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4월호 [민우ing]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
[민우ing]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
대망의 ‘콘돔생활백서’ 출발!
최김하나(하나)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1997년, 중2 과학시간
생물 단원, ‘생식’ 환갑 즈음인 할머니 과학 선생님이 임신이 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며, 피임이 중요하다고, 알 듯 모를 듯 한 이야길 꺼내신다.
“콘돔 알지, 콘돔? 요즘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여기저기 가도 다 살 수 있지만, 내가 처녀 때에만 해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지 뭐야. 첫 학교 발령 받아 와 있는데 어디서 콘돔을 한 상자를 받았어. 그게 생긴 게 꼭 고무풍선처럼 생겼잖아, 그래서 자취집이라고 선생님들 불러놓고 집들이 하던 날 그걸 죄 불어다가 장식한다고 방안에 붙여놓은 거지. 그때야 정말 아무 것도 몰랐으니 그렇게 해놨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다 화끈거려. 집들이 끝나고 다들 돌아갈 때쯤에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붙잡고는 저걸 그래 왜 붙여놨냐고, 저거 풍선 아니고 콘돔이라고 알려주는 거 있지 세상에나. 그 길로 전부 떼서 버리려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쓰레기통에도 못 버리겠는 거야. 그래서 그걸 봉투에 몇 겹으로 담아서는 밤중에 학교 운동장 바닥에 흙을 파서 묻어뒀다니까, 그걸. 늬들은 이제 콘돔이 뭔지, 어떻게 생긴 건지 알았으니까 나처럼 망신당하지 말고 나중에 잘하란 말이야.”
2005년, 총여학생회 축제
대학 때 활동했던 총여학생회에서 ‘섹스’를 주제로 한 행사를 진행했다. ‘… 잘 하고 있니?’라는 제목으로 강연도 하고 영화제도 하고 수다파티도 열고. ‘불온물’이라 이름 붙인 빨간 표지의 작은 책에는 섹스와 자위에 관한 기획단들의 단상들(자극적인?!)을 빼곡히 실었고, 뒤표지 안쪽에다 콘돔을 하나씩 붙여 학내에서 배포했다. 쉽게 20대 초, 중반으로 추정해 본 그녀들의 반응은 각양각색. ‘웬일이니’를 연발하며 키득거리는 무리들, 악의 손길(?!)에서 구출하겠다는 듯 남자친구가 팔로 감싸 멀찍이 가버리는 이성애커플, 멀뚱히 자료집을 받아들었다가 바스락거리는 감촉에 뒤표지를 펼쳐보고는 화들짝 놀래며 자료집을 도로 돌려주던 그 분, 그리고 콘돔만 야무지게 떼어간 채 화장실, 학내 복도에 버려져 있는 가련한(;;) 자료집들 다수.
2009년, 학교 성교육
민우회에서 출강한 쫜쫜여고 2학년 2반의 성교육 시간. 피임법 설명과 콘돔 실습을 진행하던 중 자원실습 할 사람을 찾는데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결국 조별로 다 하기로 하고 성기 모형과 콘돔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성기 모형을 전달하는 폼들이 가관이다. 조금이라도 손이 덜 닿게 하려고 던지고 굴리고, 그러다 무릎에 떨어지면 소리 지르고. 콘돔을 포장에서 꺼내면 윤활제 때문에 미끈거리는데 집어든 표정들이 죽을상이다. 왜들 그러냐고 물으니 징그럽고 너무 싫단다. 그러고는 간신히 실습을 마치고 난 뒤 나눠준 물티슈가 닳아지도록 손을 박박 닦는다. 서로 손 냄새 좀 맡아보라며 ‘콘돔 냄새’ 배었다고 야단이다.
여러분은 ‘콘돔’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위 세 가지 장면들은 콘돔에 관한 저의 경험담입니다. 또 콘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기도 하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콘돔은 보다 인체공학적인 기능(?!)과 즐거운 디자인을 겸비하여 변화되었지만, 콘돔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회 분위기는 그만큼 변화의 보폭을 따라잡았는지 미지수입니다.
