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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 커피, 그리고 마음
[나의 삶, 나의 이야기] 커피, 그리고 마음
황은영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커피를 좋아한다. 숟가락에 원두커피를 수북이 담아 수동분쇄기에 넣고 ‘드르륵드르륵~’ 곱게 간 커피가루를 모카포트로 내리면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 알갱이가 만져지는 굵기의 커피는 드리퍼에 담아 ‘주르륵주르륵’ 뜨거운 물을 부어내리면 깔끔한 커피가 만들어진다. 삼년 전, 상담소 문을 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커피와 친해지게 되었다. 커피와 화초를 벗 삼아 이야기하던 새내기 개업상담가의 고독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커피와 친해지기 훨씬 전, 민우회 간사가 되고픈 때도 있었다. 민우회가 너무 좋아서였을까나? 같이 회원모임 활동하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민우회 상근활동가가 되는데 나는 아닌 것이 왠지 서운했다. 간사가 되고픈 마음을 내비췄을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간사 말고 강사 해~~!” “도대체 어디서 강사를 하냔 말이야~~! 치~~ 간사 시켜주지~!”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서른 넘어서 ‘내 삶을 살아보겠다.’는 당찬 각오로 사표를 던지고,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상담공부를 시작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선생님들은 얼마나 좋을까? 상담에 까막눈인 나는 한글로 쓰인 책도 이해할 수 없는데 저렇게 술술 강의를 하다니!! 또 상담소에 근무하니 얼마나 좋을까? 상담소선생님들은 자기 맘을 잘 아니까 서로 이해도 잘 해주고, 따뜻할 거야~~!’ 부러운 맘에 강사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상담소에 계시면 좋지요? 서로 잘 알고 이해도 잘 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며 웃으셨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서요.” 나중에 상담소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웃음이 ‘쓴웃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서 ‘내 마음 속’으로 풍덩 뛰어든 건데, 헤엄치는 법을 몰라서 ‘꼬르륵’ 물도 많이 먹고, 떠내려가다가 다행히 바위에도 걸리고, ‘이도 저도 다 싫다.’는 맘으로 다시 뭍으로 올라간 적도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새록새록 ‘위기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고 삼사년이 지나서야 누가 물으면 감추지 않고 “상담공부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 만큼 움츠리고 주눅 들어 있던 때 민우회에서 ‘간사’가 아닌 ‘강사’를 시켜주었다.
민우회 회원들이 흔쾌히 초보강사의 실험대상이 되어주었고, 내가 배운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커다란 마당’을 만들어주었다. 올해 이사 간 민우회 사무실에 처음 놀러갔을 때, “민우회가 (내가 상담가로 성장하는데) 8할을 키워주었어요!”라고 얘기했다. 입 밖으로 꺼내놓고 ‘8할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6할이라고 할 걸 그랬나?’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상담해서 밥이나 먹고 살까? 도대체 누가 나에게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러 올까?’ 스스로 미덥지가 않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민우회에서 처음으로 강의도 하고, ‘자기성장모임’도 하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상담의 비밀보장 원칙에 따라^^) 어떤 이에게 싼 값에 상담해준다고 꼬드겨 개인상담도 해보았다. 민우회가 내게 상담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실험과 수련의 장이 되어준 것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무엇이 저 사람을 살렸을까?’ 싶을 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궁금함을 갖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생에 한두 명씩은 꼭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런 만남, 경험이 있는 내담자들은 내면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몇 번씩 마주치게 되는 ‘큰 봉우리’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난다. 나쁜 경험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마음 속 상처로 남아있듯, 좋은 경험도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가 검푸른 바다에 빠져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 ‘구명튜브’가 되어준다. 초보상담자이던 내게 민우회는 그런 사람과 같았다.
누군가 어떻게 ‘상담자’가 되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리 되었네요!’라고 답한다. ‘험한 봉우리’를 만나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민우회’사람들 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믿어주고, 때론 정신이 번쩍 나게 일깨워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나를 알아가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상담’이라 부른다.
공부하다보니 내가 ‘어려운 길’을 택해가는 이상한 습성(?)이 있단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다 가는 길보다, 남들이 잘 안 가려는 길이 내 길 같아 보이니, 힘들고 괴롭다고 누구를 원망하랴! 나는 지금도 ‘한 길’사람 속이 제일 궁금하고, 더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 상담자는 자기를 아는, 딱 그만큼만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더 깊이 알기위해 애 쓰고 있다(크흐~). 민우회에도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정신 팔려 했던 공부가 얼추 마무리되고 있어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자기성장모임’이든 ‘꿈 해석’공부든 마음바다 스킨스쿠버에 관심 있는 회원들을 만나서 함께 탐험해볼까 한다.
내담자와 상담자도 서로 인연이 있어야 오래도록 만난다던데, 민우회와 나도 인연이 깊은가보다! 어쩌다 회비가 밀려서 이참에 회원에서 은퇴하려고 했는데, 이임혜경에게 딱 걸려서 사무실에 올라갔다가 얼떨결에 회비도 올리고, 회원팀 사람들에게 ‘저 활용해주세요~~!’라고 말해버렸으니~ 에구! 오래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 있단 건 참 좋은 일일세~~! 얼쑤!~~
황은영 ● 분석상담가, 자기성장연구소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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