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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4월호 [생생한 시각] 낙태 논쟁! ‘재생산 권리 찾기’로 답하다
[생생한 시각] 낙태 논쟁! ‘재생산 권리 찾기’로 답하다
유경희(생기)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낙태, 그 논쟁 속으로 들어가자
낙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2월 3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서울중앙 지방검찰청에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3곳을 고발조치 함으로써 낙태논쟁은 촉발되었다. 덕분에 낙태와 관련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좀 더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참에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고 말할 수 있는 장(場)을 풍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7년부터 2년에 걸쳐 나는 보건복지부의 ‘생명포럼’ (인공임신중절 감소를 위한 생명포럼)에 참여하였다. 법이 현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함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정부가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사유)개정을 위해 구성한 포럼이다. 포럼과정을 통해 낙태를 이야기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답답함을 경험한 바 있다. 그 당시에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수(數)적인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낙태허용 사유에 여성들의 실제 현실을 반영한 사회·경제적 사유가 포함되어야 함을 이야기 했었다. 논의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여성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낙태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일부 위원들은 여성과 태아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벗어나려하지 않았으며, 생명의 가치를 넘어서는 그 무엇도 있을 수 없다는 반복된 주장을 펴 논의는 늘 평행선이었다.
여성들은 낙태를 원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낙태를 원치 않는다. 다만 낙태를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것뿐이다. 여성자신과 태어날 아이, 가족,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힘들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출산을 하기도 낙태를 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낙태는 사회문제의 복합적인 구성물이며, 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당사자 여성의 주체적 권리여야 한다. 물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적·사회적 접근, 출산 후 지원책, 인식의 전환 등에 대한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3개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하거나, 낙태 허용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포함시켜 여성의 낙태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2009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낙태죄 폐지”를 권고하였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법적인 낙태는 여성이 가져야 할 ‘근본적 (재생산)권리’로 언급한 바 있다. 낙태에 대한 흐름이 이럴진대 우리 사회에선 새삼스레 낙태 단속, 생명존중의 논의들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여기엔 저출산이란 현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낙태불법화 정책은 저출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3월 1일 보건복지부는 129콜센터에 불법 인공임신중절 시술기관 신고센터를 설치,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계획’을 발표, 낙태시술자에 대한 처벌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각 상담소와 산부인과에는 상담이 늘고 있으며, 낙태비용은 계속 올라가고, 공공연히 해외원정낙태 이야기도 나온다. 낙태하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낙태 단속만을 강화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다.
저출산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 변화가 필요하다
2009년 출산율 1.15명, 이 수치는 저출산에 대한 심각성을 갖게 하였고 주무부처 장관은 ‘국가적 준 비상사태’라 하였다. 이후 범정부적인 저출산 대응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어린 시절,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가족계획협회’의 표어가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이름을 바꾼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작년 6월부터 ‘아이낳기좋은세상운동본부’라는 것을 만들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나섰다. 목적은 출산율 회복을 위한 출산친화 사회분위기 조성과 확산이다. 전국의 시, 군, 구 지역별로 출범식이 진행 중인데 어디나 할 것 없이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여성, 보육 각계의 인사(?)들이 들러리를 선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안 되기에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가 발 벗고 나선 것이란다. 개인은 누구이고 리더는 누구인가. 출산율 회복의 주체인 여성들은 그저 정책의 대상자인 개인일 뿐인가. 리더라는 그들이 채택한 분야별 ‘행동선언’에 귀 기울여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실천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방식에, 그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렵다. 전시행정으로 홍보에만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대학가의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한 협약’ 체결 흐름 또한 예사롭지 않다. Y대에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식(生殖)건강 증진대회’를, S대에서는 ‘행복한 출산, 부강한 미래’라는 특강 콘서트를 열어 ‘출산 서약’을 담은 선언문을 작성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K대 총장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이들의 가치관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U대 총장은 가정을 일구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열심히 교육시키겠다고 버젓이 인터뷰하였다.
여성들의 왕성한 사회진출로 저출산 문제가 초래되었다고 말하는 쫜쫜장관이나,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는 △△위원장도 다르지 않다. 이는 출산이 여성의 문제임을 상기시키고, 저출산의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음이다. 국가경쟁력과 유지를 위해 여성의 출산은 당연히 동원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여성들의 가치관 변화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여성들의 가치관을 거꾸로 변화시키기 위한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저출산 대응책은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길게 보고 양극화, 고용문제(특히 여성), 보육부담, 성차별, 가족이데올로기(가족중심주의) 등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정책이 따라야만 한다. 현 정부의 출산관련 지원책은 여성들의 삶에 와 닿지 않는다. 그걸 아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여성들, 재생산권을 행사하라!
2000년대 초반부터 출산율이 낮아지고, 이혼이 늘어나고, 고령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빨라졌다. 이 현상을 ‘가족해체’로 우려한 이들에 의한 건강가정기본법의 졸속 제정과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건강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이혼숙려제가 도입되었고, 가족구성의 권리보다는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가족구조와 사회는 결혼과 출산·양육 등의 재생산 과정에 발을 들여놓기 두렵게 한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가족 안으로 회귀시키려는 의도에 속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양육은 한 여성의 전체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를 포함,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할 주체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일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고, 더불어 사는 평등한 공동체를 꿈꾼다.
남녀가 일과 보육을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것, 보육 정책에의 전폭적인 예산 투자, 다양한 가족형태의 수용 및 인식변화, 평등한 직장문화 등으로 실질적인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할 때 아이 낳기가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여성권한척도가 높은 성평등사회일수록 출산율이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난 연구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여성들이 나설 일이다. 허울뿐인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이 아닌 온전한 재생산권리 행사가 가능한 세상 만들기에.
유경희(생기) ●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 챙김하며 살고 있는 중.
요즈음 부쩍 가마솥 밥이 그리워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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