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6월호 [9개의 시선]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끈질긴 도전으로 만난 인연'
9개의 시선 -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끈질긴 도전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
이은영(노원마을모임) ●
그때가 벌써 9년 전이구나! 좋은 경치에 반해서 미등기아파트의 개념도 모른 채 노원구에 5개밖에 없는 미등기아파트에 겁도 없이 덜컥 이사를 한 것이...
이사 후 2년쯤 지나자 미등기의 문제가 진행형으로 내게 다가왔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 앞에 우리 땅까지 불법으로 꿀꺽한 새 아파트가 들어서려고 하는 시점이라 우리 아파트 소수의 주민들의 상실감이 너무 컸다. 새아파트 뒤의 10년 묵은 미등기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초라함이 겹쳐 주민들은 홧병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간만에 피가 끓어 미등기의 원인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구청의 과중한 기부채납요구와 몇몇 개인의 비리가 원인이라는 것을 안 후 주민들과 함께 등기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우리 주민들은 6개월 여를 잃은 땅문제로 싸우다 약간의 공사에 따른 소음에 대한 보상만 받고 흩어지며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주민들의 뜻을 등기로 마무리 해야한다고 맘먹고 2년여를 동대표로 나서서 여성들로 동대표회를 구성하고 부녀회와 공동회의하며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산너머 산, 고개너머 고개인 10년 묶은 아파트의 문제를 적게는 5명, 많게는 50명, 급기야 150명 동원 규모의 시위까지 한마음으로 뭉쳐 함께 참여한 주민들의 힘으로 2005년 드디어 등기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등기를 축하하는 플랭카드가 걸리고 주민들은 건물과 토지가 함께 등재되어 있는 정상적인 등기부등본을 하나씩 받아안고 기뻐했고, 우리는 조촐한 자축파티를 하고 바로 동대표를 사임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맛을 지대로 느껴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 후 4년 간 당시 함께했던 주민들은 여전히 부녀회와 동대표로 활동하며 (번갈아) 각자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며 재미나게 동네를 위해 봉사해 오고 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서로 의견을 묻고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합리적인 풍토가 생겨났고, 고도로 숙련되어 지금 그분들의 역량은 동네에서 썩기(?) 아까울 지경이다. 구심역할을 했던 몇몇 분들은 지금도 동네와 이웃의 일에 적극적으로 애정을 보이시고 올해 들어서는 아예 민우회에서 하는 각종 모임, 교육에 참여하신다. 그 사이 인근으로 이사를 간 주민들도 여전히 모임에 적극 합류하고 이곳에 애정을 준다.
그리고 작년 겨우내 심심하고, 답답하고 사회적으로 경기가 무척 안좋아 모두의 마음이 스산할 때쯤 이럴 땐 ‘걍~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으므로 기회를 노리던 중 민우회에서 연결해준 모 단체에서 진행하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에 우리 노원 모임이 동참하기로 했다. 20년만에 뜨개질이라는 걸 해본 우리들은 서로의 낯선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아이들은 남을 위해 뭔가를 하는 엄마를 보며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같이 한 달 반을 뜨개모임을 했다.
우리 주민들은 뜻이 있어 민우회를 찾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몇몇 민우회원의 면면을 보면서 조금은 낯설게 민우회를 알아가고 있는, 새로운 경로의 회원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찾아온 민우회에 얼마나 감동할지 혹은 실망해 떠날지… 그래도 민우회는 상관없단다. 항상 댓가를 바라지 않는 공급에 익숙한 우리들의 삶이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삶의 철학 속에 허덕이는 우리내 삶이므로 민우회의 그 포용력(?)에 감동하지만 뭐 어떠랴. 좋은 사람들이라면 서로에게서 약을 배울 것이리라 믿는다.
민우회에서 노원마을모임이라 칭하는 우리 모임은 적으면 5명, 많으면 10명 넘게 모여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도 돌아보며 민우회에서 하는 각종 강좌에 참여하고 민우회의 좋은 교육자료도 접하며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어가고 있다. 노후의 당당함을 살짝 바라면서 면월경대만들기를 하며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바느질하는 서로의 모습에 또 놀래고... 어떤 분이 나보고 여성스러워졌다나(?)... 그래서 아들을 키울 땐 남자처럼되고 딸을 키우자니 여성스러워졌나 모르겠네요... 했다.
게다가 동네가 좁은데 5명 정도는 모이다 보니 뭇여성들이 그렇게 색안경 끼고 보는 정치적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예를 들면, 노원구의회 방청같은 건 “참 쉽죠~ 잉?” 하며 취미 생활로 즐긴다. 걍 앉았다 오는 거지만 가슴을 친다. “애고 내가 뽑은 놈이 저런 놈이여?” 하며…
요즘 사람들은 참 아는 것이 많다. 정보가 넘쳐나고 주부들도 예전같지 않아서 정말 여러모로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현명하다. 특히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내 눈엔 더 예뻐보인다. 고맙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도 어떤 의미 있는 만남, 좀 건질 것이 있는 만남,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만남이 뭐 없을까 할 때 민우회와 연결이 되었고 민우회의 지원 속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좋다. 나만의 착각인가?
좋은 동네에서 선량하고 순수한 주민들과 함께 맘껏 좋은 일을 의논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이 동네에서 끈질긴 도전을 통해 얻어낸 진실이고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분들을 만나서 참 많이 배우고 열리고, 민우회를 만나서 중심을 잡고 소통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지러운 세상도 좋게 변화할 날이 오겠지.
천천히 우리처럼 서로 배우고 끌어주고 그렇게 사는 우리나라가 되면 좋겠다.
사람으로서 중심을 잡고 자유롭게 사는 것,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것, 졸렬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을 민우회와 함께 우리 모임에서 작게 실현하며 사는 것 . 이것이 내가 우리 모임을 통해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이은영 ● 동북민우회 시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은영샘. 올해부터는 운영위원으로 조직위원으로 활동을 새롭게 시작한 이은영샘의 열정이 새록새록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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