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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10월호 [기획 -자발적 소수자]아. 그렇습니까? 치마를 입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치마를 입습니까?
무사고 ●
처음으로 치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구매했던 때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나는 그다지 패션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옷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군대에 가기 전까지 살아가면서 3~4번의 경우에만 옷을 구매하여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형의 옷을 물려 입거나 어머니와 누나가 사온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고, 부족함을 느낀다거나 옷에 대한 욕구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 삶이 갑작스레 변화를 겪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형의 독립이었다. 형이 집을 떠나게 되면서 당장 휴가 나와서 입을 옷조차도 없게 된 상황이었기에 무언가 옷을 사야만 했고, 군대에 있다 보니 내가 옷을 구매 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 쇼핑뿐이었다.
남성의류 쇼핑몰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바는 <거의 다 비슷비슷하구나.>이었다.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모를 정도의 옷들을 비슷비슷한 가격에 팔고 있었고, 옷의 종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몰랐기에 ‘참고나 해볼까’라는 생각에 여성의류 쇼핑몰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여성의류 쇼핑몰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바는 <우와. 여기는 예쁘고 다양한 옷들이 많구나.>이었다. 여성의류들은 남성의류들에 비해 디자인적인 면이 뛰어난 옷들이 많았고, 그리고 옷의 형태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래서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남성의류들은 그토록 단순하고 투박하며 예쁜 옷이 없을까?’ 이러한 생각은 ‘그러고 보니 여성의류를 입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치마를 구매하게 되었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중 나를 매혹하는 치마를 발견한 상태였고, ‘이 치마를 구입해야 하는가? 만약 구입한다면 나는 입고 다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의 논리는 앞에서 했던 생각, 물음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며칠 후 내가 있던 군부대로 치마가 배송되어 왔고, 택배 상자를 열어 처음으로 치마를 입어보았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는 치마였고, 함께 생활하던 부대원들이 모두 쳐다보는 상황에서 입는 치마였다. 부대원들은 치마를 입고 내무반에 서서 거울을 보는 나를 정신병자처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왠지 모를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제대 후에 나는 선뜻 치마를 입고 외출하지 못했다.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은 욕구는 굉장히 컸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나를 바라보던 부대원들의 시선이 떠올랐고, 부대원들보다 훨씬 많은 불특정다수의 시선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이던 그 어느 날, 겨우 용기를 내어 치마를 입고 나갔던 그 어느 날. 나는 생각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세상 사람들은 치마 입은 남성을 지나가는 시선으로 쳐다보기는 하였지만 각자의 시간이 너무 바쁜 관계로 그 남성을 오랜 시간 주목 하지 않았고, 그 남성은 생각보다(?) 주목받지 않는 그 상황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 세상은 치마 입은 남성에게 잠시 주목해 주고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의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 남성은 그 이후로 마음에 들지만 입을 자신이 없었던 치마를 몇 벌 더 구입하게 되었고, 자주 치마를 입고 다니게 되었다. 또한 겨울이 되어 치마만 입기에는 너무 추워서 레깅스를 이용하게 되었고, 여성과 신체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깨를 깊이 드러내게 되는 여성의류 상의 또한 구매하여 입고 다니게 되었다.
마치 헤피 엔딩처럼 끝나버릴 것 같았던 이 이야기는 이 이후로 약간의 반전을 겪게 된다. 첫 경험이 너무 좋게 끝나버려 긴장을 풀었던 그 남성은 그 이후로 몇 번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겪게 되고, 우리나라의 옷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하게 뿌리내려 있는 가를 알게 되며, 치마를 입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운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로 자신의 만족과 더불어 사회운동을 위한 <치마입고 다니기>에 도전하게 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상황1:지하철
출근시간의 신도림역.(학교를 가기 위해서 매일 아침마다 방문함.)
플랫폼에 서 있는 치마 입은 남성에게 어떤 중년의 남성분이 다가와서 말을 거신다.
“학생, 자네 지금 입고 있는 게 뭔가?”
“네? 아. 저 치마에요.”
“자네, 남자아닌가? 여잔가? 생긴 건 남자처럼 생겼는데?”
“네. 저 남자 맞아요. 방긋. (친절하게 미소까지 지어드렸었다.)”
“아니. 남자가 왜 치마를 입어? 자네. 게이인가? 아니.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
“아. 저 성소수자는 아니고. 편하기도 하고, 좋아서 입고 있어요.”
“아니. 이런 XX놈을 봤나. 남자망신 다 시키고 있네. 아니. 이런 XX놈.”
“저기 욕하시지는 마시고. 남자라고 해도 치마를 입을 수 있죠. 뭘.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있고, 남성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미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의 남성분은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시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욕설이 섞인 말들을 내뱉으셨고, 더 이상 이 분을 상대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자리를 피하게 된다.
이후에도 몇 번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 위의 남성분보다 덜 과격하게 타이르듯이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고, 신기하다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시는 분도 계셨다. 욕설을 섞어서 과격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최대한 치마를 입는 이유나 옷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드리려고 노력하였고,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소통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위와 같은 상황은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상황에서만 발생되지 않았다.
* 상황2: 학교
(학생이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장소입니다.)
학교에서 나는 어느새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그 이야기가 나에게 직접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야. 저 사람 봐. 치마 입었어. 치마. 야. 귀걸이도 했어. 남자가 치마 입고 귀걸이 하고 뭐하는 사람이지?”
“쟤 변태 아니야? 우리 학교에 저런 사람도 있었네. 야. 신기하다. 신기해.”
주로 이런 패턴의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내 신상정보는 약간의 왜곡을 거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신상정보의 전달과정 속에는 “쟤가 군대 가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군대 갔다 오더니 이상해졌어. 군대에서 뭔가 힘든 일이 많았나봐." 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학교와 거리 혹은 여러 장소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치마를 왜 입고 다니는지를 설명해야 했고, 사람들에게 왜 남성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가? 에 대해 반문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흘러가면서 치마를 비롯한 여성의류들을 입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됨을 느꼈다. 물론 굉장히 소수의 지지였고, 대부분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말이다.
무엇인가를 변화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들고, 변화된 모습을 실제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가 옷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약화시키고, 없애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된 부분이다.’ 라고 인식하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남성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관념 속에서 상상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게 하여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모습에 익숙해지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의 거부감은 줄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치마를 포함하여 여성의류를 입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인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다. 지금도 나는 치마를 입고 나가는 날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치마 입은 남성을 보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옷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사고 ● “에쿠 남자였네. 여잔줄 알았잖여~”
네. 애석하게도 저는 남성입니다. 그리고 무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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