 되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시스템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모든 정보의 집적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모피어스: 이를 방지한답시고 보조금에 국한한 회계 정보만 입력하게 된다면 각 상담소나 시설 마다 자체 회계 처리 방식이 있기 때문에 결국 이중 작업을 해야 하는 엄청난 업무 과중 부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간 보조금 사용과 시설 운영에 대한 회계 보고는 수기 장부에 대한 감사로서 철저히 이루어져 온 부분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진행해야 하는 여성폭력 근절사업을 열악한 정부 보조금으로나마 열의 있게 진행해온 상담소와 시설들의 현장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 발상만 앞세운 잘못된 지침이라 할 수 있다.
네 오: 그런 것 같군. 그렇다면 저들이 나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리니티: 저들은 매트릭스 정부, 일명 M정부의 스미스 요원들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국가복지정보 시스템 상에 후원자의 정보를 입력하는 메뉴가 있다. 후원자의 주민등록번호에서부터 주소, 연락처, 이메일까지 모든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야 한다. 당신은 민우회 회원인 걸로 알고 있다. M정부로부터 ‘불법 시위 주도 단체’로 규정된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 후원을 했다면, 그 정보가 어떻게 유출되고 어떤 식으로 악용되었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지.
네 오 : 그런 말도 안 되는!! 어디에 후원을 했는지, 내가 누군지를 왜 모은단 말인가!
모피어스: 이제 가폭, 성폭 상담소와 시설들에 강요되는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알겠나? 과도한 정보 집적의 문제는 이미 교육행정시스템 ‘NEIS’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효율과 정보인권은 맞바꿀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자, 어때? 우리의 싸움과 함께 할 텐가?
국가복지정보시스템 사용을 둘러싼 상담소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셨나요? ^-^
물론 네오의 후원 정보가 노출되어 공격 받는 상황은 픽션이기도 하거니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모든 사회복지시설과 일부 가폭·성폭 상담소 및 시설들이 현재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상담소와 시설들 역시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시스템 사용을 종용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종사자 정보와 내담자 지원 사업을 비롯한 회계 전반, 후원자 정보까지 고스란히 입력되어 집적되는, 위험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이 시스템을 ‘효율’을 앞세워 사용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 걸까요? 공짜 경품을 위한 온라인 이벤트에 거리낌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우리의 습관을 비롯하여 정보인권 감수성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정보 인권이 보장되고, 각 단체의 활동 성격에 알맞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그 밖에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은 부당한 시스템 사용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실 거죠? ^0^
1) 이 글은 상담소 ‘오이’가 ‘새올 행정 시스템’에 관하여 여성부에 제출한 의견서, ‘시스템에 가려진 질문에 주목하라!’를 참고했습니다. 새올 행정 시스템은 행정안전부가 총괄하는 시스템으로 각 지자체의 행정관련한 모든 정보가 집적되어 있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최김하나(하나) ●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엔
선생과 의사가 있대요! 난… 왕진 요청!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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