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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8월호 [쟁점과 현안] 공격이 아닌 소통을 위한 개념으로서의
[쟁점과 현안]공격이 아닌 소통을 위한 개념으로서의
성폭력 ‘2차 가해’: ‘공동체 내 해결’을 중심으로1)
이선미(너굴) ●
당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 사건을 지원 또는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떠올릴까? 아마 대책위를 꾸려 가해자의 처벌과 사건해결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피해자 대리인을 세워 피해자의 직접적인 노출을 막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대책위 - 피해자대리인 - 가해자사과 -가해자처벌>은 성폭력 사건을 ‘공동체 내 해결’로 풀어나가는 과정의 주요한 구성요건이 되었고, 특히 진보적 성향을 지향하는 공동체에서는 내규 등을 통해 이런 절차를 제도화 하였다. 이는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 공동체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공동체 내 해결’의 의미
성폭력 사건의 법적인 해결이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공동체 내 해결’은 ‘공동체 내부적인 성찰과 변화의 지향’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는 성찰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이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는 사건에 대한 논의를 왜곡시킨다. 피해자의 진실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들거나, 피해자가 공동체를 흔드는 과도한 문제제기자로 비난받는 일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끼게 되는 소외와 배제, 비난 등을 설명하기 위해 ‘2차 가해’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개념은 ‘객관성’으로 포장한 가부장적 시선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석하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때 사용되는 ‘성폭력’은 성별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일상적인 행위, 성역할, 감정노동 등을 포함한 확장된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2차 가해’라는 개념은 피해자에 대한 역공을 줄이는데 기여했으며, ‘공동체 내 해결’ 속에서 발생하는 피해자에 대한 불합리한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가해자 온정주의, 피해자 유발론이 팽배한 문화 속에서 피해자를 방어할 수 있는 언어로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2차 가해’ 행위를 규정해 놓은 수칙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공동체 내 해결’이 목표로 삼았던 사건에 대한 집단적 성찰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공동체 내부의 집단적 침묵을 낳는다. ‘성폭력은 절대로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어떠한 질문도 하지 말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원칙 아래 사건에 대한 맥락을 파악하여 피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사건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고 관행적인 절차만 밟아가는 요식적인 형태로 사건 해결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성별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대책위가 해결하는 그들만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피해자를 문제제기의 주체로 인식할 필요
성폭력 사건을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고자 문제제기 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이 왜곡된 공동체문화를 기반으로 발생한 것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차 가해’의 주요한 지적 중 하나인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은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는 말을 맥락에 대한 이해없이 받아들였을 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성을 가진 무기력한 대상으로 보게 하는 오류를 낳는다. 이는 곧 성적보수주의 담론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성’으로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각각의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다양한 맥락 속에 위치하고 행동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제기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다양한 맥락과 결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가해’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는 피해자와 소통을 등한시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피해자를 다양한 상황이 배제된 고정된 피해자상으로 규정짓고 ‘보호받아야 할 성을 가진 대상’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2차 가해’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보호받아야 할 성’으로서의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공동체 내에서 팽배해지면 피해자는 자신의 ‘순수한 피해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서사는 끔찍한 고통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는 두가지의 결과를 낳는데, 첫 번째는 피해자를 약한 존재, 고통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게 하여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있어서 피해자를 소외시키게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건 해결과정의 관심이 사건 당시의 고통에 집중됨으로써 ‘2차 가해’가 전제로 하는 성폭력 개념, 즉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성폭력 개념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2차 가해’는 확장된 성폭력 개념을 기반으로 성별권력관계를 드러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건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피해 당시의 느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 부당함, 배제, 주변화에 대해 ‘2차 가해’라는 개념으로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사건 해결과정에 담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수치심’과 ‘피해자 보호’에만 기반한 이해를 넘어, 피해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피해자를 문제제기의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을 위한 개념으로서의 ‘2차 가해’
‘2차 가해’는 성폭력을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만들진 개념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 해결 과정 속에서 ‘2차 가해자’를 지목하여 탄핵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2차 가해’개념이 가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성폭력은 논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절대화된 개념으로 오해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폭력 ‘2차 가해자’로서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여러 조직에서 성폭력은 (대부분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이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여성위원회’, ‘반성폭력위원’등의 일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 않은가. ‘2차 가해자’를 지목하고 처벌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2차 가해’는 방어와 공격을 위한 개념일 뿐 변화를 위한 소통의 개념이 될 수 없다. ‘2차 가해자’를 지목하고 처벌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해결 중 하나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2차 가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있어 성폭력 피해자에게 ‘절대성’을 부여하여 피해자로써 위치를 확보함과 동시에 ‘피해자’라는 위치에 고립시키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고 ‘2차 가해’에 대한 더욱 풍부한 논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2차 가해자이다’라고 낙인을 찍는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왜 ‘2차 가해’인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공동체 내부적인 성찰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더 다양한 성폭력 피해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선미(너굴) ● 성폭력상담소활동가 4년차.
피해를 설명하는 언어가 항상 부족한 것이 고민이다.
좀 더 세밀하고 다양한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을 찾고 있다.
1) 이 글에서는 ‘공동체 내 해결’에 있어서 논의되는 ‘2차 가해’개념을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민·형사상 발생하는 ‘2차 가해’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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