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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4월호 [마포나루에서] 나에게 십 분의 시간을 주었다
[마포나루에서] 나에게 십 분의 시간을 주었다
정슬아 ● 여경鏡,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알 수 없는 꿀렁함에 사무치게 외로운 날이 있다. 익숙하면서도 때마다 낯선 그 기분은 항상 우리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바쁜 일상에 찌들어 당장 도망치고 싶을 때, 하필이면 그런 때에 와버리는 외로움, 무기력함, 우울함, 더불어 몰아치는 슬픔은 ‘빛의 속도’를 가진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와서는(물론, 개인 스스로는 ‘이러다가 오겠구나!’ 예상되는 뻔 한 결과이기도하지만) 우리의 생기로움을 아그작아그작 갉아먹는다. 그걸 경험하고 있노라면 세상에 모든 악의 기운은 다 ‘나’한테 와있단 착각에 빠진다. 그럼 그때부터 찍는 거다. ‘나’만의 영화를. ‘삶이란 참 녹녹치 않아.’ 내지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제일 가여워’ 정도의 내용으로.
그 촬영현장은 요즘 민우회 사무실에서 자주 목격되고는 하는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작년에 이어 홍보업무를 맡아 ‘함여’*씨와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는 요즘 상태가 영 ‘메롱’이다.
빵빵 터져주는 사건사고들(계속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다롱이(멍멍이)의 죽음에 대한 기억, 부모님의 실직, 갑작스런 외삼촌의 장례, 차가 폐차가 될 정도인 아빠의 교통사고 등. 아, 이젠 단어들의 나열이 되었구나)을 제대로 수습 못하는 나약함. 여력도 없으면서 함부로 받아버리는 주제파악의 판단미스. 괜한 자존심. 갖다 버린 건지 도통 찾을 수 없는 시간개념. 알바도 해야 하고, 각종 모임은 때마다 가야하고/가고 싶고, 기타도 배우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 과다한 욕심. 제일 고민인 ‘홍보’담당인데 일부인 ‘함여’발행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 새로이 친해지고 싶은 ‘여성노동’씨와 제대로 말도 못 섞고 있는 한심한 나. 회원들한테 든든한 활동가이고 싶은데 민우회 사업에 대해 설명도 제대로 못하는(왜곡이나 하지 말던가-_- 이건 뭐 내 맘대로 해석해서 새로운 사업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생긴 거 같다), 변명이 늘어버린, ‘어버버’하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생각 없는/준비 없는 나를 자주 만나게 되는 현실. 썩어버린 기억력. 수습할 틈이 없다. 아, 젠장.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들과 감정선이 유지되다보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게 일이 꼬여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라는 꿀렁함을 시작으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고 그러다보면 외롭고, 아무것도 못하는 스스로에 화가나 자존감은 바닥을 들어내고 이내 슬퍼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 우울함의 최고 경지는 괜히 몸도 마음도 나는 ‘힘들다힘들다지친다지친다못한다못한다’하는 생각들을 되뇔 때 이르게 된다.
아마 경지에 이르렀을 때였던 거 같다
그날도 역시 미뤄놓은 중한 일들이 둥둥- 떠다니기만 하고 손에 잡히지 않아 아침부터 좌절감과 무능력한 자신에게 심술이 나서 잔뜩 상해있는 얼굴로 사무실을 들어갔다. 그리곤 의자에 철푸덕! 앉았다.
“나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울 수 있을 거 같아. 하하”
내 짝꿍 나우가 툭-소리와 함께 어깨를 살짝 건드리고, 한 박자 쉰 후 이렇게 말했던가.
“울어도 돼.”
순간 들려오는(아마 마음에서 들려왔던 거 같다) 내 울음소리. 그렁그렁 투두둑- 그리곤 느릿느릿 옥상에 올라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나는 조금 더 있다가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생각을 시작했다.
내가 만들어낸 중압감에 ‘나도 몰라!’ 두 손 놓고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 괜히 민우회 회원게시판에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고, 부족하지도 않은 복사용지를 채우고, 어질러진 책상과 서랍을 정리하고, 괜히 지금 당장 커피가 엄청 먹고 싶다고 생각하며 1층에 내려가 커피<문>에서도 또 한 번 안절부절. 컴퓨터 앞에 앉기 싫어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쭈그리고 멍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못났다. 진짜 이 정도인건가? 아니다아니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울자. 까짓것 막 울자. 눈물에 충실해야지. 뭐부터 해치울지는 울고 난 다음에 생각해야지’하면서 ‘무리해서 모르는 척/아닌척하지 말고 힘들다고 인정해야겠다. 제대로 잘하고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인정해야겠다.’하면서- 그렇게 옥상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엉엉 울었다.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의욕이 생겼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맞으니까 직면하고 반성하고, 다시 계획하고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들 말이다. 대충 뭐 이런 감정들로 ‘나’만의 영화를 찍고 있었던 거 같다. 비슷비슷한 시나리오들을 반복하며, 주기가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괜찮아진 거 같다가 금세 다시 우울해져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하하.
‘밀린 일이 그냥(?) 코딱지 만했는데, 어느새 왕왕왕 코딱지 만해져서 코를 가득 채운 것 같은, 일하면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의 상황이 된, 게으름의 무덤에 파묻힌’ 나를 나에게 스스로 허락한 십 분의 시간이 구조해준 건 사실이니까.
여경鏡● 조난당한 나의 정신줄을 챙기느라 어찌나 힘이 들던지.
알 수 없는 꿀렁함에 사무치게 외로운 날쯤은 가뿐히 즐겨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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