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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문화산책] 이런 로맨틱코미디가 가능하다니!
[문화산책] 이런 로맨틱코미디가 가능하다니!
러브스토리 없는 러브스토리, 깊이 있는 사색과 성찰
<500일의 썸머>
마법사 ●
최근 몇 년 간 참 메마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애감정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랜 이야기, 이제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연애이야기에도 시큰둥이다. 한때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였거늘, 오호 통재라!
그래서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연애욕(欲)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設)이 적용되는 거라고, 하도 사용하지 않았더니 이제는 욕구조차 생기지도 않는다고 떠들곤 했다. ‘연애의 용불용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가설이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판타지를 쏙 뺀 로맨틱코미디 영화라니 궁금했다. 판타지 없는 로맨틱코미디가 과연 가능하긴 한 이야기인지, 연애이야기에 시큰둥한 내게 이 로맨틱코미디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혹시 알아? 이 영화 덕분에 경험으로 얻은 ‘연애의 용불용설’을 뒤집게 될지?
지금껏 만난 적 없던 신선한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탄생
쉴 새 없이 키득거리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 스토리에 딱 맞는 배경음악, 여기까지는 지금껏 수두룩하게 나왔던 웰메이드 로맨틱코미디 영화들이 이미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500일의 썸머>는 달랐다. 영화의 영문 홍보문구인 “This is not love story. This is a story about a love.”는 진실이었다. 사랑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 로맨틱코미디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기존 장르영화는 다루지 못했던 사랑과 연애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은 이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이다.
이 영화는 보통의 로맨틱코미디 영화들이 여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것과 달리 남주인공 탐(조셉 고든-레빗)의 눈과 가슴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처럼 굳어진 여주인공에게 연애코치를 하는 조연급 여친들의 그칠 줄 모르는 수다 역시 탐의 오랜 친구 로빈과 직장동료 맥켄지, 이렇게 남친들에게 맡겨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남자가 바라보는 연애는 여자의 연애와 어떻게 다른지 성별구도로 해석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연애에 대한 지극히 유아적인 판타지를 품고 사는 탐의 좌충우돌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아직 덜 커서 덜 익은 사랑의 풋내기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연애에 말썽이 생길 때마다 한참 터울이 지는 것으로 보이는 여동생 레이첼에게 쪼르르 달려가 조언을 구할까. 운동연습 시간이 되어 레이첼을 부르는 코치 선생에게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요!” 하고 징징대는 오라비의 찌질함이란!
<500일의 썸머>가 보여주는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연애 이야기는 지금껏 연애에 대해 고민하고 징징대는 모든 ‘사소한’ 일들은 여자들이나 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해왔던 편견을 뒤엎는다. 대신 인간에게 연애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근원적인 성찰을 하게 한다.
쿨하거나 미치거나, 이분법을 넘어
탐과 썸머의 연애관은 보통 사람들이 연애를 대하는 양 극단을 보여준다. 운명 같은 사랑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는,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운명적 사랑에 썸머를 끼워맞추느라 연애를 하는 와중에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던 탐. 그리고 무엇 하나에도 집착이 없는 듯 쿨하기 그지없어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결국은 어느 것 하나에도 몰입할 수 없는 관계거부증 썸머.
사람들이 가진 사랑에 대한 환상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미쳐야 진짜 사랑’이라는 것과 ‘쿨해야 멋진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요 거짓이다. 미친 것이 어찌 진짜일 수 있으며 사랑인데 어찌 쿨할 수 있단 말인가. 양 극단을 오가며 미친X 널뛰듯 하는 게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신분열증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탐과 썸머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마치 미친 듯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거나 언제든 멋지게 굿바이 할 수 있는 쿨한 사랑을 꿈꾼다. 각자 자신이 생각한 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리를 강요한다.
그러나 500일 거치며 탐과 썸머는 깨달았다. 지금껏 자신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사랑과 연애에 대한 명제들이 잘못되었음을. 미친 운명과 멋진 쿨함 사이를 오가던 탐과 썸머의 연애는 이렇게 탐과 썸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어느 로맨틱코미디의 결말이 이 영화처럼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사랑은, 연애는, 계절과 같은 것
사랑은, 연애는 계절의 순환과 같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결국은 홀로 남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탐은 썸머와의 500일을 통해 여름의 뜨거운 열병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다시 썸머를 만나기 전처럼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혼자는 썸머를 만나기 전의 혼자와는 다르다. 더 이상 자신이 믿는 운명 같은 사랑에 상대를 꿰맞추려던 철부지 탐이 아니다. 계절을 거치며 세월을 지나며 탐은 조금씩 성숙했다. 아마 앞으로 또 다른 연애를 하고 또 헤어짐을 겪겠지만, 지금과는 또 다른 탐으로 홀로 남게 될 것이다.
썸머 역시 탐과의 500일을 통해 관계거부증으로부터 벗어나 조심스러운 걸음을 내딛었다. 이 걸음이 운명을 거부하던 쿨한 여인의 개종(改宗)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다시 “관계는 필요 없어”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또한 이전의 썸머와는 다른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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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연애는 계절의 순환과 같다.
순환은 똑같은 반복과 다르다.
순환은 변화이며 성장이다. 하기에 썸머와의 500일이 남긴
생채기가 아무리 깊어도 탐은 다시 사랑을 할 것이다.
나 역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 니체
마법사 ● 다름, 소통, 성찰, 치유, 공감, 변화를 좋아하는 마법사.
이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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