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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12월호 [기획 -공간을 말하다] 서로에게 ‘자기만의 방’을
서로에게 ‘자기만의 방’을
이오 ●
지상에 나의 파라다이스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한 개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사회가 될 것이다.
- 하이데마리 슈베르머, 소유와의 이별 (장혜경 옮김, 여성신문사)
자신과 가족의 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마저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사람들(용산 참사)이 존재하는 한켠에서, 절박한 생존문제와 직결되지 않는 공간, 혹은 ‘자기만의 방’에 대한 소망을 피력하는 건 사치가 아닐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집과 방이 모두 부동산이라는 단 하나의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는 세태를 오롯이 받아들여 상상력을 닫아버리면 사람들의 삶이 너무 남루할 것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지울 수가 없다.
집, 방, 공간 등의 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사방에서 두서없이 이런저런 상념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가 하면 실타래처럼 엉긴 간밤의 꿈을 조리있게 꿰지 못한 채 그 꿈의 열쇳말만 되뇌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건 아마도 집이라는 것이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는 현실적·물리적 차원을 넘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소우주임을 어렴풋이 깨닫긴 했으되, 그 소우주의 의미를 온전히 알아차리고 말하기에는 나의 용량과 언어가 빈약한 탓이 아닐까 싶다.
우주에 삼라만상의 기운이 가득 차듯, 사람이 기거하는 소우주인 집과 방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에너지로 채워지고, 반대로 집과 방이 그들의 생로병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등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의 기운이 모였던 공간에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끊김으로써 그 원한이랄까, 그런 것이 전해지는 까닭은 아닐까. 짓다가 멈춘 건물이 흉물스럽게 느껴지는 건 많은 에너지를 쏟았으나 끝내 완성되지 못한 탓에 그것을 짓던 사람들의 원망이 배어 있어서는 아닐까. 집과 건물 그 자체는 무생물이지만 그 안에는 뭇생명들의 희노애락이 숨쉬고 흩어지면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대개 잊고 사는 듯 하다.
단편적이나마 이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면, 집이란 모름지기 거기 상주하는 자의 흔적과 손길, 공기와 햇빛과 바람 등 자연의 기운,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이 아닌 ‘외부’(동식물 포함)를 향해서도 때로는 열어놓아 서로의 기를 주고 받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 많은 여성들이 간절히 원하는 ‘자기만의 방’ ‘그녀들의 방’도 어쩌면 서로의 공간을 열어줌으로써 가능하겠다는 쪽으로 시야가 뚫린다. 어떻게? ‘지금 가능한 사랑방 만들기’, 공간제공 네트워크 등을 한번 시도해보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좋다. 며칠, 몇달 동안 비워야 할 집을 자기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맡긴다거나 한달에 한번은 내 집의 방 한칸을 친구들에게 내주거나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재화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공간을 빌려 쓰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내 경우, 예전에 빈 집을 몇 달 동안 맡아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 내 일을 하고, 친구들과 차를 마셨으며, 그 집의 고양이에게 놀러오는 길고양이와도 친해졌다. 오래 전의 이 경험은 동물과 식물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많이 바꿔준 계기도 되었다. 또 오랫 동안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처지에서 개인주택의 장단점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돈을 들여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공동부담으로 공간을 구해 나누어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목적이 ‘돈벌이’를 위한 노동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심신을 쉬게 하거나 창조적인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제적 부담이 즐거움을 누를지도 모른다. 그 대신 품앗이나 지역화폐의 개념을 집과 방이라는 공간으로도 확장시키는 실험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친교 뿐 아니라 필요에 따른 자발적 고립을 위해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역설적 상황을 상상하니 흥미롭고 즐겁다.(나 혼자만 즐거우면 안되는데)
거창한 프로그램을 짜는 것보다 소박한 마음들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시도해도 좋고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의논하는 것도 괜찮다. 우선 민우회 홈페이지의 옥션에다가 올려보는 방법도 있겠다. “쭜월 쭜일부터 쭜일까지 집을 비웁니다. 그 기간에 공간 필요한 회원은 댓글!” “내일 죽마고우의 결혼식 참석차 광주에 갑니다. 간 김에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싶은데 잘 곳이 마땅찮네요. 혼자서 모텔이나 찜질방 들어가기 어색한데 혹시 재워주실 광주 회원 계세요?” “한달에 한번 꼴로 내 방을 영화보기와 명상으로 쓰려 하니 함께 하실 분은 손!”......
그런데 이런 실험을 계속하여 정착시키려면 서로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멈추거나 탄력있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자면 확고한 원칙과 매뉴얼을 마련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본디 실험은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닌가. 물론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감이 이렇게 함으로써 늘어나긴 커녕 점점 훼손된다고 느낀다면 이 실험을 억지로 계속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방을 얻거나 여행을 떠나는 방법 외에도 반복되는 일상을 탈출하는 ‘생활 속의 모험’을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발굴해보자는 얘기다.
이오 ● 공간에 대한 상상이 공상(또는 망상)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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