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4월호 [문화산책] Yes, We are Open
[문화산책] Yes, We are Open
밀크 (Milk, 2008)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숀 펜, 에밀 허쉬, 조쉬 브롤린, 디에고 루나 등
옴 ●
영화<Milk>(밀크 2008, 구스 반 산트 감독)를 어느새 세 번 봤다. 혹자는 물었다. “시간이 많구나!?”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간 많으면 나랑도 보러 갈래?” 라고 물어봐준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냉큼 네 번째 약속을 잡고 있을 거다. 왜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보게 되었을까? 단체 상근활동가로 살면서 요새 들어 상근자들의 전문화된(?) 작업장 안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점점 많아진다. 성명서나 기고 글을 쓰다가 이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자리 잡은 모양새가 너무 견고해보여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뒷목을 잡게 될 때, 조금씩 진전시켜온 노력의 결실들을 한 순간에 뒤로 돌리는 결정을 소수의 집단이 행사할 수 있다는 걸 보게 될 때, 그럴 때는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 될까’가 처음부터 다시 궁금해진다. 마침 개봉관에 나타나 준, 40년 전 어느 게이인권활동가의 이야기 <Milk>. 하비 밀크와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이 모여, 뻔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고 길이 보이는 무릎팍 도사의 조언을 만들어보면 참 좋겠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잠깐. 1970년 뉴욕. 생일을 맞은 밀크는 지하도에서 만난 스콧(놀라운 ‘게이다’)과 원나잇을 보낸 후 “마흔 살이 되었는데 보람된 일을 한 게 없네” 푸념한다. 훗날 오랫동안 게이인권활동가로 살게 된 스콧은 밀크에게 제안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을래?” 그래서 동성애자에 대한 경찰단속과 직장해고 위험에 갇혀 있던 뉴욕을 떠나 밀크와 스콧은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작은 블록 카스트로에 필름가게를 차린 두 사람은 지금 여기부터 게이들의 해방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악수한 손을 닦아내던 옆 가게 주인에게 “이웃으로 받아줘 고맙수!” 인사를 던진 뒤 두 사람은 호모포비아 상점 불매, 게이 우대 상점 적극구매를 대대적으로 벌여 이듬해 카스트로는 전국에서 온 게이들로 성황을 이루는 마을이 된다. 운수노동조합과 연대해 노동탄압 맥주회사 불매운동을 펼치는 등 활력을 발휘해가는 카스트로.
1973년, 당시 경찰은 게이바를 급습해 폭행과 연행을 일삼고 있었다. 카스트로도 예외가 아니어서 게이주민들은 호루라기를 나눠 가지고 위험이 생기면 서로 달려가던 상황. 동네 바에서 폭력 경찰과 싸운 어느 날, 부상당한 스콧의 상처를 닦아내며 밀크는 말한다. “우리에게도 정치공간이 필요해.”, “우리 이야기를 해야겠어.”
말총머리, 히피수염, 청자켓의 자타칭 카스트로 시장 밀크는 동네 버스 정류장에 포도쥬스 박스 연단을 놓고 시의원 선거 출마 작은 연설을 편다. 마리화나 규제 대신 총기 규제를, 경찰 예산 대신 노인에게 주택을, 약자에게 힘을.
73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출마, 75년 두 번째 출마, 76년 캘리포니아 주의원 출마를 위한 77년 시의원 출마. 네 번의 낙선 끝에 미국 최초 (공인)게이정치인 하비밀크는 78년,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 된다. 그리고 노골화되는 동성애 차별 법안들과 싸우게 된다.
무릎팍 도사는 내게 첫 번째 주문을 던졌다. “네 삶을 들여다봐.” 아니 이건 밀크가 첫번째 선거운동을 하다가 길에서 만난 어느 게이 청년과 나눈 대화잖아. 부르주아 정치 따위가 나하고 뭔 상관이냐는 청년에게 밀크는 떠나온 고향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묻는다. 그 차별과 폭력이 계속 그대로여도 좋겠냐고. 청년 역시 되묻는다. “아저씨도 가끔 정신과 상담을 받죠?” 반 동성애자 법안들을 막기 위해 열린 대책모임에서 밀크가 “그 사람이, 당신 곁에 살고 있는 바로 나다”라고 커밍아웃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하자 스콧은 반문한다. “아직 나이어린 이들이 갑자기 가족을 잃어서는 안 돼. 너 역시 나에 대해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잖아?”
모순에 휩싸이는 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지금 이곳에서 불안과 불완전, 위험으로 이미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몰고 다니는 정치인 밀크를 시기한 동료 의원이 “그런 이슈 나도 만들 수 있어!”라고 퍼붓자 밀크가 말했다. “이건 이슈가 아니라 생존이야.” 이슈는 간명한 주장을 필요로 하지만, 삶을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더 넓고 복잡한 토양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각난 이슈가 아니라 내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통째로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면 언제 무슨 이슈로 만들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전략이 생기지 않을까. 카스트로에서 가게를 처음 얻었을 때 그 앞 모퉁이에 앉아 열렬히 키스하는 밀크와 스콧 뒤의 쇼윈도에는 이런 팻말이 있었다. <Yes, We are Open> 영업 중이라는 그 팻말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읽힌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 모습이 우리이니 통째로 시작하겠다고.
두 번째 질문은 “너는 다른 이들과 얼마나 만날 수 있겠니?” 나는 개떡이라고 말해도 찰떡으로 알아들어주는 활동가들과 사무실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모여 일하는 이유는 우리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밀크의 만남과 논쟁사는, 온전한 삶을 이루기 위해 만나야 할 이가 얼마나 많은지 느끼게 한다. 노동자, 노인을 찾아가 왜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지 설득하고, 게이 후보 보다는 친 게이성향 이성애자 후보를 은근히 지원하겠다는 게이잡지 사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고, 개인적으로는 사회운동가 출신이지만 보수적인 당에 몸을 숨기고 있는 민주당 후보와 논쟁하고, 동성애자 교사를 학교에서 내 몰아야 한다고 법안을 낸 의원과 공화당 텃밭 지역구에서 맞짱 토론에 나선다. 나를 혐오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 tv에 나와 “악을 악이라고 말합시다!”라고 선동하는 이들을 직면하는 일은 얼마나 살 떨리게 싫고, 두려운 일인가. 맞짱 뜨기 위해 들어간 곳에서 벽을 보고 난 뒤 벽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다 다를까, 점점 더 다른 끝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갔던 밀크.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밀크를 추모하는 끝없는 촛불행렬은 그 끝에 시작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조언은 “너 혼자가 아니야”다. 역시 무릎팍 도사는 새로울 게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말을 잘도 한다. 그렇지만 한 순간도 냉소함 없이 맹하고 말간 표정으로 언제나 친구들에게 의견을 청하고 듣고 있는 밀크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저건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안면 근육(과 주름)이 확실하다. 나는 언제 저런 순전한 표정으로 살아보았을까!
밀크의 친구, 동료들은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고 또 떠나가기도 했다. 두 애인들과의 가슴 아픈 이별 장면에서도, 자기의 육신과의 이별 순간에도 밀크는 “너 혼자가 아니야” 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애인이 없어도, 사무실을 떠나도, 그 어떤 외롭고 고된 시간에도 그걸 믿어보라고.
무릎팍 도사가 내게 “그러니까 이번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손에 전단지를 들려주지 않아서 싱겁기도 하지만, 대신 오랫동안 곱씹어 마음을 키워보고 싶다. 무릎팍 도사가 필요한 네 번째 친구를 기다리면서.
옴 ●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4월 17일 일일호프에 놀러오세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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