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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10월호 [민우칼럼 창]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김인숙 ●
여름휴가로 찾아간 절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장애인 재활치료센터에서 놀이, 언어, 심리, 인지치료를 병행하며 장애아동을 치료하고 있는 미술심리치료사로서 평상시 관심 없던 사회문제에 눈이 간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녀가 치료하고 있는 아동들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로 신체적 장애를 겸하고 있는 중복장애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장애아동들에게 진행하는 다양한 치료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교육이란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 기초생활수급자 외에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저소득층에 대한 예산지원이 줄면서 기존에 진행하던 치료를 충분히 해 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지적장애 3급 아동의 경우는 치료를 계속하면 재활이 가능한 단계로, 그후 더 치료를 진행한다면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통해 자립이 가능한 아동들이다. 하지만 치료를 잠시 중단하면 그 퇴행 속도가 빨라 6개월만 지나도 지난 3-4년간의 치료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란다. 이러한 사태를 예산 부족이라는 이름하에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들로서는 성장해서 자립이 가능하도록 키울 수 있을거란 희망으로 현재 장애아동을 키우는 어려움들을 참고 극복해 나가고 있을 것이고, 그 가족에겐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희망이 이 치료 과정에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부모들이 돈의 문제로 아동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치료 중단을 할 수밖에 없는 애환을 보면서 4대강 사업과 같이 국가가 예산 배정을 우선하는 사업들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예산이 다 빠져버리니 장애아동들에 대한 최소한의 치료비도 중단되는 모양이라며 그녀는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그녀의 판단이 맞건 틀리건 가뜩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기존에 지급되던 만큼도 지원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정부의 예산 지출 우선순위가 바뀐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9월 10일자 경향신문을 보니 “빈곤층 자녀 무료급식 ‘뚝’”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정부지원으로 무료급식을 지원받던 학생이 교육 복지 예산의 부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한 달 100만원 남짓의 수입이 전부인 가족이 감당하게 되었다는 기사였다. 한 달 5만원의 돈이라고 하지만 자체적으로 부담할 수 없다면 그들은 굶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많이 먹어 생기는 건강문제가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신문에 소개된 그 학교의 경우, 무료 급식 대상자 40명중 37명이 제외되었다고 하니 무료 급식 지원 예산의 대부분은 사라졌다는 얘기가 아닌가?
지역에서 활동할 때 B중학교에 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학교 급식 관련 활동을 하면서 반조리 식품과 값싼 급식 재료들로 식단이 구성되는 현상을 보며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강을 생각해 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급식비를 올리자는 제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발언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토로하던 교사의 얼굴과 그때의 나의 부끄러움이 생각난다. 100원~200원의 인상으로 더 부담하게 되는 금액은 한 달 2천원~4천원 남짓의 금액이지만 경제적으로 그 결정이 쉽지 않은 열악한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을 고려해야 하는 선생님의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부끄러웠다. 지금 급식 지원비를 중단한 이들은 그 5만원이란 돈의 무게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급식 지원이 중단된 그 학생에겐 그 한 끼 2천여원의 돈이 한 끼 밥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 걸까?
청소년교육은 사회에서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되는 인적자원을 키우는 일이다. 또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가지고 가야할 책무 중의 하나다. 이는 성장 동력으로서 인적자원을 키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장애아동 치료비건, 청소년 급식비이건, 저소득층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공간이건, 이런 지원들이 이제는 복지 차원이 아닌 사회공공성 측면에서 지원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렇다. 교육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공공재인 것이다. 이 사회에 사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공공재로서 인식을 갖고 최소한의 교육, 주거, 먹거리 등은 공적으로, 공평하게 보장하길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언제까지 우리는 아이들이 먹을 음식, 치료 받아야할 예산을 집행했다 안했다 하는 일로 방치할 것인가? 이제는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 때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조건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가 몹시 그립다. 경제위기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포장, 계획되는 사업들이 약자 지원 중단으로 이어지는 이 사회는 개인의 품위 유지도 어렵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품위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품위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속에서 내가 밥은 먹을지언정 진정 인간적 품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김인숙 ●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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