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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12월호 [MB와 나] 일제고사? 제발 우리 말 쫌 들어라!
일제고사? 제발 우리 말 쫌 들어라!
거부기 ●
우리의 학력을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전국적으로 가려내고, 과연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진단해보겠다고 한다.(그래서 내세우는 이름이 ‘진단평가’다.) 온갖 반대와 온갖 폐해들에도 아랑곳 않고 이명박 정부에서 일제고사를 밀어붙이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라면 어째서 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는지 궁금하다. 어째서 학교들이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려고 그렇게 학생들을 쥐어짜는지도 의문이다.
돌팔이 시험
무엇보다도,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들이 교육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를 ‘국영수사과’ 시험을 가지고 평가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 그야 기본적으로 글씨를 읽을 줄 아는지, 덧셈뺄셈을 할 줄 아는지 평가해볼 필요야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제고사 시험 문제를 보니, 그건 그냥 좀 난이도가 낮은 편인 시험일뿐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친 교과목들, 지식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암기하고 문제풀이에 써먹을 수 있는지 보는…. 하긴 원래부터 학교 교육이라는 게 우리 삶과는 별 관련도 없어 보이는 것들을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거긴 했지만.
우리의 상태나 흥미, 진로에 대한 희망이나 적성을 알기 위해서는 이런 시험을 보게 할 게 아니라 우리와 대화를 해보면 된다. 우리가 재미도 없는 수업을 억지로 듣고 있는지, 우리가 이해도 하지 못하는 수업을 교실에 앉아서 멍하니 듣고만 있는지, 학교에 다니기 싫은지 좋은지, 이런 것들은 이딴 시험을 쳐서는 알 수 없다. 웬만한 중고등학교라면, 시험이라면 이미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정말로 우리와 이야기해보고 우리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면, 빡빡한 수업 시간을 줄이고 선생님들이 좀 더 우리와 이야기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 만드는 일, 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우리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런 건 전혀 없이 그냥 시험을 또 하나 보게 하고, 그 시험 결과에 따라 ‘미달’ 학생들을 걸러내는 방식은 전혀 우리를 생각한 정책인 것 같지가 않다. 비유하자면 의사가 진단을 하려면 종합적으로 해야 하고 환자의 말도 듣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 체중이랑 키만 재고서는 제대로 진단했다고 하는 돌팔이 짓 같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기준 ‘미달’이라면서 강제로 보충수업에 참여시켜서 학력을 높이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작 학생들의 의사는 고려하지도 않고 강제로 보충수업을 시키는 꼴이 아닌가.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나 성적이 낮게 나온 이유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성적이 ‘미달’인 학생들은 모두 다 보충수업 같은 걸 시켜서 성적을 끌어올리겠다니…. 아무리 좋게 생각해주려고 해도, 이것은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우리를 진단한다는 미명 아래 우리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
시험 지옥
대체 무얼 위한 시험인지도 불분명한데, 일제고사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지금은 미달자 수에 따라 교육청과 학교들이 서열화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학교 평균 점수가 공개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일제고사 성적에 따라 좀 더 명확하게 공부 잘하는 학교, 공부 못하는 학교가 갈릴 것이다. 마치 이번에 수능 성적이 공개되면서 고등학교들이 서열화되었듯이…(사실 수능도 일종의 일제고사다. 고3과 재수생들 등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
그 결과 웬만한 학교들은 성적을 올리려고 학생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초등학교에서도 방학 중 보충수업을 시킨다고 하는 언론 보도도 여러 차례 났다. 내가 아는 애도 중학생인데 방과후학교에서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시키고, 8교시 자습까지 반강제적으로 시키고 있다고 한다. 교장으로부터 이번 일제고사 성적이 안 좋게 나오면 야간자율학습까지 강제로 시킬 수 있다는 협박까지 있었다고 한다. 어느 특이한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강원도, 대전, 충남 여러 지역에서는 교육청에서 나서서 일제고사 성적을 올리기 위해 보충수업을 시키라고 부추기고 있다. 대놓고 보충수업을 시키거나 하지 않더라도,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험지옥이 아닐까?
우리 말 좀 들어라 쫌!
어느새 이명박 정부 2년째다. 그리고 일제고사도 2년째다. 2년째에 접어드니까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활동이 무슨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덕분에 나도 1년에 2~3번씩은 학교를 빠지고 체험학습을 가거나, 등교거부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농성까지 해봤는데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비록 올해부터 대안학교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인가받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도 일제고사에서 예외는 아니다.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해온 우리들은 그동안 입시/성적 경쟁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몇 년째 이야기해왔다. 성적으로 인한 차별 반대부터, 수능/입시경쟁폐지나 대학평준화 같은 이야기들까지도 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나서는 입시경쟁폐지, 대학평준화 같은 이야기들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겠다. 일제고사(교사들 짤린 것도 포함해서…)에, 자사고에… 우리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늘리는 정책만 잔뜩 나오고 있다. ‘학력신장’이니, ‘경쟁’과 ‘자율’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는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많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 외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토록 많은 문제점을 지적해왔는데 교육부에서는 일제고사를 재검토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단체들에서 학생인권실태를 조사하면서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서도 찬반을 물어봤다. 일제고사의 경우 중학생 74.6%, 고등학생 72.2%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런 결과가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정부가 이런 결과에 귀를 기울일지는 의문이다. 이제 정부에게 더 많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우리 말 좀 들어라, 쫌!
거부기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 중인
고1. 중2 때 집회 한 번 나갔다가 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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