인터넷에 ‘콘돔’이라고 검색하면 성인 인증을 한 차례 거친 뒤(!) 다양한 정보들이 무수히 쏟아집니다. 주로 콘돔 등의 섹스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많고요, 콘돔 사용과 불감증의 관계, 미착용 성관계로 인한 임신 걱정 등의 지식/상담, 최근 ‘낙태 신고 사태’와 관련하여 피임-콘돔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뉴스 기사도 있네요. 무엇이 됐건 ‘콘돔=(이성애)섹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콘돔이 ‘성’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나 생각,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척도로 기능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단편적인 예로 콘돔 관련 지식/상담에 달리는 답변 글에 생각보다 꽤 괜찮은 내용들이 많은데, 그 중 상당수가 온라인 콘돔 판매 사이트에서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에요. ‘콘돔을 사용하면 느낌이 별로라서 안 끼고 싶다’, ‘여친이 자꾸 콘돔 끼우라고 하는데 안 내킨다’는 글들에 ‘파트너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성병이나 임신을 막기 위해 꼭 착용하시는 것이 좋다’는 답글을 다는 거지요. 곁들여 자사의 초박형 콘돔을 은근슬쩍 홍보하는 식이고요. 상업성 목적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파트너와의 의사소통과 적극적인 피임법 사용을 권장하는 어투는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은 약국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면 부끄럽고 부담이 클 테니 ‘은밀하게’ 온라인으로 쇼핑해서 철통 보안 포장된 제품으로 받으라는 문구였습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로서는 성에 대한 사람들의 보수적 인식을 변화하도록 도모하는 것 보다는 인정하고 맞춰주는 것(?)이 매출에 유리하다는 판단인가 봅니다.
결국 콘돔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존재방식은 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담소는 그동안 ‘당당한 성, 안전한 성, 즐거운 성’의 모토로 성교육을 진행해오면서 실질적인 피임법을 교육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목청 높여 부르짖는, 민우회 성교육의 핵심인 ‘성적의사소통’에 중점을 두어 설명을 이어가곤 하지요. 콘돔은 다른 방법들에 비해 피임이나 성병 예방에 있어 월등한 장점을 갖고 있는 도구입니다만, 문제는 단순히 콘돔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콘돔 사용을 제안하고, 콘돔을 실제로 구입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지키고, 무엇보다 그 전 과정에서 콘돔을 사용하는 파트너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있어야 비로소 콘돔의 기능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는 물론 다른 피임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상호작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3월 회원확대 캠페인을 틈타 거리 스티커 설문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반응이 이를 확인시켜줬어요. 공공장소에서 ‘이런 주제’로 스티커 설문에 참여하는 것의 공포를 이겨내고 당당히 스티커를 한 표 행사하신 분들의 답변을 살펴보면, 내가 먼저 콘돔사용을 제안할 수는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반면, 내가 직접 구입하는 것은 어렵다는 답변이 제법 되었던 것이지요. 콘돔의 장점이나 유의사항,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거나 답례로 콘돔을 한 개씩 나눠주면 슬그머니 피해버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피임은 여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며 아이는 자연이 만들고 낳아서 키우는 것이니 이런 캠페인은 안 했으면 좋겠다던 어느 아저씨, 콘돔은 당연히 남자가 사서 알아서 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젊은 여성을 보면서 콘돔을 주제로 우리가 성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음을 체감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상담소에서는 2010년 상반기에 ‘콘돔생활백서’라는 이름의 발랄한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콘돔 사용을 통한 ‘당당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제안·이행하고, 그것으로 건강하고 즐겁고 책임 있는 성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죠. 성병예방, 피임을 위한 계몽적 캠페인을 넘어서, 하나의 ‘성적 주체’가 되어 파트너와의 원활한 성적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보고, 관계도 살펴보고, 유쾌한 팁도 주고받는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 첫 걸음으로 4월 20일(화) 저녁 7:30 민우회에서 ‘콘돔탐구생활’이라는 제목의 집담회가 열려요! 콘돔과 관련한 경험담, 콘돔 유언비어 파헤치기, 곤란한 상황(?!) 극복 팁 같은 알짜배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낼 거예요. 이후에는 초간단 UCC 제작, 발로 그린 콘돔 웹툰 같은 빵빵 터지는 아이템 콤보를 연달아 계획하고 있고요. ^-^ 요 신나는 발걸음에 함께 하실 회원님을 적극 환영합니다! 민우회 상담소와 함께 ‘콘돔 생활 백서’로 다들 ‘잘 하는’ 세상 한 번 이룩해보자고요~!
최김하나(하나) ● 4월에는 행복해질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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