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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6월호 [기 획- 촛불,잊을 수 없는 그 의미하나]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할게.
[기 획 - 촛불,잊을 수 없는 그 의미하나]
이제 우리들의 촛불을 이야기 할게. - 누가 우리를 갑툭튀*라 부르는가
윤보라 ●
어떤 기억을 현재와 분리하여 객관의 눈으로 조망하는 일이 가능할까? 어떤 기억을 지나간 역사로 반추할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최근 ‘촛불’을 둘러싸고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떤 사건이 ‘기억’으로 재구성되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저 1년이면 충분한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촛불의 의미를 모색하는 진지하고 촘촘한 논의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대부분 ‘그 해 촛불은 아름다웠네’ 같은 촛불예찬이나 ‘촛불을 들었어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더군’ 식의 패배적 언설이 주를 이룬다.
사실, 그랬다. 지난해 촛불은 정말로 가슴 뛰게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요동치는 민주주의를 맛보게 해주었다. 우리는 그 광장에서 새로운 질서와 욕망과 정치를 생성해낸 입법자였고, 촛불과 더불어 광장을 메운 것은 거대한 상상력과 유머의 에너지였다.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은 그 열기를 아마 가늠할 수 없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 것만 같았다.
촛불이 ‘끝나고’ 난 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에 진저리치는 것도, 사실이다. 나처럼 워낙 신체 건강한 탓에 입맛이 없다는 말을 한 번도 실감 못한 사람도, 언젠가부터 신문을 펼치면 도저히 음식을 삼킬만한 기분이 들지 않아 밥숟가락을 내려놔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촛불의 물결 앞에서 두 번이나 머리를 숙인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자 촛불을 든 손목에 수갑을 채우느라 바빴다. 저녁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믿기지 않는 소식들을 접하다보면 나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싸대기를 맞는 기분이 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말 얼얼한 것 같은 두 볼을 감싸 쥐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촛불을 들었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 촛불은, 졌구나.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가장 맨 앞에서 촛불을 들던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밥을 먹다가 “10대 아이들은 학교로부터 억압 받아 광장에 나왔고, 주부들은 식탁의 안전을 걱정하며 광장에 나왔는데, 이도저도 아닌 젊은 여자들은 어떻게 해서 집회에 나오게 된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 기억이 난다. 20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광장에 ‘갑툭튀’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대부분 저런 식의 놀라움이었다. 비장해야 할 집회를 유쾌한 축제로 뒤바꿔놓은 우리들을 보고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고, 몇몇 사람들은 집회를 월드컵 응원하듯 소비하지 말라며 짐짓 근엄하게 꾸짖었다. 아마 그들은 우리가 이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우리가 광장을 점령한 이유를 찾느라 바빴을 것이다. 아니, 갑자기 저 여자들은 어디서 나온 거지? 집에서 밥 할 나이도 아니고, 학교에서 억압받을 나이도 지났는데?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느라 정치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여자니까 태생적으로 먹거리에 예민하다고 치자. 일단 여자니까 거대 이슈보다 생활정치에 민감하다고 해놓자. 어쨌든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잖아.
하지만 광장을 메운 여자들의 행렬은 훨씬 예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귀여운 후라이드 치킨 그림 옆에 ‘배운 여자’라는 글자를 깃발에 새기고 광장에 나온 어느 패션 카페 회원들은 (이 모든 사단의 시발점이 된)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나라의 앞날을 걱정(?) 하느라 게시판을 한숨으로 뒤덮었다. 내 피부타입에 이 로션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묻는 게시글 속에서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을 성토하던 화장품 카페의 회원들도 있었다. 지난해 초여름을 수놓은 거리의 촛불은 그런 여자들로부터 점화됐다. 모두가 그 핑크빛 깃발을 보고 당황했지만 정작 우리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저항의 방식은 전부터 예비했던 것이다. 그저 게시판에서 놀던 대로, 친구와 문자로 소통하던 대로 거리를 대했고, 그 방식이 곧 촛불의 방식이 되었다.
남에게 훈수 두는 버릇이 아직도 남은 몇몇 386들은 촛불집회를 두고 세대론을 적용하여 ‘저항하는 10대 vs 철없고 무기력한 20대’ 구도를 만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혹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들의 눈에는 이 유쾌한 20대 여자들이 보이지 않았나보다. 그들이 우리를 보지 못하는 사이 촛불에 대한 후일담만 무럭무럭 쌓여갔다.
그래서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촛불의 성패를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이야기 사이에서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상황에 대한 무기력한 패배감 속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 그때 하이힐을 신고 촛불을 들었던 그녀들이 있었지. 그 많던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추억만 남게 될까봐 두렵다.
사실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거리낌 없는 저항의 주체로 있어왔다. 다만 역사를 써온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만 객체로 존재했을 뿐이다. 지난해(그리고 지금도) 거리에 모였던 사람들은 먼 옛날의 세대가 아니라 피와 살이 돌고 있는 지금 우리, 지금 이 사람들이 아니던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적극적으로 촛불에 대한 기억을 되새김질을 하고 싶다. 광장에 나섰던 우리들이 또다시 구경꾼이 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촛불 이후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이유를 이야기 하자. 그렇게 터져 나온 우리들의 목소리는, 촛불이 성공했는지 망했는지 그 성과만 가늠하는 이분법의 언어 밖에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 언어 너머의 공간에 새로운 촛불이 켜질지도 모를 일이다.
윤보라 ● 달달한 고학생
*'갑툭튀'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는 것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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