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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생생한 시각] 용산은 묻는다, 그 불편한 진실을
[생생한 시각] 용산은 묻는다, 그 불편한 진실을
김지현(나랑)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안개가 짙게 깔린 날, 용산 열사들을 뵈러 모란공원 가는 길. 추모제에도 가지 못하고 이제야 찾아뵙는 죄책감 때문인지 버스 안에서 유독 멀미가 심하게 올라왔다.
모란공원의 터줏대감 전태일 열사를 먼저 뵙고, 용산 열사들의 묘를 찾는데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겨우 겨우 찾긴 찾았는데... 겨울이라서 그럴까? 열사들의 묘는 아직 잔디도 묘비도 없이 봉분이 비닐에 덮인 채 국화꽃 몇 송이만 놓여 있었다. 다섯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는 것이 용산 열사들임을 확인시켜 줄 뿐... 번듯하게 묘비도 있고 시들지 않은 국화꽃도 가득할 거라 생각했는데, 괜한 서러움에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지난 1월, 장례를 치르고 열사들을 모란공원에 묻었지만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진보넷 블로그에는 용산의 남일당을, 카페 레아를 그리워하는 블로거들의 글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고 있다.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지난 1년간 우리는 용산을 충분히 애도했나?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성찰했나?
작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접했을 때, 그가 자살을 선택하기까지의 압박감은 너무 안타까웠지만 솔직히 그를 위해 흘릴 눈물은 없었다. 그 즈음 93학번 선배와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는데 한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그 선배가 쏟아내는 노무현 추앙의 발언에 적잖이 놀랐었다. 노무현 집권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투쟁하면서 정권의 탄압을 온 몸으로 경험했던 나에게 그 선배의 망각은 작은 분노를 자아냈다. 새만금, 대추리, 이라크 파병, 그리고 비정규악법은 어쩌라고...
500만 명 이상의 추모행렬을 TV로 볼 때엔 묘한 소외감마저 일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집권기의 5년은 삭제되고, 집권 전의 민주주의 투사 노무현과 집권 후 봉하 마을의 밀짚모자 노무현만 살아있단 말인가.
그에 비해 용산 열사들의 죽음은 너무 쉽게 잊혀진 것 같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투쟁 동안 7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 역시 외로운 죽음이었다.
왜 사람들은 노무현의 죽음에는 눈물 흘리면서 용산과 쌍용차는 이토록 쉽게 잊는 것일까. 작은 물음표 하나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생각을 이끌어가기 위해 책 하나를 끄집어내 읽어내려 가려한다.
책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산책자)의 부제는 ‘용산에서 노무현 그리고 김대중까지 죽음과 기억의 정치학’이다. “이 책은 2009년에 있었던 몇 건의 죽음들에 관한 사회적 기억의 비대칭성, 그것의 해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한국사회 전반을 들끓게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그 몇 달 전에 일어난 용산의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망각, 이 비대칭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한다.
시민들이 용산을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 재건축 열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강북 주민들은 뉴타운으로 보상 받으려 했”고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가장 강력한 힘은 뉴타운이었다.” “자가 소유 또는 주택가격 상승 같은 소박한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고 한나라당의 뉴타운 정책에 표를 던졌지만, 정작 결과는 살아온 ‘정든 땅 언덕 위’를 쫓겨나듯 떠나야 하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한번 품은 뉴타운에 대한 환상과 애착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용산을 직시할수록 뉴타운의 꿈이 신기루였음을 인정해야만 하기에, 용산이라고 하는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가족들과 단란하게 살아갈 집 한 칸 장만하는 것도 2~30년이 걸리는 서울 땅에서, 재개발로 얻을 이익을 계산기 두드려 보는 것을 속물적이라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미쳐가는 개발의 시대에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정부를 믿을 수는 없지만 정부를 반대할 수도 없는 아이러니. MB정부의 지지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산을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내가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나의 존재기반 또한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순 없다. 용산 참사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렸다. 뉴타운 재개발의 환상, ‘나는 아니겠지’라는 환상,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제기했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기에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끝이 없었던 노무현 추모행렬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한 필자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시민들이 찾은 ‘대안 종교’가 노무현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이었다고 한다.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스스로 저항과 운동을 조직할 자율성이 이전에 비해 약화된” 시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또 다른 구원자’와 ‘대변자’를 갈구했”고 “이런 와중에 노무현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순교자’, ‘서민의 대변자’로 그를 불러”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정말 “민주주의를 위한 순교자 내지 정치적 타살을 당한 정치인, 지켜주어야 할 정치인”이었을까? 사실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고, 그 ‘신자유주의 개혁’의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 농민, 가난한 자들이 죽어갔다. 그런데도 “한 사람의 죽음이 그의 시대에 죽임당한 다른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가로막아 버”렸다.
노무현 前대통령의 장례식 날, 시청광장을 새벽까지 지킨 사람들은 민주당 의원들도, 노사모 회원들도, 시민단체 회원들도 아니었다고 한다. 소수의 촛불시민과 ‘용산철거민 열사분향소’만이 시청 광장을 지키다 새벽녘에 끝끝내 끌려 나가야 했다. “우리 열사들도 장례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함께 해달라”는 호소는 집회가 끝난 후 나뒹구는 유인물들처럼 외면당한 채…….
어쩌면 우리는 정작 애도했어야 할 용산을 애도하지 못한 무의식으로 노무현을 애도한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느낀 상실감은 사실 노무현을 잃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잃어서이고, 그 상실감으로 ‘바보 노무현’이라는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닐까.
거짓말처럼 1년이 지나고 열사들도 땅에 묻혔지만, 여전히 용산은 묻는다. 내 안의 MB를, 우리 안의 뉴타운을. 결국 죽어서야 자신의 몸뚱이 하나 누일 공간을 얻게 된 사람들을, 그들을 외면하고 편하게 잠들 집을 갖고 싶은 나를. 나를 향해 외친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정녕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지키지 못해 미안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 그 불편한 진실을, 많이 쓰라리더라도,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김지현(나랑) ● 기꺼이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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