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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생생한 시각] 시험대에 오른 것은 미디액트만이 아니다
편집자주: 새로이 신설된 꼭지 [생생한 시각]은 기존의 [쟁점과 현안], [MB와 나] 꼭지에서 다루어지던 ‘현재 이슈가 되는 사안’이나, ‘현 정부의 행태가 개인 혹은 일상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좀 더 편안한 언어로, 생생한 시각으로 다루기 위해 통합·신설되었다. 너무 어려운 단어들만 나열되어있던 쟁점과 현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쉽게 풀어 쓴 언어로! MB정부라는 한시적인 정부를 지칭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느낀 이슈에 대한 생각들이 계속적으로 녹아날 수 있는! 꼭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생생한 시각] 시험대에 오른 것은 미디액트만이 아니다
장경희 ●
“실례지만 타자 빨리 치세요?”
2009년 5월 18일,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수강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날, 강사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것과 타자가 빠른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언뜻 떠오르지 않은 나는 당황했다. 알고 보니 지원자 중에 청각장애우가 있었고, 그분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녹취를 부탁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미디액트는 그런 곳이었다. 영상을 공부하려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곳.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와 요구를 채워주는 곳. 나는 그런 미디액트가 좋았다.
첫 촬영수업이 있던 날,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찍기는 좀 했었지만, 덩치 큰 촬영장비는 구경도 못해본 나는 몇 백 만원한다는 카메라를 고장낼까, 만지는 것도 겁이 났다. 그 카메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찍어오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나는 엄마를 찍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삶을 차분히 관찰했다. 카메라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볼 수 있게 하는 눈이 되어 주었고, 듣지 못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되어 주었고, 알지 못했던 엄마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이 되어주었다. 이상했다. 나는 점차 카메라를 따뜻한 존재로 느끼게 되었다. 촬영 과제에 대한 평가가 있던 날 나는 좀 창피했다. 엄마가 창피한 게 아니라, 엄마를 너무 못 찍은 내가 창피했다. 하지만 강사님과 나의 동기들은 “엄마가 미인”이라면서 엄마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우리 엄마에 대한 사소한 기록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그런 미디액트 사람들이 좋았다.
미디액트에서의 수업은 단순히 영상물을 제작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처음엔 카메라를 작동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웬만큼 익숙해질 때면 카메라로 무엇을 찍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수업이 이어졌다. 그 시간들은 다만 제작수업이 아니라 인생수업으로 이어졌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미디액트에서 발견한 내 꿈이 좋았다.
2010년 1월 25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공모 결과’를 들었을 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곧장 광화문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2002년부터 8년 간 미디액트를 운영해 온 주체들이 세운 법인 대신, 재공모(2010년 1월 15일) 기간으로부터 불과 열흘 전인 1월 6일에 설립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영상미디어센터의 새 사업자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광화문역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생각해 봤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미디액트에서 보낸 6개월 동안 내가 관찰한 바로는 미디액트가 하는 교육, 장비대여, 정책연구 등을 포함한 일련의 사업은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이고, 갑자기 사람을 바꿔도 운영될 수 있는 성질의 서비스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진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지금의 ‘미디액트’라는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는) 브랜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일민미술관 5층이라는 공간, 값비싼 장비들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센터를 운영하는 스텝들의 열정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런데 영진위는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사업자로 8년의 노하우를 가진 미디액트 대신 생긴 지 10일된 단체를 선정한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미디액트에 도착했을 때, 스텝들은 짐을 싸고 있었다. 영진위의 공모결과는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영진위의 이번 결정을 단순히 미디액트를 운영해 온 스텝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미디액트를 이용해 온 수많은 이용자들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이다. 영상미디어센터에는 운영주체만 있는 것이라 이용주체가 있다. 운영주체에 대한 공모 및 심사는 절차적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영진위의 주장에는 미디액트 이용자들에 대한 고려와 배려는 빠져있다. 영진위가 무리하게 사업자를 변경함으로써 나는 당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 강의와 새로운 편집툴을 익히기 위해 신청해 두었던 2월 강의들이 폐지되었다. 그 강의들은 미디액트가 지난 8년 간 쌓아온 교육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면 개설될 수 없는 것으로서, 내가 여느 사설기관 혹은 대학에서도 받아볼 수 없었던 최상의 교육서비스를 최고로 저렴한 수업료를 내고 들을 수 있는 강좌들이었다. 이런 손실과 피해에 대해서 영진위는 미디액트 이용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지난 2월 1일,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미디액트 대강당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도 영진위 관계자들은 이용자들의 피해에 대한 인식 없이 “선정과정은 공정했다”는 자기주장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나는 미디액트의 이용자로서 이용주체를 철저히 배제한 영진위의 이 같은 태도에 분개한다. 또한 ‘이미 결정 난 걸 뒤집을 수 있겠느냐’는 냉소와 체념의 말들에도 역시 화가 난다. 내가, 우리가, 영진위의 파행적인 행정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공공적인 서비스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폐지하거나 운영주체를 변경해도 시민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이라는 신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란 (영진위 심사총평에서 말하듯) ‘사무국 구성원의 전공분야가 다양하게 구성’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상미디어센터는 일방적으로 시민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장애를 넘어서서 소통하기 원하는 사람, 아주 사소한 기록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서 배우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미디액트는 이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미디액트 스텝들은 전문성을 갖춘 것은 물론, 이용자들에게 항상 귀 기울이며 시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몸으로 뛴 헌신적인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미디액트가 좋았다. 현재 이용자가 아무 불만이 없다는데, 영진위는 무슨 자격으로, 어떤 명분으로, 미디액트가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가.
영진위의 공모 결과는 미디액트 스텝들을 위협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디액트 이용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시험대에 오른 것은 미디액트 스텝들의 자격만이 아니라, 미디액트 이용자들의 미디액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다. 이것이 <미디액트 공모 사태 관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용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블로그 : 어안이 벙벙한 이야기(http://formediact.wordpress.com)>가 개설되고, 2010년 1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 기자회견 : 심사를 발로 했습니다>가 열린 이유다.
장경희 ● 미디액트에서 2009년 5월부터 10월까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과정 13기를 수료했다.
센터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모임 <돌아와 미디액트>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웹툰by. 센터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모임 <돌아와 미디액트> 태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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