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09년 9*10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일시장애
일시장애
따우 ●
나는 현재 일시 장애인이다. 과연 이 ‘일시’라는 게 얼마만큼의 기간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른쪽 어깨관절에 이상이 생긴 건 2년쯤 전이다. 인대가 상했다고도 하고 오십견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결국 ‘충돌증후군’이라는 병으로 판명되었다. 뭐에 충돌해서 생긴 건 아니고 그냥 뼈랑 인대랑 충돌해서 팔의 거동이 불편해지는 거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몇 달 간의 근력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나처럼 오래 안 낫거나 증세가 심하면 어깨뼈를 좀 깎아내고 찢어진 인대를 꿰매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무거운 물건은 못 들지만 그러구러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았던 ‘병’은 올 들어 예기치 않게 심해졌고 나는 결국 수술을 받았다. 어깨를 몸통에 고정해 주는 보조기를 한 달 정도 하고 그 후에는 몇 달 동안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하는 긴 여정에 들어선 것이다. 수술 후 세 달이 지난 나는 이제 왼팔로 오른팔을 어깨 높이 정도로 들어 올릴 수 있고, 세수할 때 턱에 닿을락 말락 했던 오른손으로 이제 이마 정도까지는 짚을 수 있다.
왼손으로 밥 먹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릴 때 왼손잡이였는데 강압에 의해 오른손잡이가 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 젓가락질은 처음부터 훌륭했다. 일상생활도 마음먹기 나름.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낼 때, 냉장고 문 한 번 열 걸 두 번 열면 된다 생각하고, 머리도 원래 천천히 한 손으로 감는 거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면 한 팔로만 생활하는 건 크게 불편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마음 불편하게 했던 건 주위의 과분한 ‘친절’. 가게로 들어가는 유리문이라도 열라치면 생전 처음 보는 어떤 이가 나보다 앞서 와서 문을 열어 주었고, 어떤 친구는 일부러 나를 위해 젓가락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을 같이 먹자고 해 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친절이고 배려였고, 고맙기는 했지만 나는 한편으로 궁금했다.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굼뜬 나를 조바심 내는 마음, 그러니까 자신들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큰 걸까? 그들이 도와주거나 대신 해 준 일들은 조금의 시간과 여유만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것들인데(절대 절대 절대! 그들이 고맙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도 분명 있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는 건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만원버스에서 행여 어깨를 스치기라도 하면 나는 악 소리를 내뱉고 당사자는 깜짝 놀라 쳐다본다. ‘멀쩡한’ 처자가 왜 저러나 싶어서(대체 ‘멀쩡한’과 ‘안 멀쩡한’을 나누는 기준이 뭔지도 궁금하지만 ‘겉’으로 봐서 사람이 ‘멀쩡’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그 선입견은 또 뭔가. 그런데 나는 대체 언제쯤 틈만 나면 괄호 열고 궁시렁대는 이 버릇을 고치나). 그러나 보조기를 팔에 두르고 아픈 티를 팍팍 내던 시절에도 내게 자리 양보를 해 주는 사람을 보기는 몹시 힘들었다. 심지어 내 앞에 자리가 났는데 나를 밀치고 앉는 사람도 있었고, 어느 날인가는 버스에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창밖으로 눈을 돌리거나 눈을 감아 버리는, 재미있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나를 외면하지 않았던 그 한 명은 내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아도 거리낄 것 없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내리면서 그 자리에 앉으라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러나 아마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가 좀 덜 과격하게 움직였다면 나는 굳이 눈에 불을 켜고 버스에서 빈 자리를 찾지 않았어도 됐을 테니, 이건 내가 원래 할 수 없는 일이라기보다는,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조건이 마련되지 않아서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또 어느 날인가는 휠체어석 옆에 놓인 ‘친절한’ 버튼을 본다. 그 버튼을 누르면 다른 좌석에 있는 ‘일반’ 버튼보다 더 큰 벨소리가 운전기사 옆에서 울린다. 운전사더러 휠체어(를 탄 이의 가슴팍)에 묶인 안전벨트를 풀어서 장애인이 하차할 수 있게 하라는 거다. 그래서 어느 저상버스는 ‘친절’하게도 이런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휠체어석 하차벨 스위치 - 일반인은 다른 곳을 이용하세요 ^^” 그러니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거다. 팔이 불편한, 전에는 겉으로 보기에도 불편했지만 지금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나는 일반인인가 아닌가. 남들보다 성깔 있고 가끔은 엉뚱한 생각들도 하는 나는 일반인인가 특수인인가. 휠체어를 탄 사람은 일반인인가 휠체어인인가.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이 모든 의문과 생각, 반성, 성찰들은 나의 장애는 ‘일시’라는 자만감, 혹은 안도감 내지 느긋함이 내 속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의문과 생각과 반성과 성찰이 힘을 잃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이 복잡하고 낯선 감정들을 가진 채로 나는 오늘도 버스에서 빈 자리를 찾고 오른 어깨를 누군가와 부딪힐까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늘 이런 복잡스러움을 접하고 있을, 장애운동 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따우 ● 불편한 몸을 가진 불편한 눈으로 세상을 접하면서 알게 된 건,
세상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훨씬 더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팔이 예전처럼(‘예전’ 언제처럼? 막 태어났을 때처럼? 십대 때처럼? 수술하기 직전처럼?)
‘회복’된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위장 ‘장애’와 알레르기 비염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장애인일까 비장애인일까?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