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4월호 [민우칼럼 창] 딴 짓 모드, 작렬! 시집 방랑기
[민우칼럼 창] 딴 짓 모드, 작렬! 시집 방랑기
권수현 ●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하루 종일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만 읽다보면 온 몸에 물기가 다 말라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상상력도 온갖 난해한 분석적 개념들이 점령해 버렸는지, 꿈에서도 지들끼리 좋은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느라 아주 난리다. 젠장, 흰머리도 부쩍 늘어버렸어! 컴퓨터 앞에 앉아 되도 않는 원고를 쓰다 보면 눈은 뻑뻑, 머리는 띵~ 이러다 내가 건어물 인간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버린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처럼… 그런 위기감이 들 무렵이었다. 내가 시집을 찾게 된 것은. 사막에서 목마른 동물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 몸의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문득 시집 코너에서 멈춰 섰다.
척! 책을 펼쳐드니 일단 문자가 적고, 여백이 많다. 페이지의 빈 공간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요즘 어딜 가나 시각적 긴장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길거리 어딜 가나 현란하기 그지없는 볼거리들로 가득하니까 말이다. 시집을 펴는 순간, 느긋하게 긴장이 풀어지면서 호흡이 이완된다. 압축적이고 간결한 시 언어는 주절주절 여러 말 늘어놓는 법 없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새삼 깨닫게 된다. 아! 내가 얼마나 여백과 물기를 그리워했던가를. 한동안은 동화나 설화에 탐닉했지만, 시라는 장르도 괜찮겠어. 그래, 시집을 읽는 것이야! 내 영혼의 성마름을 달래주기 위해, 매일 자기 전 시집을 한권씩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손에 잡히는 시집마다 왜 이리 꿀꿀한 내용으로 가득한 것이냐. 안 그래도 여러 모로 에너지가 달리는데, 불행과 고뇌로 가득한 시집은 마음이 무거워져 책장을 넘기기도 버거웠다. 이러다간 영혼의 휴식은커녕 흰 머리만 더 늘어날 것 같았다. 괜히 읽었어, 괜히 읽었어… 잠시 툴툴거리고 있으니 시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의 한마디, “몰랐어? 시라는 게 원래 세상에 언어로 복수하는 거잖아” 그래, 몰랐다. 아니, 잠시 잊고 있었다. 시 언어가 가지고 있는 그 묘한 힘을.
가만 보니 나는 처음부터 ‘질 나쁜 연애’,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등 비딱한 제목에 끌렸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집 아저씨 보석에게 ‘쉬크한 무심함으로’ 응대하는 걸 볼 때의 통쾌함처럼, 이런 제목만 봐도 뭔가 상큼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착하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 “비뚤어질테닷! 마니페스토” 인간 유형과는 달리 세경처럼 다소 엉뚱하게 비딱한 유형은 시나브로 빠져드는 매력, 일종의 중독성이 있다. 시집의 제목만 보고 상큼한 내용을 기대했다가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무겁고 어두운 내용의 시집 역시 읽다보면, ‘불행의 미학’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 ‘불행이 주는 행복감’이라는 역설은 그것이 ‘미학’이나 ‘유머’ 등 무언가 다른 무엇과 결합했을 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박후기, 『너는 잘못 날아왔다』의 김성규는 ‘세상의 비참’에 대한 목격자 혹은 증언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시인들이다. 그러나 그 무거운 내용들은 품위 있고 아름다운 시 언어를 통해 전해질 때, 무릇 아름다운 것을 볼 때의 감동이 있다.
그러나 시집을 거듭 읽다보니 결국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시, 후딱 읽어치우기가 아까워, 하나씩 읽고 한참을 음미하게 되는 시는 아픔이 담겨져 있더라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살아있음’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시이다. 『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에서는 흙냄새가 나고, 『이 환장할 봄날에』(박규리)를 읽고 나면 매 순간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양이, 그 고독한 탄생 앞에서’는 박규리의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고통 속에서 형형한 눈빛’과 마주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생존의 무게 앞에서 고양이나 인간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둠 속에서 홀로 치러냈을 그 뜨거운 공포와 황홀한 두려움’을 겪어내고, 산고에 털이 다 빠진 채 ‘날선 발톱’으로 세상과 맞선 존재 앞에서, 그 새끼를 구경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무색해진다. 그 존재가 고양이일지라도 말이다. 살아있음의 지독한 실존,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 관찰과 사유의 미학, 찰나의 순간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시였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시집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가끔 역량에 비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10년 전에는 ‘숨어있는 걸작 비디오 보기’에 탐닉하더니, 이제는 ‘숨어있는 걸작 시집’을 찾아 나섰구나. 이렇게 ‘딴 짓 모드’가 작동하기 시작한 걸 보니, 이제 논문 단계에 들어선 게야. 다만 ‘딴 짓’이 ‘본연의 임무’를 압도해버리지 않길 바랄 뿐.
권수현 ● 박사논문이라는 큰 산을 앞에 두고
열심히 딴 짓하고 있음. 역시 딴 짓은 할일의 압박이 정점에 달했을 때 가장 짜릿한 쾌감을 준당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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