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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 [나무] 이야기
[나의 삶, 나의 이야기] [나무] 이야기
나무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모임 ‘요망단’
아이는 평범했습니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 누구나 별 문제없이 평범하게 자랐구나라고 생각할만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부자 부모님을 두지도 가난뱅이 부모님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아이의 부모님은 종종 심하게 다투기는 했지만 -그로인해 어머니가 집을 나가려고 했던, 혹은 이혼을 하려고 했던 기억이 아이의 머릿속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한 -술을 마시지 못해 주사도 없었고, 도박도 하지 않았으며, 바람을 피지도 않았으며, 성실히 일을 했으니- 어른이었고, 어머니 또한 가정에 헌신적인 -새벽 일찍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좁은 방이었더라도 집은 항상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남편과 아이들의 옷을 사더라도 자신의 옷은 사지 못하는- 어른이었습니다.
아이가 살던 동네가 부촌도 달동네도 아니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이 또한 가정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욕심을 내어 본적이 없거니와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크게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아이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우월감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아이의 학교생활 또한 평범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유별나게 드러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아서 선생님에게 적당한 칭찬과 사랑을 받는 아이었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어를 좋아했지만, 영어를 싫어해서 고등학교에서는 이과를 선택했고, 셈에 능해 수학을 잘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에 서울에 있는 적당한 대학교의 수학과에 입학을 한 그런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아이도 무언가 슬픔이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겉으로 들어날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겉으로 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어른이 되어 회사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소망하는 아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되고 싶었고, 누구보다도 다정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이 평범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곳에서 아이가 갑자기 변했습니다. 사실은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어떤 문제도 없는 듯 보이는 -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아이였지만,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는 답답한 무엇들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먼지처럼 아무도 모르게 쌓여가는 답답한 무엇들은 어느덧 무거워지고, 마음을 무겁게 누르기 시작하자 아이의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아픈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가끔 너무나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무엇 때문에 자신이 힘들어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중학생이던 때에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뺑소니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학교에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먼저 빈소에 가셨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아이는 여동생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서 외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와 여섯 명의 이모들은 모두들 너무나 서럽게 울고 있었고, 두 명의 삼촌들은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눈시울은 붉었습니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첫 번째 손자였던 아이를 유독 예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슬픈 마음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테니 어머니와 이모들과 삼촌들처럼 서럽게 우는 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 난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스스로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음란비디오를 보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돌려 볼 때에도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음란비디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음란비디오를 보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음란비디오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아이는 다른 남자아이들이 모르게,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 모르게 음란한 사진들을 보면서, 음란한 내용의 글을 읽으면서 자위를 했습니다. 아이의 첫 경험이 되어버린 행위 또한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명백히 밝힐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자신의 못된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했었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오래도록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같은 행위를 반복했고, 이러한 행위의 반복들은 아이를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도록 했습니다. 아이의 이성은 그러한 행위를 인정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욕망에 의해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고, 반복된 행위들은 아이를 더 무겁게 그리고 슬프게 만들어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무라고 이름을 지어준 어른아이입니다.
글을 읽으시며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아이의 이야기는 나무 스스로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나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나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하듯 풀어내니 조금은 편안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살았던 이십여 년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나무라고 이름을 지어주기 전 어른아이가 되기 위해 살았던 십여 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어른아이가 되기 위해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십여 년의 시간동안 나무는 많은 경험들을 하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했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기관에서의 자원봉사활동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나무의 마음을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못된 것들을 잔뜩 가르치는 군대에서는 [꽃]들의 반짝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나무]의 여유로움을 볼 수 있게 되었고, [하늘]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학과 소모임인 ‘소시오 드라마(socio drama)’를 하면서,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을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고 표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의 방황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갖게 되었고, 삶에 대한 목표를 재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조금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살았던 이십여 년도 어른아이가 되기 위해 살았던 십여 년도 모두 지금의 나무가 있게 한 시간들이였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통해 나무는 조금씩 더 자라서 풍성한 나무가 되어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진짜 어른아이가 되어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무 ● 모든 자유로운 행동들이
지나침도 치우침도 없는 어른아이가 되려합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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