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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호 [생생한 시각] 체벌 금지로 교단이 무너진다고?
[생생한 시각]
체벌 금지로 교단이 무너진다고?
조영선 ● 경인고
물음을 던지다
일명 ‘오장풍 교사 사건’으로 2010년 2학기부터 서울 시내 학교의 체벌이 전면 금지되었다. 체벌금지의 발표가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조치라고 환영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장풍 교사의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현장에 대체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급작스러운 조치라는 이견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조심스러운 반대의견은 체벌 금지가 실질적으로 시행된 작년 11월 이후 몇몇 학교에서 교사-학생 간 폭행사건이 언론에 가시화되면서 몇몇 교육단체의 ‘체벌금지 불복종 운동’이라는 해외토픽에 날만한 선언으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정말 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체벌 금지로 인해 아이들은 안하무인격으로 날뛰고 있는가? 정말 학교는 체벌금지 하나로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가?
체벌 금지 조치 이전에도 체벌은 제한된 교사들의 수단이었다. 이미 지나친 체벌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민원이 심해지면서, 교육청에서도 지나친 체벌로 인해 민원이 제기되지 않도록 수시로 공문을 내려 보냈다. 즉 체벌금지 조치 전에 교육청 입장은 ‘교육상 필요한 체벌은 공식적으로는 허용하되 민원이 나지 않도록 살살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체벌을 일상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교사는 체벌을 해도 민원을 낼 엄두가 안 나는 무서운 교사이거나 학교에서 ‘생활지도’의 책임을 맡고 있어 ‘체벌할 권한이 공식적으로 주어진’ 생활지도부 교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체벌’의 우산 속에 몇몇 교사들이 ‘손바닥 때리기’ 정도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교육상 필요한’, ‘다소 경미한’ 체벌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똑같은 잘못을 해도 어떤 교사에게, 어떤 상황에서 걸리느냐에 따라 다른 체벌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 학생들은 뭔가 잘못해서 맞았을 때 그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옆 반 선생님은 봐주는데 선생님은 왜 때리느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때릴만한 사람 다시 말해서 물리적 힘이 센 생활지도부의 무서운 교사가 때리면 ‘그럴만하다’고 여기지만 그보다 힘이 약한 교사가 체벌을 하면 더욱 반항했던 것이다. 즉 체벌은 어떤 학생이든 어떤 교사든 명확한 잘못이 있을 경우 남김없이 당하거나 행하는 사법체계속의 징벌이라기보다는 학교 안의 권력관계에서 물리적 힘이 있는 사람이 ‘생활지도’라는 ‘권위’를 더하여 행사한 폭력이었던 것이다. 결국은 ‘맞을 만한 짓’을 해서 맞는 일 보다는 ‘때릴만한 사람’을 만나서 맞는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합법화된 힘의 질서에 노출된 학생들이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체벌 금지, 그 이후
체벌 금지 이후 언론에 가시화된 교사-학생 간 폭행 사건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교사들이들이다. 약자로서 폭력을 당연하게 경험한 학생들은 자신이 ‘때릴만한 위치’가 되었을 때 자신의 폭력적 근성을 드러낸다. 그것이 교사들을 향해서는 만만한 여교사이거나 기간제 등 비정규직 교사인 경우가 많다.
또 체벌을 통해 잘못을 가리는 정의의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저항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르친 적이 없다. 가장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경우 교사가 학생들에게 잘못한 행동에 대해 서로 때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 지시에 불응하는 과정에서 폭행으로 이어졌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말대꾸야’라는 말로 묵살되었던 학생들은 스스로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정당한 수단으로 표현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체벌 금지 이후 언론들은 마치 학생들이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이 되어 날뛰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 짐승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체벌’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짐승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시키면서 입시 공부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학교, 성적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부모, 평생 남을 돌보지 말고 경쟁할 것을 주문하는 사회가 아닌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에게 다시 학생들을 때릴 합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은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일이다. 힘 있는 남교사가 정의의 사도가 되어 학교의 ‘무서운 아이들’을 '힘‘으로 지도하는 시스템이 계속 된다면 영원히 ‘힘’이 권위를 유지한다는 질서 자체는 더 공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순간은 권위가 유지되는 듯하지만, 학생들은 더 약한 희생양을 찾아 안 보이는 곳에서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교권을 세우는 일은 어떤 식의 폭력이든 학교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 폭력 뿐만은 아니다. 최근 민노당에 소액을 후원한 교사들이 교직을 박탈당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최소한의 기부조차 금지당한 교사들이 어떤 권위 있는 존재로 교단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이 이외에도 교사들의 의견이 무시된 채 교육청의 지침대로 움직여야하는 비민주적인 학교 풍토, 학생들과 소통하는 수업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문제집 수업을 강요하는 일제고사, 학교 공부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입시제도가 교육자로서 교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교육 당국과 이 사회가 진정으로 교육과 교권을 걱정한다면 체벌할 권리가 아니라 입시에 자유롭게 수업을 기획할 수 있는 평가권과 교육과정 편성권 그리고 교사이기이전에 한 시민으로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 조영선
경인고등학교 교사로 '인권'에 대해 고민하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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