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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10월호 [쟁점과 현안]녹색성장의 허구와 우리의 대응
녹색성장의 허구와 우리의 대응
김은경 ●
#. 녹색의 홍수
‘녹색성장’, ‘녹색 뉴딜’, ‘녹색 일자리’, 지난해부터 쏟아져 나오는 때 아닌 ‘색깔’의 난무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여러 가지 생소한 용어들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4대강 정비’를 주 내용으로 하는 것이 ‘녹색 뉴딜’이라면 도대체 ‘녹색’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토목 일용직을 ‘녹색 일자리’라고 부르면, ‘녹색 일자리’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런 걸 ‘녹색성장’이라고 부른다면, ‘녹색성장’의 정의는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부의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거의 녹색 울렁증이 생길 지경이어서, 일상적 언어의 인플레나 원래의 뜻과 상관없이 또는 반대의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현 시점에서의 ‘녹색’의 중요성과 의미를 오히려 간과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녹색의 가치가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2007년 발표된 IPCC1)의 4차 보고서에서 이산화탄소 농축의 95%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가운데, 심화되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가 속출하고 있다. 2007년 하반기에서 2008년 상반기 동안의 유가 인상 또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당면해야 할 자원고갈로 인한 위기를 보여 주었다. 이에 더해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촉발돼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기침체까지 세계 각국은 삼중의 위기를 극복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위기, 경기 침체라는 삼중의 위기를 피해갈 수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높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 낮은 에너지 효율, 과다한 에너지 소비량과 그로 인한 과다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등을 감안할 때 다른 나라들보다 에너지와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 이명박 정부 ‘녹색 뉴딜’의 한계점
첫째로,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 뉴딜은 기후변화 대책과 에너지 문제 해결을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하는 세계적인 녹색 뉴딜의 방향에 비추어 볼 때 경기 회복 이후 유가 인상과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의무 부과에 대한 대책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경기 회복 이후라는 단기적인 시점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와 석유 사용량이 계속적으로 증가하리라고 예측하고 있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세계적인 흐름에 거꾸로 가면서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경제위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위기에 대한 협소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로, 에너지 생산 및 소비 시스템과 함께 경제 시스템의 전환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비해 우리나라 녹색 뉴딜은 오히려 현재 시스템을 고착시키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산업의 방향은 이미 소비 줄이기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에너지의 공급 확대가 주된 정책 방향일 뿐 아니라,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대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원자력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재생에너지 산업의 발전 기회를 사장시키고 에너지 생산 및 소비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차단하고 있다. 더불어 금융 위기의 원인이 지나친 시장 자율성이라는 데 세계적인 진단이 모아지고 있음에도, 아직도 우리나라는 규제 완화를 주요 방향으로 삼고 있어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의 전환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셋째로, 일자리의 창출에 있어서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임에도, 우리나라는 이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수 시장의 안정적 발전이 가장 시급한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필요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의 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는 전혀 뒷받침되지 못한 채 오히려 단순 노무직만을 늘리는 데 치중하고 있어 일자리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창출되는 일자리 양도 기존 산업 구조의 고착화라는 큰 방향을 전제로 하는 것들이어서 세계적인 녹색 일자리 사례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기회들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투자 대비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낮은 실정이다.
넷째로, 우리나라의 녹색뉴딜이 생태계 시스템과 생물종 다양성의 보전 및 회복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세계적 흐름 역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특별한 지적이 없어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녹색’이라는 구호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태 시스템과 생물종 다양성에 대한 정밀한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어디를 보전할지, 어디를 어떻게 복원할지 결정하고 이를 기초로 보전 및 복원 사업을 추진해야 하며, 사업의 결과로 생태계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지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적 녹색 뉴딜과 우리나라 녹색 뉴딜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차이는 철학적 기반에 있다. 세계적 추세는 그동안 꾸준히 발전시켜온 지속가능 발전 개념을 구체적인 문제 해결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정비되어 있는 지속가능 발전 체계조차 오히려 부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환경을 파괴해야 빈곤을 줄일 수 있는 저개발국의 생존 방식인 녹색 성장이라는 협소한 바탕을 출발점으로 삼은 데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수준에서 추진해야 할 대응 및 변화와 괴리가 생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지속가능발전의 확산
기후변화에 관한 세계적인 자료들을 모으고 분석해온 레스터 브라운은 그의 저서 「Plan B 3.0」에서 ‘세계는 지구적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고는 개별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세계의 변화는 또 다른 한 세기의 흥망을 가를 수 있을 만큼 막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실체와 성격, 방향을 제대로 판단하고 그 흐름을 우리나라에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찾아내어야 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유엔환경계획이 제안하는 위기 대응 방법은 20여 년 전에 공표된 ‘지속가능발전’이다. 지속가능발전은 세대내의 형평성과 세대 간의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며, 사회 경제 환경 각 분야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정책 수립에 참여하도록 하는 민주적인 사회 발전 방향이다. 현 정부의 녹색성장이 이러한 철학 기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성장위주 정책에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많은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진보 진영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지속가능발전의 철학을 폭넓게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일이다. 혹여 녹색성장에 대한 부정이 세계가 당면한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까지 확대되는 것은 아닌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 함께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은경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지속가능발전센터장
※ 이 글은 환경과 생명에 실린 글을 재구성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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