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8월호 [민우ing] 가난의 조각들- 2009년 가난한 ‘우리’에 대한 보고서
[민우ing] 가난의 조각들- 2009년 가난한 ‘우리’에 대한 보고서
김희영(꼬깜) ●
가난했었다
고 3때였다. 내가 처음으로 ‘가난’이란 주제를 생각했던 계기는 ‘독립’때문이었다. 집은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았고, 사실 풍족했다. 하지만 돈에 묶이면 가족 안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던 19살의 나는 앞자리 나이가 ‘2’만 되면 바로 돈부터 벌겠다고 다짐했다. 학비와 주거를 책임졌던 부모님의 간섭은 받을 만큼 받았다. 나는 간섭의 가장 큰 이유를 돈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살이 되고 나서는 매순간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아야만 내가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20대 때 나는 엄청나게 ‘가난’했다. 아르바이트는 지긋지긋할 만큼 했고, 차비 900원이 아까워서 2시간을 걸었던 적도 있다.(진짜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만큼 독기 서린 걷기였다.)
가난했던 그 때와 비교하면 박봉의 활동비이지만 지금이 훨씬 풍족하다. 적어도 차비 때문에 걷지는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다 이유가 있고 역사가 있다. 가난했고 안했고 풍족하고 덜 풍족한 것의 기준치는 생각해보면 꼭 돈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납득시키기 위해, ‘여성’으로서 빠른 독립이 가능할 수 있게, 가족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찾기 위해서 했던 발버둥의 대가였다. 오기로 점철된 시절이었지만 나의 과거로만 보았을 때 가난이 불행의 근거가 아니고 머무른 고통도 아니었다. 20살, 대학을 다닐 무렵 나에게 ‘가난’은 독립의 조건이었고 이유였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말이다. 가난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니 내가 나오고 삶이 나온다.
빈곤과 가난, 그 거리
이라고 하면 구조와 시스템, 범주와 통계, 정책과 대안, 문제와 원인이 떠오른다. 분명 중요한 과제이고 이런 접근의 방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떠들고 있는 빈곤은 불필요한 혹은 가장 간편한 감정의 방식인 동정을 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뉴스와 신문에서 빈곤은 벗어나거나 제거해야 하는 골칫거리, 숫자로 나열된 정책적 이유이다. 하지만 이라고 하니 좀 다르다. 사회과학 서적으로 접하는 빈곤과 가난한 사람들 혹은 그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을 때 느낌이 다른 것처럼 빈곤과 가난의 거리를 생각해보니 가깝지 않다. 나의 경험이 떠오를 수 있는 건 가난이 더 적합하다. 타인의 문제로만 인식된 이 주제를 더 가깝게 체감시켜야 한다. 가난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프로젝트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가난과 ‘우리’라는 큰 단어의 조합에서 자신의 낯선 경험을 드러내고, 가난이라는 타인의 삶으로 형상화한 주제를 ‘우리’로 확장해가는 것, 올해 민우회 정책기획팀의 주요 키워드는 가난, 차별, 그리고 이야기다.
‘이야기’를 담아내자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역시 운명과 사랑, 배신과 복수의 좌절과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아주 멀리 가면 풍경은 달라지겠지만,
역시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서문 中, 김연수
5월부터 6월간 총 7차례의 기획회의가 있었다. 민우회 지부 활동가, 본부 정책기획팀, 연구자 진옥쌤이 함께 기획팀을 꾸렸다. 이 프로젝트 회의만 있으면 회의실 문은 오후 내내 잠겨있어서 다들 궁금했을 것이다. 7번의 기획회의는 평균 5시간, 길게는 7시간도 기록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은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 가난을 느끼는가?” 이 큰 질문에 살을 덧붙이고 확장하고 세분화했다.
돈과 노동, 사회권, 정치와 제도, 관계망, 가난에 대한 일반적 인식 총 5가지의 소주제가 만들어졌다. 이 소주제 안에 질문을 끼워 넣고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가까운 미래에 가장 불안한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집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내가 불안할 때 생각나는 사람은? 만일 복권이 당첨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가장 큰 버팀목은?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했을 법한 질문이다. 질문의 추상수위가 높아질수록 걱정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거나 경험한 가난의 척도는 삶의 긴 연장선과 함께 가기 때문에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질문으로 단, 쉬운 단어를 선택하기’가 질문 구성의 조건이 되었다.
이렇게 질문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자기의 이야기도 많이 하게되었다.(회의가 길어진 주요한 이유겠다.) 각각 질문을 만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고받았다. “난 복권에 당첨되면 바로 집을 사겠다. 집만 안정되면 두려울 게 없겠다.”, “가난한 민우회에 반 정도는 기부할 수 있다.”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다.” 꼭 가난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된다. 삶을 끄집어내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꼭 심각하고 무겁게 건네지 않아도 된다. 가난해서 불행하다. 가난해서 창피하다. 가난할까봐 무섭다. 사람들의 경험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생각과 행위, 그리고 관계가 뒤엉켜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가난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가난이 극복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것도 아니다. 누구든 가만히 서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넋 놓고 있지 않는다. 가난은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두 가지의 극단으로 쪼개지지 않는다. 가난을 부정하면 가난했던 자기를 부정하게 되고 가난을 긍정하면 가난하지 않은 자신을 설득시킬 수 없다.
조각을 모으는 사람들
7~8월 간 1,000건의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모집된 ‘조사단’ 친구들에게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이유는 다양했다.(비록 함께 활동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가난했던 자신의 과거를 이제는 긍정해주고 싶어서, 빈곤 정책이나 연구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여성주의 활동 중에서도 빈곤과 관련된 주제로 활동하고 싶어서 등등. 이 계기가 이 프로젝트의 이유가 될 것 같아서 뿌듯했다.
프로젝트 진행 차 서점에서 ‘가난’이란 키워드로 한국 소설을 찾았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전히 문학에서 키워드는 가난이었다. 새삼 놀라운 발견이었다. 꼭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이 아니고 태백산맥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소설 세계는 가난이란 주제로 파생시킨 다섯 가지 소주제인 돈, 관계, 사회권(주거, 의료 등), 가난에 대한 인식, 정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실 모두 인간과 삶의 이야기라면 어디서든 나올 수 있는 내용이고 가난은 잡히지 않는 무형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배긴 구체적인 형상이다. 그리고 이 형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각각의 개인들의 ‘이야기’로 가능하다. 7~8월간 민우회원분들께 건네게 될 설문 문항으로 구성된 노트 형식의 가난한 ‘우리’에 대한 보고서, 꽤 많은 문항과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할 설문이지만 머리 뜯으며 기획한 기획팀의 열의가 엿보이신다면 참여와 의견을 격하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전화 한 통 부탁드린다.
김희영(꼬깜) ● 서점에서는 여전히 자기 계발이 화두다.
자기긍정 따위 코웃음 치며 냉랭하게 지나쳤지만
나를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일요일 밤이다. 한 주의 마침표가 이렇게나 매번 우울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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