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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12월호 [생협이야기] ‘우왕좌왕 실무자’의 일본 생협 활동가 만나기
‘우왕좌왕 실무자’의 일본 생협 활동가 만나기
이지영 ●남서여성민우회 생협 조직홍보 담당
지난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여성민우회 생협의 3개 단위 생협(고양·남서·동북)은 일본의 지역 생협을 초청해 ‘한·일 지역 생협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일본 지역생협 풀뿌리 여성활동가 초청 교류회’를 열었습니다. <함께 가는 여성>에 요코하마 미나미 생협을 초청한 남서여성민우회 생협 실무자의 일본 여성활동가와의 ‘국제 교류’ 활동 참가기를 소개합니다.
9월 15일, 첫째 날
사무실. “歡 迎” 컴퓨터로 출력해서 교육장 창문에 붙여 놓고 교류기념 손도장을 찍을 예쁜 현수막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공항으로 요코하마 미나미 손님들을 마중 나간 사무국장님의 다급한 목소리!
“지영 씨, 요코하마 미나미 한자가 틀렸대. 요코하마가, 우리가 적은 그 한자가 아니래!”
허걱! ‘橫濱’가 아니라 ‘橫浜’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틀리다니. 큰일났다. 이사장님과 사무국 실무자들이 모두 모여 자료집의 오자를 고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현수막에 떡하니 인쇄되어 나온 한자를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어떻게 바꿀 것인지 글씨를 뽑고 현수막에 대어보고 붙이고 갑자기 분주해졌다. 또 따르릉.
“지영 씨, 통역하시는 분을 통해 일본 분에게 여쭤 봤더니 우리가 쓴 한자로 써도 된대. 옛날에는 그 한자로 썼었대. 그냥 두세요”
휴우. 적어도 자료집 오자를 일일이 고칠 필요는 없겠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아니, 인터넷 정보가 왜 그 모양이야. 중요한 지명인데 왜 홈페이지를 고치지 않은 거야.
사무실에 들르기 전 허준 박물관에 들러 여러 가지를 견학한 일본 손님들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와. 이렇게 가까이서 게다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본인을 보는 건 처음이다. 미리 받은 프로필을 열심히 봤지만 누가 누군지 눈으로 뵈는 정보와 내 머리 속의 정보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고 상쾌 발랄하게 인사하려고 미리 외워뒀던 일본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엉뚱하게도 영어가 먼저 나와 버렸다. “웰컴” 이럴 수가…….
교육장에 모여 자기소개를 하고 양 생협에서 준비한 소개 자료를 보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인 뒤 선물을 교환하고 손도장 찍기를 시작했다. 요코하마 한자를 바꾸게 되어 죄송하다는 양해를 먼저 구했더니 괜찮다고 웃으신다. 고마워라!! 다들 신기한 경험을 해 본다며 장난스레 그러나 정성스레 물감을 양손에 묻히고는 준비된 두 장의 현수막에 동시에 탁! 손도장을 찍고 사진기를 바라보며 씩 웃는다.
9월 16일 수요일, 둘째 날
이번 교류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세미나가 잡혀 있는 날. 열심히 만든 자료집이 무색하지 않도록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텐데. 프리젠테이션 준비하고, 자료집도 펼쳐 놓고. 준비가 잘 된 것 같다.
시작! 어라~ 마이크가 왜 저러지? 통역도 역시 리허설이 필요한데 리허설을 못 한 게 여실히 드러나는구나. 그래도 멋지다. 각자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공간에서 저렇게까지 열심히 도전하고 실행하다니. 우리 남서에도 여러 가지 워커즈 콜렉티브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무엇보다 건물 하나 있으면 좋겠다. 소외받는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 편히 머무르며 따뜻한 눈빛 하나 맛있는 차 한 잔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 하나. 열심히 도전해서 건물 하나 지어서 기증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가장 행복해 했던 문화체험, 풍물놀이. 말이 뭐가 필요하랴. 그저 악기 하나씩 들고서 온몸으로 마음으로 심장의 고동소리에 맞춰 신나게 두드리면 그만인 것을. 치다가 힘들면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고 또 두드리며 혹은 어깨 들썩거리며 춤 한 사위 신나게 한 판 놀면 되는 것! 그간 쌓였던 여러 가지 막힘을 단번에 풀어내며 얼굴이 발개지도록 웃으며 소리를 지르며 우리는 한 몸이 되었다.
9월 17일 목요일, 셋째 날
오전에 팔당 유정란 계사를 둘러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유정란 짚 꾸러미를 만들었다. 나는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생산자가 만들어주었는데 일본 분들은 왜 그리도 잘 만드는 건지. 역시 연륜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김치 만들기도 했는데 무채 썰기 대회 같았다. 열심히 김치를 만들고 맛있다고 계속 “오이시~”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저녁에 예정된 환송회에서 손님들이 기뻐할 수 있는 좋은 일본 노래를 선물로 불러 드리고 싶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 결과 <아카돈보 (고추잠자리)>라는 노래를 찾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가 없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어로 된 독음 가사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나름 머리를 써서 팔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카돈보> 아냐고 물었더니 잘 안다고 하시는 거다. 좋아하는 노래인데 가사를 못 구해 못 부르고 있다고 하자 서너 분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가사를 적어 주셨다. 속으로 ‘정말 잘 됐다. 저녁 때 불러 드리자’며 좋아하는데 곤도 씨의 한 마디. “환송회 때 우리가 불러 줄게요.” 엥,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가시는구나. 그 때 정성스레 적어주신 <아카돈보> 가사는 지금도 내 수첩에 끼워진 채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저녁 간담회와 환송회 때 깜짝 놀랐다. 다카노 씨와 이가라시 씨가 이번 교류에서 느낀 점 등을 이야기하며 울어버린 것이다. 각자가 지역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정체성이나 비전에 대해 가지는 막막함. 혹은 이번 교류를 통해 힘을 얻게 되어 기쁜 마음. 그러한 것들이 눈물로 함께 쏟아져 나왔다. 우잇. 나도 같이 울어 버리고 말았다.
9월 17일 금요일, 마지막 날
몇 달간 준비하느라 힘들기도 했고 첫날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다행히’가 아닌 ‘벌써’ 마지막 날이다. 광화문에서 여성민우회 생협 전체 평가가 열려서 각 단협 별 평가도 듣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사진도 찍고 사흘 간의 활동사진도 보고.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쩌면 이토록 정이 들 수 있는 걸까? 마지막 일정인 덕수궁 관람을 위해 서울광장을 지나며 나보다 어린 귀여운 니시카와 씨, 아름다운 다카노 씨와 한국어로 그리고 일본어로 “다음에 또 만나요”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등의 인사말을 열심히 적고 배웠다. 그리고 나는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덕수궁 앞에서 헤어지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 또 만나야 할 것만 같은데. 버스를 타고서 숙소로 가 그분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또 가야 할 것 같은데. “내년에 일본으로 갈게요!”라고 바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정말 열심히 하고 일본어도 열심히 배워 내년에 일본으로 꼭 갈게요, 여러분!
아, 그리고 남서여성민우회 생협의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이번 교류회에서 지역의 여러 활동가들이 정말 다양한 재능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가족까지 ‘동원’하며 교류회의 성공을 바랐다. 이런 힘들이 모여 지역에서도 국제교류를 성공리에 마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으리라. 이번 교류회처럼 지역의 여성 활동가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만들어 준다면, 더 많은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아름다운 생활협동조합이라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이지영 ● 어둠을 거두는 태양과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의 생명력을 늘 지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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