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10년 3*4월호 [기 획 거짓말] 멋진 사람이고 싶었어
[기 획 거짓말] 멋진 사람이고 싶었어
빨간 콩 껍데기 ●
나는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의문이 들다가도 금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해 버린다.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모든 것이 진실 된 것은 도리어 부담스러워 하는 세상과 사람들과 살면서 마냥 진실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거짓말을 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마는 나는 주로 타인에게 실망을 주기 싫거나, 인정받고 싶거나, 더 많이 공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놈에 인정욕구로 인해 부풀리거나 숨기고 말하기 일쑤인 일상은 어느 순간 새로운 물음에 다다르게 했다. 여성들이 ‘담배’를 두고 하게 되는 거짓말처럼 사회적인 인식과 억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거짓말이 남성에게도 있을까? 그래서 아는 ‘남성’에게 캐묻고 다녔다. 다들 허풍과 허세, 혹은 케이블방송의 [남녀탐구생활]에서 보여주는 ‘여자가 하는 거짓말’ ‘남자가 하는 거짓말’과 같은 이야기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없는 것일까? 남성들이 사회적인 인식과 억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거짓말은? 그래서 몇몇이 모였다.
자리에 앉아 ‘안녕?’
이라는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시작된 거짓말에 단상과 절대 ‘내 얘기’는 아니고 ‘남 얘기’(남들은 다하지만 나는 안하는)임을 거듭 강조하던 우리들의 수다는 일관성 있게 뚝뚝 끊어지는 침묵과 쏟아냄으로 이뤄졌다. 분위기가 ‘어색해서’라는 이유보다는 거짓말에 대한 단상을 털어놓는 것이 갖는 쑥스러움 때문이랄까?(사실 멋진 사람이고 싶던 우리들이 티 나지 않길 바라며 숨겨왔던 거짓말이기도하고) 여하튼, 그랬다.
구성원은 대략,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솔직해 사람들의 우려를 샀던 사람,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을 계속 외치던 사람, 부모님에게 하는 거짓말이 제일 많다던 사람(그 내용은 빠져버려서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난 거짓말을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만 말하던 사람, 그들을 괴롭히던 ‘조금 더! 얘기해줘’를 눈빛으로 강요하던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말 그대도 젠더화된 거짓말이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모이게 된 우리들은 거짓말의 범위를 이야기하느라 한참을 보냈고(결론은 ‘그냥 정하지 말고 다 얘기하자’였다. 쿨럭), “더 없나?”를 줄곧 되뇌었다. 거짓말을 잘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한 수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난 페미니스트다’라는 거짓말 혹은
그 말 이후에 가려(?) 말하는 것들
#. 그게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르는 거잖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을 수 있지. 그건 모르는 거야. ‘난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는 순간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니까. 진짜 맞는지.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나 혼자.
#.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면은(시작한지 장작 2분 34초만의 일이었다. 벌써 까놓는 건가요) 나 스스로가 소위 ‘여성적’인 취향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어떤 측면에서는 그런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어필 가능한 부분이라고 인식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흔하게 남자들이 이해를 못하는 영화를 보면서 이해한다고 말하고 말이야. 그건 거짓말이 아니잖아. 흑흑. 아니 그게, 온전히 다 느끼고 얘기한 부분도 있지만은 그렇지 않고 상황에 맞게 더 부각시켜서 말하곤 했어. 이를테면 페미니스트라면 이렇게까지 얘기하겠지? 뭐 이런? 아니. 그 정도까지 안가더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지.
#. 그리고 남자들이 있는 공간에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 나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틀렸다고 하지도 않아. 동조도 안하지만 말이지. 남자들의 세계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게 되는 침묵이라는 형태로 말이지. 아마도 내가 지금 느끼는 건 남자들 안에서도 ‘쟤는 다른 놈이야’라고 인정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있었다는 거지. (씁쓸하다)
#.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진짜야. 정말!(-_-;) 예를 들어, 남자애들끼리 여자아이돌그룹(?) ‘소녀쫜쫜’ 이나 ‘포미쫜’를 본다고 쳐. 그때 대화가 남자들끼리 있을 땐 “나는 쟤가 더 좋아. 왜냐하면 쟤가 몸매가 더 좋기 때문이지. 혹은 몸매에 어디부분이 더 도드라지기 때문이지”라고 말해. 하지만 여성들이 다수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나는 다 좋아. 얘는 이런 매력이 좋고, 쟤는 저런 매력이 좋고.” 외모보다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 부각시켜서 이야기하는 거야. “쫜쫜은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이 정도? 물론, 둘 다 진심인데. 발화의 내용은 상당한 차이를 가지지. 근데 이게 거짓말인가? 넌 그런 적 없어? 글쎄. 나는 거짓말을 안 해봐서 잘 몰라. (급 정리되면서) 여하튼, 거짓말하는 것과 비밀, 감추는 것과 침묵하는 것은 다르면서도 살짝 경계는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
나는 멋진 사람이고 싶었어
#. 이성애자로서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했던 거짓말들은 어때? 나는 한 때 빨래를 자주한다는 식의 방어를 한 적이 있어. (정말 처절하다. 근데 공감이-_-;)친하게 지내는 무리 중에 지저분한 아이가 있었는데 같이 비난한 일이 있었어. 그 아이에 버금가는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물론 지금은 깨끗해. 빨래는 잘 몰라도 목욕은 잘해!. (그래그래. 토닥토닥). 좀 더 깨끗한 남성으로서 어필하고 싶었어. 엉엉.
#. 난 취향의 거짓말을 흔하게 하곤 하지. 영화를 고를 때나 식사메뉴를 고를 때나. (거짓말 안 해본 사람이라던 이도 동감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호감이 가는 여성의 몸의 기준이 있지만 말하지는 못해. (주류미디어의 피해자구나.) 으응. 그렇지만 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걸 바꾸는 건 어려운 걸. 흠-
#. 또 여성들의 소위 ‘겨털’(겨드랑이 털의 줄임말) 기르는 것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한 적이 있어. 정작 나는 흠칫흠칫 놀라고 고개 돌리고 싶으면서 말이야. (나도 그래.) 제모를 하지 않은 여성을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실 아직도 ‘잘’이해되지는 않아.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람인 냥 굴면서 속으론 민소매는 입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어.)
#. 거짓말을 하게되는 상황? 그냥 간단하지 않나? 멋진 사람이고 싶어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말이야. 혹은 나는 다른 남자와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거나/여성주의를 이해한다고 하는 남자들 중에 이런 이유인 사람들 꽤 있을 걸? 은근 그게 트렌드니까. 물론 우리는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
나눴던 이야기의 내용은 “더 없나?”를 줄곧 되뇌었던 것만큼이나 주제가 다양했다. 하지만 남성들이 하는/ 페미니스트인 남성들이 하는 거짓말들을 몇 가지 뽑아 본 것 외에는 제대로 정리해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아무래도 젠더화된 거짓말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며. 아니면 우리가 찾지 못하는 거냐며. 워낙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본인들은 맞지 않는 것 같다던 그들의 소곤거림이 남았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맥락은 저마다 달라도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이 있다면 토닥여주며, (강요되는)거짓말은 안 해도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 (뭐라는 거여)
빨간 콩 껍데기 ● ‘동심’ 컵라면이 있으면 좋겠다.
익숙해져 가는 것이 약간은 두렵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