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6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 I am not ‘that’cool!
[나의 삶, 나의 이야기] I am not ‘that’ cool!
달빛 ●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주
변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본인만 생각하세요.”
회사와 직접적으로 싸우지는 않아도 내 입장을 관철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다. ‘남 생각 말고 자기 생각만 하라니…, 무슨 조언이 이래?’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교과서적인 얘기만 하다니. ‘본인만 생각하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며, 나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점점 모호하기만 했다.
당시에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것도 나고 선택을 한 것도 나인데, 누군가 나를 이끌고 위로하고 상대와 대신 싸워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회사와 대놓고 싸우는 것은 싫고,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도 없이 ‘괜찮아요’ 하며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넘기기는 더욱 싫었다. 여러 가지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자괴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냥 넘어가기는 죽도록 싫었다. 평소 같으면 백번도 더 그랬을 나이지만 이번에는 무엇인가 달랐다.
그렇게 나는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지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 채, 정리되지 않은 스스로의 고민들과 예측할 수 없는 회사의 모호한 반응 사이에서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한 감정들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리저리 도움 받을 곳을 알아보던 중 민우회를 알게 되어, 가장 목말라했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을 민우회에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 준 덕분이지 싶다. 더불어 그해 가을에 들은 ‘인문학 강의’는 그동안의 원인 모를 분노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듯 조금씩 생각의 틀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적인 가치에 순응해 모나지 않게 살아 왔던 나. 내면에서 들리던 무수한 ‘왜’를 무시해 버리고 살던 나는 어느새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회사에서 직원에게 ‘임마’라고 부르는 부장과 싸우고, 오십이 넘은 신입 관리 직원의 나이로 밀어 붙이는 듯한 건방진 행동에 제동을 걸고, “커피메이커에 커피 좀 내려놓지”라는 요구에는 “본인이 내려서 마시삼!”을 한마디 날려 주는 나름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 갔다.
이런 것이 나를 위하는 행동이라는 걸까? 타인을 배려하고 주변 상황을 고려하며, 남들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다가 오히려 스스로만 상처 받았던 경험이 다반사였던 나에게 이런 식의 행동들은 색다르고 통쾌하고 그로 인한 해방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의사에게 들었던 조언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된 건, ‘나를 위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고서도 반년이 더 지난 후였다.
“왜 그러고 싶으세요?”,
“왜 그렇게 행동했죠?”,
“왜 그러는 것 같으세요?”,
“뭘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거죠?”
쏟아지는 질문들에 나름 열심히 대답을 했지만 상담 시간마다 의사는 표현을 바꾸어 가며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점점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를 받으러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답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거의 모든 상담의 질문이 ‘왜?’와 ‘어떤 느낌’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것들이었으나 내가 나름 열심히 한 답변들은 의사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납득시키기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떠올리려 해도 무언가 기억을 가로 막는 느낌?
가장 최근에 진료를 받던 날, 상담 시간이 끝날 무렵 진료실을 나서려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왜 자꾸 생각해 보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기진맥진해서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모습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원하니까, 저렇게 살기를 원했으니까. 머릿속에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의사가 거듭 묻던 ‘왜’는 ‘뭘 원하나요?’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눈으로 거리 위의 사람들을 보니 모두들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욕구를 자제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었나? 어째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왜? 나는 이렇게 사는데 당신들은 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야?
난 어렸을 때부터, 잘 참는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울지 않고 주사를 척척 맞고 굵은 알약도 잘 먹고, 웬만큼 아픈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난 괜찮아’라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상처, 분노, 창피함, 외로움 같은 ‘괜찮지 않은’ 감정들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했다(요즘 말하는 ‘So Cool!’한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기특하다’며 칭찬했고, 난 칭찬 받는 게 좋아 참지 않아도 될 일까지 참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어른들 또한 덩그러니 남겨진 나와 동생을 감당하기 힘들었던지 우리들의 감정에 제대로 응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는 가족들 앞에서든 친구들 앞에서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스로의 감정을 무시하며 지냈다. 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회사에서도 오로지 열심히 일만하는 직원이 되었다. 불이익을 당한 다음에도 ‘내가 감히 회사를 상대로 싸워도 될까’라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를 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가능하면 참고 배려하려는 나의 기준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들 자기가 원하는 걸 우선으로 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20년 전에 느꼈다면 더 좋았을 분노였다. 왜 참고 살았을까, 왜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느끼는 것을 억누르고 살았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억울하고 화가 나서 팔짝 팔짝 뛰고만 싶다. 왜 스스로는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서 나와 동생의 감정에는 무심했는지 아빠에게 가서 따지고 싶고 대들고만 싶다. 타인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내가 입은 상처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쏘아붙이고 싶다.
그 분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꾹꾹 참았던 내 감정들이 내지르는, ‘난 이러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그 분노를 이제는 똑바로 응시할 생각이다. 피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느끼는 감정 그대로 원하는 바를 똑똑히 말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의 의미는 나에게 ‘본인의 감정과 생각과 본능을 억누르지 말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세요’이다.
달빛 ● 달빛은 언제나 so coooool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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