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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12월호 [쟁점과 현안] 욕망이 누락된 헌재놀이
욕망이 누락된 헌재놀이
유영주 ●
헌재놀이, 욕망 실체 없는 조롱과 풍자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때 시조놀이 쥐맹매가(쥐盟埋歌)란 게 있었다. “쥐를잡자 쥐를잡자 효자동을 울리누나 / 쥐새끼를 박멸하자 박통생각 절로나고 / 쥐새끼를 박멸하자 쥐새끼를 박멸하자 / 애국시민 돈모아서 세스코맨 불렀다네” 식의 4글자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시조만들기 놀이였다. 후렴구는 엄청나게 열받았다는 의미를 담은 ‘욜라욜라 욜라 욜라리욜욜’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상징하는 마우스를 줄에 묶어 조선일보 앞을 행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른바 쥐박이 놀이였다. 조롱과 풍자의 묘미라 할,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를 만끽했다.
조롱과 풍자에는 권력에 대한 주권자의 욕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쥐맹매가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시민들의 욕망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마우스에 줄을 묶어 조선일보 앞을 행진하는 시민들의 조롱과 풍자에는 재미와 함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욕망이 투영됐고 그만큼 강한 에네르기가 분출됐다.
“쭛쭛쭛은 했지만 쭛쭛쭛는 아니다”라는 헌재놀이가 바람을 탔다. 인과관계를 파괴한 헌재의 판결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조롱과 풍자의 한마당이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계속될수록 씁쓸한 기분만 더한다. 헌재놀이에는 조롱과 풍자의 속성인 욕망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다.
헌재, 유통기한 만료
7월 22일 제283회 국회 임시회의 제2차 본회의에서 벌어진 대리투표와 재투표 소동, 입법부는 미디어법안을 입법하는 절차와 방식 뿐 아니라 내용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야4당은 헌재에 법률안의 가결선포 행위에 대해 무효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이 신문법안, 방송법안, IPTV 방송법안, 금용지주회사업안을 각각 가결 선포한데 대한 권한쟁의 심판이었다.
10월 29일 오후, 세상의 이목이 헌재를 향했다. 신문법과 방송법에 특히 관심이 집중됐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요점은 조중동이 종편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고, 이날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마침표가 찍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판결이 나왔다. 헌재는 신문법에 대해 표결과정에서 대리투표 등으로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이 현저히 저하되었다며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했다. 방송법에 대해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투표를 실시하여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국회의장 등 피청구인의 위법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헌재는 이처럼 권한의 침해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결선포 행위의 무효 확인 청구를 6:3(신문법), 7:2(방송법)으로 기각해버린 것이다.
‘상식’이 파괴됐다. 87년 6월항쟁의 산물이자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로 자리매김된 헌재였다. 지난 20년간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헌재에 길을 물었고, 헌재는 87년 6월항쟁의 정신에 기대어 답을 내렸다. 신행정수도이전, 한미FTA, 전략적유연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건 등이 그러하고,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입법 시도가 있을 때마다 시민사회가 청구한 헌법소원들을 판결해왔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판결로 스스로의 존립근거인 절차적 민주주의 정신을 배신했고 따라서 유통기한의 만료, 용도 폐기 시점 도래와 같은 냉혹한 평가를 받는 처지가 됐다.
헌법에 대한 시장주의적 해석 본격화
한나라당이 대리투표, 재투표를 통해 날치기 통과시킨 미디어법은 신문의 방송 겸영, 자본의 미디어 소유를 요점으로 한다. 한나라당 미디어법이 적용되면, 미디어의 시장화가 촉진돼 자본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고 경제력 남용이 뒤따른다. 시장 지배력을 갖는 미디어자본에 대해 특정한 규제 장치를 두는 것도 아닌지라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흔들게 될 전망이다. 때문에 헌재가 절차의 위법 판결에 부응하는 효력의 무효 판결을 판시하지 않은 건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한 것이자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시장주의적 해석이 본격적으로 시도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헌재의 판결을 지켜본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아연실색했다. 시민사회는 헌재 판결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해석했다. 김종대 재판관은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해 “국회의 법률제정과정에서 비롯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간의 권한쟁의 심판에서는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확인에 그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후 조치는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해 해결할 영역으로 보고 공을 국회로 넘겼다.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절차가 위법이므로 효력도 무효라는 태도를,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절차는 위법이나 효력은 유효라는 태도를 취했다. 판결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법률 결정 과정에 절차상의 흠결이 있으니 국회가 다시 결정하라는 주문이었다.
정치권은 헌재의 판결을 제 편한대로 받아들였다. 가령 한나라당은 6:3, 7:2의 액면만 취하며 법안이 효력을 발생했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등 야4당은 절차의 위법 판결을 들어 국회 재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재논의가 되지 않으면 ‘헌재 결정 부작위에 의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헌재를 상대로 다시 청구를 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럽거니와, 방통위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강행하고 조중동이 종편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현실을 제어할 방법을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헌재 판결이 나자 이번에는 미디어법의 내용이 헌법을 어떻게 위배하는지를 놓고 소송을 내자는 주장도 나왔다. 지역구 유권자들이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받았으니 헌법소원을 제기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헌법과 방통위설치법에 근거에 국회가 최시중 위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권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이니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임계점에 달했으니 시민들이 나서서 국민투표에 부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시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좋은 주장들이고 얼마든지 검토하고 실천할 일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 때나 나서지 않는다.
냉소와 무관심은 에네르기의 이면
헌재놀이가 재미없고 짜증만 더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조롱과 풍자를 통한 욕망의 투영은 도달 가능한 목표가 뚜렷할 때 강한 에네르기를 갖는다. 욕망이 투영되지 않는 조롱과 풍자는 재미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냉소와 무관심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필연이다.
시민들은 헌재 판결과 판결 이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방식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쌓아올린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 무너지고 있는지, 헌재가 헌재스러운 판결을 내리게 된 이유와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정치권이 이토록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태마저 기정사실화 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힘은 무엇인지, 비판적 지성의 침묵과 시민행동의 소멸이라는 견디기 힘든 현실 맥락은 또 어디서 비롯되는지.
11월 5일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4%가 헌재의 미디어법 결정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헌재 판결 전의 여론이 유지되고 있다. 11월 10일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 4대강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6.6%의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 66.3%에 이른다. 이처럼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해당 현안 대응에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령 최상재 위원장이 8일간 단식을 하고 만민공동회 같은 행사에도 시민들은 동참하지 않았다.
현상만으로 보면 시민들은, 촛불은 분명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분노와 행동 대신 냉소와 무관심으로 응대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냉소와 무관심이 에네르기의 소멸이 아니라 이면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은 직관과 이성으로 사태 추이를 놓치지 않고 읽어내고 있으며, 불편부당한 현실을 통찰하되 냉소와 무관심이라는 집단적인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욕망,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 집단적인 에네르기가 다시 분출하는 날이 온다면, 최소한 헌재놀이 같은 욕망이 누락된 조롱과 풍자를 동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영주 ●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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