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6월호 [민우칼럼 창] 그녀가 곁을 떠나게 된 것은
[민우칼럼 창] 그녀가 곁을 떠나게 된 것은
김진 ●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한새봄. 봄이 오면 기억나는 이름의 고객, 사실 나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는 6년 전 한 장의 ‘사망진단서’에 누여 사무실을 찾아온, ‘사건’이었다. 처음 상담을 하면서 몇 차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스물 셋이라는 나이에 한 번, 북한산 등산로라는 사고 장소에 다시 한 번, 그리고 수당을 합쳐도 채 80만원이 넘지 않던 기본급 59만원 - 월급명세서에 다시 한 번. 관공서에 다닌다는데 이런 월급도 있나. 무심하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의 아버지는 울산의 큰 공장을 다니며 큰 딸을 키웠고,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지 고향을 떠나기가 싫었던지 어쨌든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그렇게 스물세 살이 되고 나서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보고 싶다”며 작은 아버지가 계신 서울로 올라왔고,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는 ‘일당제’직원이 되었다. 성실하게 일하며 “2년 경력만 쌓이면 법무부 기능직 공무원 시험 볼 자격을 준다”는 말에 무슨 일을 시켜도 불평 없이 참자며 열심히 직장을 다녔다. 월급을 아껴 치과치료를 받고, “객지에서 친구도 사귈 겸 취미삼아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에, 여성플라자에서 수영 강습도 받았다.
그녀가 ‘봄맞이 직원체육행사’라는 북한산 등산로에서 죽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채 예순이 안 된 그녀의 아버지는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했고 어머니는 자지러졌다고 했다. 장례도 겨우 치른 부모는, 당연히 부검으로 딸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사인미상의 사망 재해는 부검 없이는 어려워요”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으나, 하지 못했다.
장례식에서 “우리가 다 알아서 해준다”고 하던 기관장은, 정작 산재보험 신청서에 확인해 달라고 하자 고개를 저었고,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등산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인과관계의 증명이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였다.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사망원인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근로자의 업무와 사망원인 및 그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한다 … 그 사인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점, 망인에게 심장질환 등의 기존질환에 있었다는 객관적인 자료도 없으면 업무 기인성을 추단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인용하여 “이 사건 망인의 사망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일 뿐 업무와 어떤 연관도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체육행사는 업무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고, 남자직원들도 오르기 힘들 만큼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가는 것이 돌발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그 외에 다른 사인이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은 등산과정에서 갑자기 야기된 신체상의 부담으로 인하여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였을 것”을 추단하여, 산재보험금을 주라고 했다.
다음 싸움은 체육행사를 하면서 준비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국가배상(직장이 관공서였으므로)을 청구할 차례였다. 기관에서는 등반 전 소장이 안전교육을 실시하였고, 망인이 실신한 후 곧바로 119구급대로 연락을 취하여 구조를 요청하였으며, 등산객 중 응급처치사자격증을 취득한 청와대 경호실 소속 설명불상의 남자와 치과의사가 인공호흡을 실시한 것 등을 들어 “사용자의 안전배려 의무는 충분히 이행하였다”고 반박하였다. “누구나 쉽게 오르는” 북한산 청수동안문 가는 길에서 그런 사고를 예상할 수 있겠냐고도 했다(북한산 초입부터 숨을 깔닥대기 시작해서 도대체 어디부터가 ‘깔딱고개’인지도 알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모두 참가하는” 산행을 개최함에 앞서 직원 각자의 신체 및 건강상태 등을 면밀히 검사하고 의료진을 배치하거나 신속한 연락 및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맞섰다.
법원도 “특히 망인과 같은 임시계약직 직원의 경우에도 무리하게 산행에 참가하지 않도록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산행코스 등도 쉬운 곳으로 선택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등 그 안전을 배려하여 보호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하여 전 직원들에게 남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산행코스를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신체상 부담을 느끼면서 사망하게 한 과실”을 인정하여, 손을 들어 주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결과가 괜찮았다고 해서 사망진단서 속의 그녀를 만나 볼 수도,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부모님들의 허리 끊어지는 아픔을 덜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면서 줄곧 키 158cm, 몸무게 40kg의 어린 새봄 씨, 누구나에게 일률적으로 무차별하게 강요되는 ‘체육행사’에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걸어가던 그 시간이 떠올라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체육행사’로 대변되는 여러 가지 폭력적 업무환경이 지금도 어디선가 다른 여성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나중에도 등산로에서 단체 등산객들을 부딪치면 기분이 안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새봄 씨 사건을 떠나보낸 후, 나에게 있어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말은 비단 모성보호를 위한 유기용제 사용제한 정도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날 좋은 봄이 다시 왔다. 좋은 날씨를 핑계로 ‘자신의 기준’을 ‘모두의 기준’으로 하는 ‘제불찰’ 씨들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진 ● 도대체 못하는 게 없는 무한카리스마,
우물쭈물 수줍게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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