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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6월호 [생생한 시각] 검사와 스폰서, 자기들끼리의 온정주의
[생생한 시각] 검사와 스폰서, 자기들끼리의 온정주의
이진영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지난 달 20일, MBC 피디수첩이 사고를 쳤다. ‘검사와 스폰서’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지역 건설업자 홍두식(가명)이 지난 25년간 금품과 향응을 제공해온 검사 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 문건에는 홍 씨가 접대한 검사들의 이름과 연락처, 날짜와 장소, 금액과 수표의 일련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그 폭발력은 대단했다. 방송을 통해 실명이 거론된 검사들의 이름은 다음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가 되었다.(그들 중 한 검사가) 전화 인터뷰 중인 방송사 피디에게 “네가 뭔데? 네가 피디야?”, “내가 경고했을 거야. 그러니까 뻥끗해서 쓸데없는 게 나가면…” 등 반말로 했던 말들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참여연대는 방송이 있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건은 뇌물수수이며, 수사대상”임을 강조했다. 22일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전·현직 검사 57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렇게 발 빠르게 대처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러한 검사 스폰서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요지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의 ‘관행’이 이렇게 어울려 술도 먹고 대접도 받는 건데 그게 뭐 큰 잘못이냐는 것이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런데 이런 것으로 처벌할 수 있겠냐는 얘기다. 이 사건의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소폭 한잔 정도 마셨으면 될 일을, 우리 사회 특유의 ‘온정주의’ 문화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나마 검찰이 ‘외부인사’라도 참여시켜 만든 게 ‘진상규명위원회’이고, “국민의 신망이 두터운 민간인” 위원장이지만 그 기본인식은 검찰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그 이름마저도 앞에 뭘 갖다 붙이지도 못한 채 아직도 ‘진상규명위원회’로 남아있다. 대체 뭘 규명할 수 있을지.)
기억해 보면, 이러한 문제는 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우리 기억에 그나마 남아있는 일들만 살펴봐도 2005년의 ‘안기부 X파일’이 있고, 2008년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있었다. 삼성이 정기적으로 검찰들에게 ‘떡값’을 제공했다는 공통된 사실(fact)을 가진 두 사건, 그러나 돈을 준 사람도 돈을 받은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만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는 이제 빵집을 한다(한때 그도 검사였고, 삼성이 그를 통해 검사들에게 뇌물을 전달했지만, ‘관행’을 거부한 그는 이제 그들 사이에서 ‘제명’됐다).
이번 문제라고 다를까. 검찰은 어차피 의지가 없어 뵌다. 또다시 늘 써먹던 ‘공소시효가 지났다’,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몇 명 실명이 공개된 검사들 옷을 벗기는 수순에서 정리에 들어갈 것이다. 박기준 지검장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사표를 수리하려고 했다가 여론을 보고 돌아섰던 것이다. 리스트에 있다는 세 명의 검사장급 중 이름이 공개 안 된 나머지 한 명에 대해서는 소환조사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우리가 가진 수단이란 것은 그나마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계속 이 사건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일이었다. 판단은 적절했고, 그때그때 반대편의 논리에 대한 반박논리를 생산해냈다고 본다. 검찰개혁 문제에 있어서 정치권은 언제나 미온적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언제 자신이 피의자 신분이 될지 모르고, 정권은 늘 검찰권력을 필요로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나? 대검찰청에 부패비리 검사 57인을 고발하고 오는 날,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한 말은 “앞으로 착하게 살아라”였다.
이번 사건이 터진 지, 20일 정도 지났다. 아마 이 글이 지면을 통해 실릴 때쯤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검찰개혁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는 느끼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정도의 거리에 있다. 이번 이슈가 터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같이 분노했지만 ‘그러다 말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한 선배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내게 말을 걸었다. 이번 일이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느냐고. 더 나쁜 놈들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더 은밀히, 증거를 없애려 들 것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초조하다.
이번에 걸린 사람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죄질이 나쁜 사람들을 ‘더’ 엄히 처벌해야만 한다. 그게 법 앞의 평등이 아닐까. 민주노동당에 평균 3~40만원의 당비를 냈다며 ‘불법정치자금제공’혐의로 273명의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무더기 기소한 검찰이나, 2007년 기자회견 참가 건까지 들추면서 집시법 위반혐의로 시민단체 활동가 수십 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는 경찰이 생각하는 ‘법치’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스폰서 검사’ 명단을 공개할 국회의원은 없는 걸까를 생각해 본다. 법은 멀고, 검찰은 가까워서?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말 그대로 국민이 낸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검찰과 공무원들에게 진정한 ‘스폰서’는 우리 국민이어야 할 텐데. 국민이 무서워 어디 딴 ‘검은 돈’은 받을 엄두를 못 낼 그런 세상이 와야 할 텐데.
이진영 [email protected] ● 참여연대 4년차 간사입니다.
회원·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담당했고, 지금은 사법감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리티적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고 활동가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 삶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 아직 찾고 있는 서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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