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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6월호 [기 획- 촛불,잊을 수 없는 그 의미하나]촛불 밖에서 바라본 촛불
[기 획 -촛불,잊을 수 없는 그 의미하나] 촛불 밖에서 바라본 촛불
광녀니 ●
‘촛불이 나에게 남긴 것’이란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고 3일을 생각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촛불’이
‘ 나’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더구나 난 요즘 무기력하다. 소통되지 않는 사회가 힘들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난무하는 현실이 버겁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까지 나와 촛불을 들고 요구했고 성명서, 의견서, 기자회견, 캠페인을 했지만 정부는 들어주지도 바꾸지도 않았다. 두껍고 높은 콘크리트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 거지??’ 라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현재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런 상태에서 촛불이 나에게 남긴 것에 대해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나 써야 하기 때문에(^^;) 주제에 약간 벗어나 그냥 막~ 되는대로 써본다.
하나이지 않는 촛불 - 자발적 주체들
‘촛불’은 무엇, 누구일까? 대중 집회를 처음 나온 사람부터 옛날에 운동권에서 날렸다는 전대협(맞나?)까지... 거대한 서울지역의 촛불에 참여하고 싶어 온 다른 지역 사람들, 심지어 촛불 집회를 구경(관광)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많은 개인들, 온라인 동호회, 직장 동료들, 같은 학교 학생들, 동창회, 예전에 운동했던 그룹, 시민사회단체, 노조 등 촛불 주체들의 정체성은 너무도 다양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와 의견은 더 다양했다. “광우병뿐만 아니라 다른 의제들도 이야기해야한다. 아니다. 광우병 사안만 가지고 해야 한다. 매일 촛불만 켜면 뭐하냐? 집회는 그만하고 실질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들 찾아보자, 여의도 앞으로 가야한다, 청와대 앞으로 가자, 이순신 동상을 넘어야 한다. 넘어서 뭐하냐... 언제까지 집회만 할 거냐(반복되는 되새김질) 등등...”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은 모두들 동의 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논점들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촛불 집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너무도 달랐다.
촛불의 배후세력이 누군지 그리고 초를 무슨 돈으로 사는지 알아내라는 MB의 발상은 위로부터 조직화되는 사회(대중을 동원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아마 MB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 진보 운동진영이 더 놀랬을 것이다. 운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노조, 아무도 조직화 하지도 않았는데 대중들 스스로 만들었다. 물론 나중에 운동단위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많았던 촛불에서는 한줌이었다. 혹자들이 촛불을 이들이 조직하고 선동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시민사회단체나 노조 등은 그 많은 사람들을 조직할 능력이 없다. 다 알다시피 단체와 노조가 주체하는 집회에 사람들이 얼마나 오는지... 이런 촛불에게 기존의 시민사회운동 방식은 한계가 있었고, 하나의 구호 아래 모인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라는 나의 생각을 현실로 경험했다.
운동이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피켓과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기본 4~5시간을 걷고, 뛰고 김밥과 물을 나르고, 명박산성을 넘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나르던 사람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까? 매일매일 나오는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새벽 3~4시에 집에 들어가서 인터넷에 오늘 집회 이야기를 올리고 내일을 기약하고 아침에 자신의 일터로 학교로 가거나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다운시키랴, 조·중·동 및 광고주들에 항의 전화하랴, 불매 기업 리스트 외워 물품 골라서 사랴, 패러디 포스터, 만화 만들려고 포토샵과 씨름하랴, 오프라인 촛불 집회에 참여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카메라와 노트북 들고 뛰랴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온라인 게시판의 글들은 힘들지만 좋단다. MB 때문에 이런 생고생을 한다고 MB를 욕했지만 재미있어 보였다.
내가 온라인에서 본 사람들과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에서 부르짖는 대의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라는 거대한 목표의 당위성만을 가지고 참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체를 즐기지 않는 한 그들이 만들어낸 유쾌한 패러디와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는 당위성, 책임감, 의무감으로만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깃발이 없는(소위 어떤 조직에 소속 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 ‘깃발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모이기 시작했다. 집회에서 과도한 집단문화를 드러내고 그곳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깃발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 이런 역발상은 짜릿했다. 엄숙한 구호와 잘 써진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패러디 포스터와 한 줄의 조롱으로 우리의 현실을 꼬집어 설명하고 상대방을 설득했다. 집회에서만 사용되는 구호를 일상의 유행어로 만들었고 그래서 운동이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나는 운동은 모두가 하는 것이고 자신의 일상의 삶에서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노조든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하는 것도 운동이지만 우리 각자 개인의 삶에서 매순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고민하고 그것을 일상생활로 담아내는 것이 운동이라고 배웠다. 아마도 그들이 이런 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1년이 지나고 촛불의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아직 우린 아무것도 쟁취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촛불이 현실의 정책을 바꾸진 못했지만(촛불이 바꾸지 못한 것이 아니라 MB가 바꾸지 않는 것이다) 자발적 주체들이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즐겁게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 무엇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일대의 사건임은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로 촛불이 나에 남긴 것이 있다.
넘어지는 것이 걷는 것보다 쉬운 나에게,
그래서 걷는 것을 잘하지 못한 나에게,
촛불은 광화문에서 종로 5가까지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
이것이 나에게 있어 ‘촛불, 잊을 수 없는 그 의미 하나-’이다.
광녀니 ● 작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로 파견 나가 시청광장에서 서식하였음.
요즘 무력감에 빠져 방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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