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12월호 [특별한 만남] 배우 문소리에게 묻다
이번 호 [특별한 만남]은 2009년 11월 17일 ‘인터뷰강의-배우, 문소리에게 묻다’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특별히 민우회원들에게만 문이 열리었던, 그래서 괜히 약간은 특별한 사이가 된 거 같아 더욱 재미났던 이야기, 우주에 있는 오로라 그리고 달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던 그녀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배우 문소리에게 묻다
배우 문소리, 작품 속 그녀들과 만나다.
그녀 스스로 본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거나 설정하고 있던 이미지는 굉장히 밝고 씩씩한 아이였단다. 하지만 배우가 되어 포커스를 자기 안으로 두고 살피어 보니 다른 모습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고. 그렇게 자신을 더 잘 알게 된 그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을 그 순간 직접 살아내고 있었다.
영화 [오아시스]를 통해 다수가 무관심했던 장애여성들의 삶을 이야기 했다. 또한 주목받지 못하던 스포츠, 핸드볼에 대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영화계의 불황속에 가장 빨리 포기한다는 “요즘 유행하는 루저들의 영화-여성인데 그것도 이혼하거나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남편이 도망갔거나 불임이거나 뭐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 비인기 종목, 결과적으로 금메달도 아닌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모아냈다. 그리고 내년 5월쯤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을 통해서는 “닭장에 갇혀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는데서 알만 낳으라고 그러는데 ‘나는 싫어! 내 알을 품어볼 거야!’ 그러고 탈출”한 암탉 잎싹의 목소리를 연기해 매우 독립적이면서도 “청둥오리 알을 품어 심지어 새로운 가정을 꾸려 굉장히 대안적인”가족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그녀가 연기하는 삶의 모습들은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표현되는 여성들의 모습과는 결을 다르게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많다. 우리가 배우 문소리를 좋아하면서도 그녀의 영화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흔하게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배우 문소리, 그녀는 용감하다.
“취미는 걱정하기, 특기는 번뇌하기.”라는 말을 듣는 다는 그녀는 용감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 내면에서의 고민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문소리씨가 먼저 용감하게 나서줘야지라는 말씀들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저는 정말 한 마디, 어디 가서 얼굴 한 번을 내비칠 때마다 굉장히 거의 2차 대전, 3차 대전을 치르고 그래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 엄청 고민해요”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자기 직업은 따로 있고 따로 소모임 활동도 하고, 정당 활동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 직업은 배우인데요, 지금은 당적이 없지만 제가 어떤 의견이 있으면 당적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다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도 참석하고 했었잖아요? 그 중에 저도 하루 이틀 갔었죠. 갔었는데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 무대에 세워지게 되고, 기사화 많이 됐죠. 제가 제 인생을 그냥 봤을 때, 문소리 인생을 봤을 때 전~혀 강하거나 과하지 않거든요, 그런 활동이. 정말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너무 적게 하고 있어서 조금 세상에 내 관심이 이거뿐이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에요.”라고 말한다. 정부의 녹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많은 고민과 참여를 하고 있는 그녀는 여성연예인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남겼다.
“그.. ‘데보라 윙거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거기 보니까 할리우드에 잘 나가는 여배우들이 똑같더라고요. 모여서 뭐 먹으면서 잡담을 하는데 ‘야, 걔는 내가 고등학교 때 만났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어, 제작자라니까 내가 놀아주는 거지’ 이런 식으로. ‘오디션 보러 들어갔는데, 사람을 봤으면 눈을 봐야지 가슴부터 보고 난리야, 재수 없어’ 이런 식으로. 오디션 때. 그 얘기의 핵심은 굉장히 비슷했어요.” 이처럼 여성연예인들이 “불이익을 받거나 폭력들을 당하거나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해결해줄 수 있는 공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어떤 곳”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배우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공식화된 방법들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아도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그리고 교육과정에 자존감에 대한 교과목을 추가해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던 배우 문소리의 모습과 더불어 그녀의 목소리로 직접 듣게 된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들을 홀딱 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단한 그녀가 던졌던 웃음이 뭍어나는 말들로 특별했던 그날의 만남을 정리하고자 한다.
● 교육학도 문소리가 생각하는 자녀교육법?
“하지 말라고 하면 호기심이 더 생기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나는 합창반 12년 했으니까 그만하고 대학가면 연극반을 해봐야겠다. 거기서 (연기 인생이) 시작됐었죠, 연극에 대한 애정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애를 작가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 한 16세까지 소설을, 책을 못 읽게 하는 이런 방법도. 하하하.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드네요^^”
● 문소리씨의 이름에 대해서
“제가 양가 집안의 첫 아이에요. 그래서 제 이름이 문소리에요. 아버지가 문씨고 어머니는 오얏 리자 쓰세요. 이씨구요. 그 사이에 제가 태어날 때 굉장히 저체중아였거든요. 그래서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작을 소자를 넣어서 문소리가 됐죠.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보수적이신 분인데 그때부터 ‘부모성같이쓰기’를! 하하. 그래가지고 호주제 폐지 기자회견 하는데 나갔었어요. 제 이름은 벌써 ‘부모성같이쓰기’가 되어 있다고 이런 식으로 막 얘기했더니 우리 아버지께서는, 저희 아버지가 ‘내가 그러려고 지은 이름이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 민우회에 대한 이미지는?
“음.. 뭐.. 여러 가지 이유로 음.. 성차별보다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저는 한 때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여성민우회가 있다는 거는 알았고요. 처음 이미지는 뭐 그냥 총여학생회 같은 이미지였죠. (여기저기서 웃음이 큭큭) 민우회에 가끔 기사나 이런 것들 보면서 필요한 지점에 있는 또 생협도 하고 계시고 뭐 이런 것들이 ‘아, 옛날 총여학생회에서 하던 일이랑 다른 거구나’알게되었다”고 한다. (우리 이미지는 여전하구나. 아흑!^^;)
아,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문소리님이 민우회 회원이 되면 참 좋겠다.
강의가 끝나고 1층 카페 '문'에서 함께한 뒤풀이에서 지은
문소리님의 '오로라'라는 별칭을 직접 부르며,
회원으로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절대 이번 <함께가는 여성>이 문소리님에게도 보내질거라 이런 말 쓰는 거 아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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